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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2. 8. 주회(안) 제공)
신도비 건립 (1954년) 안렴사공 신도비문은 1840년이전에 금릉 남공철이 지은 것을 , 광복후인 1954년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 모정골에 있는 묘소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1977년 신도비각을 건립하였고, 1999년에 신도비 명문대로 '이수귀부'로 고치고 비각전체를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 <청원의 인풍 (1991, 청원문화원)>에서 ● 金士廉 신도비 고려 안렴사 梧隱 ★김사렴(1335-1405)의 신도비는 1954년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 모정골에 있는 그의 묘소 아래에 세웠으며 비문은 예조참판 ★남공철이 짓고 글씨와 題篆(제전)은 20대손 ★金彰會가 썼다. ---남공철撰, 20대손 창회書幷篆(서병전)
2)<고충지 (1982, 안렴사공파종회)>에서 ● 오은안렴사공신도비각기 (김潤會 근지) ----- 공의 증손 양성공 취의 산지를 구하다가 지석을 얻어 공의 유취로 알고 다시 실전될까 염려하여 미봉하였다가, 중국으로 임시 옮기었던 정부가 광복하면서 개봉축 하고 의석물을 시립하여 묘소의 위표를 하는 한편 신도비를 묘하 노변에 건립하고 후손들의 모선하는 성금으로 비각 건립할 것을 결의하여 서기 1976년에 착공하여 동 1977년 11월 준공하였다. 서기 1978년 1월 1일 후손 윤회 근지
3)<1999도산유적정화보수기 (2000, 영모재)>에서 ● 안렴사공신도비 및 비각개수 신도비는 오은공의 먼 외손이며 순조때에 영상을 지내고 고려사에 제1인자로서 고려명신전을 지은 남공철 선생의 명작인데, 그 銘文 말미에 " 首龜趺刻在墓文(이수귀부각재묘문)" 이라 명기되어 있으니, 즉 "용머리 거북받침으로 그 묘앞에 세웠도다" 하였는데, 실물인 즉 加 石(가첨석)에 平臺石(평대석)으로 되어 있어 이를 하나의 遺憾(유감)으로 여겨오던 터인지라 이제 蓋瓦(개와)가 낡고 건물이 노후하여 개수하는 차제에 碑銘에 反하는 오류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는 고로 이를 " 首龜趺"로 개조하는 한편 의회의 난공사인 비각 전체를 중수하였다. 소요공비 1,400만원은 소윤공파 및 좌랑공파에서 각기 700만원씩의 헌성금으로 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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