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본문

p11.png 충렬공 관련 소설 및 서적 소개

 

  1)<검푸른 해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9)--<검푸른 해협>.   이노우에 야스시 저/ 장홍규 역 | 소화출판사 간. 2001년 12월.

 

 *<검푸른 해협>과 관련한 <동아일보> 기사내용 소개  (2002. 9. 22.발용(군) 제공)

 

여몽연합군의 일본출병 '검푸른 해협' (동아일보. 2002. 4. 19. 일 기사)

검푸른 해협/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장홍규 옮김/364쪽 7000원 소화 1259년.

 

고려의 태자가 항표(降表)를 가지고 원에 입조(入朝)한다. 세조 쿠빌라이를 만난 고려 태자는 쿠빌라이의 온화한 풍채에 매혹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는 원종으로 왕위에 오르고, 쿠빌라이는 황제가 된다. 원종의 기대와 달리 원의 가혹한 요구가 이어지고, 마침내 원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고려에 명하는데…. 여몽(麗蒙)연합군의 일본 출병을 다룬 역사소설 ‘검푸른 해협(원제 風濤)’이 출간됐다.

이 책이 특별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원종 충렬왕 홍다구 이장용 김방경 등 주요 주인공이 고려인이고 고려인의 시각에 맞춰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반면, 작가는 ‘돈황’으로 유명한 일본 역사소설계의 거장 이노우에 야스시이기 때문. 1963년 발표된 이 소설에서 그는 원의 전진기지가 되어 원치 않은 운명에 휘말리는 고려의 가혹한 운명을 그려낸다.

  일본 내부에서는 ‘카미카제(神風)’로 외적을 물리쳤다 하여 신국관(神國觀)형성의 계기가 되는 사건을 상대방의 시각으로 뒤집어본 것. 이 소설은 당대 일본의 정황을 풍자한 우의(寓意)소설이기도 하다. 원의 압제하에 놓인 고려를 빌어 미군의 일본점령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과로 점령을 자초한 당시 일본의 상황과 몽골의 세계전략에 힘없이 유린당한 고려의 상황이 대등하게 비교될 수 있을까. 책을 덮은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이유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검푸른 해협> 서평 (2003. 9. 5. 영환(문) 제공)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9

책이름 : 검푸른 해협

(4*6판/368쪽/7,000원/도서출판 소화 펴냄)

지은이 : 이노우에 야스시   옮긴이 : 장홍규

 

1. 일본인의 의식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선민의식, 즉 신국관을 강하게 심어준 국가적 위기가 13세기에 있었던 몽골침략이었다. 그 신국관이 형성되는 띠의 다른 끝에는 몽골의 일본 정벌에 전진기지가 되어 원치 않은 역사에 휘말리게 되는 한반도 고려의 가혹한 역사가 있었다.

〈검푸른 해협〉은 1274년과 1281년 몽골의 제1, 2차 일본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일본적 서정의 미학이나 자기 고백적 성격의 사소설 등 일본의 주류 소설과도, 또한 고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역사소설의 주류와도 궤를 달리한다.〈고려사〉와 〈원사〉를 바탕으로 조서나 칙령, 상주문 등 역사의 단편들을 인용하고, 영웅적인 인물보다는 역사의 장면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 중심으로 고려의 비극적인 역사가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2. 그렇다면 이노우에 야스시는 왜 이런 역사소설을 썼을까?

주된 등장인물, 세조 쿠빌라이, 홍다구, 원종, 충렬왕, 이장용, 김방경 등에서 충렬왕, 이장용, 김방경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따사롭다. 절대절명의 위기, 결국은 파국으로 이르는 요즘 말로 하면 No Way out의 상황마다 개인적인 오욕을 불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군주와 노신들의노력이 눈물겹게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의 선인을 아름답게 재발굴해 준 일본작가에게 감사의 정을 느끼게 할 만큼.

그러나 〈검푸른 해협〉은 우의 소설이다. 결국 대제국인 원의 압제하에 놓인 고려의 비극을 빌어 일본의 패전체험, 미군에 의한 점령체험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과연 고려와 일본이 처한 상황이 흡사했을까? 전혀 다르다. 고려는 전혀 행하지도 원치도 않은 상황 속에 휩싸였기 때문에. 바로 이 점에 이노우에 야스시의 역사 인식의 한계가 있다.

 

〈줄거리〉

• 제1부:1259년 고려의 태자 전이 항표를 가지고 고종 대신 몽골에 입조한다. 그는 세조 쿠빌라이와의 첫 만남에서 몽골에 대한 깊은 원한을 잊기라도 한 듯 세조의 온화한 풍체에 그만 도취되고 만다. 그 해 태자 전은 고종의 뒤를 이어 원종으로 왕위에 오르고 쿠빌라이는 황제에 오른다.

고려의 왕이 된 원종의 기대와는 달리 세조의 가혹한 조서는 계속 이어지고 마침내 일본을 정벌하고자 고려에 몽골 사신 등의 길잡이 역할을 명하기에 이른다. 매사에 사려깊은 충신 이장용의 간곡한 상주문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병선을 만들고, 조정군 병력을 조사하고, 둔전을 설치하라는 등의 명을 내린다. 또한 임연의 폐위 단행 사건과 최탄의 내부 사건, 삼별초 토벌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내정 문제에 끊임없이 간섭한다.

이장용의 죽음에 이어 세조의 온화함에 반했던 원종은 승하하고 고려는 결국 병선 9백 척을 만들어 몽골군과 함께 출군하지만 패전하고 만다. 그리고 연도에서 원나라 공주와 결혼한 태자 심이 바로 충렬왕으로 고려의 새로운 임금이 된다.

 

• 제2부:자애롭고 온화한 세조가 위기에 빠진 고려를 구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원종과는 달리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충렬왕은 대제국 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몽골의 관습을 따랐으며 세조 쿠빌라이의 딸 쿠쓰루가이미시 공주와 혼인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세조의 끝나지 않은 일본 정벌의 야망으로 고려는 또다시 일본 재정벌 준비에 희생된다. 그러나 일본 근해에서 하룻밤 폭풍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편집자의 말>

지금도 우리는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휘둘린다. 월남전 참전이 그랬고 요즘 F-15 전투기 구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러시아의 눈치보기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 고초에 비해 지도자들은 고뇌하지 않고 너무 쉽게 선택하거나 그런 계제를 이용해 사리까지 챙긴다. 이에 반해 정략적으로 변발을 하고 원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는 충렬왕과 ?고통은 그것이 올 때까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고통이 시작되면 의외로 참고 이겨낼 수 있?다고 국왕을 위로하며 국민을 위해 묘수에 고심하는 이장용과 김방경의 모습은 이 소설의 백미다. 이쯤 되면 국민도 믿고 견딜 만하다.

<검푸른 해협>은 TV의 연속사극보다 한층 감동적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2002년 4월 도서출판 소화 편집부

 

  <소설 -검푸른 해협- 구입처 소개> (2003. 9. 5. 발용(군) 제공)

도서출판 小花☜

 

  :: 미디어서평

고려가 겪는 여몽연합군 '일본 출병'

1259년, 고려의 태자가 항표(降表)를 가지고 원에 입조(入朝)한다. 세조 쿠빌라이를 만난 고려 태자는 쿠빌라이의 온화한 풍채에 매혹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는 원종으로 왕위에 오르고, 쿠빌라이는 황제가 된다. 원종의 기대와 달리 원의 가혹한 요구가 이어지고, 마침내 원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고려에 명하는데….

여몽(麗蒙)연합군의 일본 출병을 다룬 역사소설 [검푸른 해협(원제 風濤)]이 출간됐다. 이 책이 특별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원종 충렬왕 홍다구 이장용 김방경 등 주요 주인공이 고려인이고 고려인의 시각에 맞춰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반면, 작가는 '돈황'으로 유명한 일본 역사소설계의 거장 이노우에 야스시이기 때문.

1963년 발표된 이 소설에서 그는 원의 전진기지가 되어 원치 않은 운명에 휘말리는 고려의 가혹한 운명을 그려낸다. 일본 내부에서는 '카미카제(神風)'로 외적을 물리쳤다 하여 신국관(神國觀)형성의 계기가 되는 사건을 상대방의 시각으로 뒤집어본 것.

이 소설은 당대 일본의 정황을 풍자한 우의(寓意)소설이기도 하다. 원의 압제하에 놓인 고려를 빌어 미군의 일본점령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과로 점령을 자초한 당시 일본의 상황과 몽골의 세계전략에 힘없이 유린당한 고려의 상황이 대등하게 비교될 수 있을까. 책을 덮은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이유다.

유윤종 기자 / 동아일보 / 20020420

 

  2) 번역본 <풍도(風濤)> 소개   (2003. 1. 4. 윤만(문) 제공)

 충렬공 일본 정벌관련 소설 <풍도>의 번역본인 <검푸른 해협> 이전 16년전에 <풍도>라는 또 다른 번역본이 있었습니다.  <검푸른 해협>은 井上靖(이노우에 야스시) 저. 장홍규 역으로 도서출판 소화에서 2001.12.30. 발행한 문고본입니다. --그런데 헌책방을 기웃거리다 <風濤(풍도)>라는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풍도는 井上靖 저. 장병혜 역으로 국제교육개발협회에서 1986.12. 1. 발행한 250페이지의 양장본으로서 이 책은 일본 만국박람회기념협회의 보조금으로 출판된 것으로서 비매품이었습니다.

--여기 井上靖의 머리말을 소개합니다.

--소설 <풍도(風濤)>가 발표된 지 어언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에 장병혜(張炳惠)선생(미 메릴랜드 주립대 국제경영원장)에 의해서 본격적인 한국어판이 편찬. 출판되게 되었는 바, 이 번역은 1980년으로 부터 5개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고, 장병혜 선생을 중심으로 많은 학자.연구원. 여러분이 협력해 주셔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풍도>가 정확한 해석과 번역에 의해서 한국 독서계에 등장하고, 많은 한국분들에 의해서 읽혀 진다고 생각하면 작자로서 꿈을 꾸는 듯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부디, 소설 <풍도>가 한. 일 양국의 문화 교류와 상호 이해를 깊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염원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풍도>를 위해 귀중한 시간과 크나큰 노력을 할애해 주신 장병혜 선생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井上 靖(정상 정)

 

*<풍도>를 번역한 서적 종합 (2003. 3. 28,  4. 31. 윤만(문) 제공)

 

    1)<검푸른 해협>(소화 간, 장홍규 옮김),     

    2)<풍도>(국제교육개발협회 간, 장병혜 옮김),  

    3)<풍도>(정음사 간, 최호연 옮김),  

    4)<풍도>(교육출판공사 간, 박상균 옮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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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도>를 번역한 책들 (총 4권) (2003. 8. 16. 윤만(문) 자료 제공. 발용(군) 촬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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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장병혜역. 국제교육개발협회 간)      <풍도>(최호연 역. 정음사 간)     <풍도>(교육출판공사 간. 박상균 역)

 

3)<충렬공 전기문 >

 

1. 출전 : <소년소녀 한국전기전집>(계몽사. 1989)    

2. 제공자 : 김발용(군). 2002. 10. 19.      

3. 글 : 예 용 해 /   그림 : 이 우 경

  *본 항 하단에 작품 전 내용 수록

 

 4)<유현종 대하역사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와 관련 도서 소개  (2003. 3. 28,  4. 31. 윤만(문) 제공)

<유현종 대하역사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

- 지은이 : 유현종    - 펴낸날 : 2003. 3.15. 1판 1쇄.     - 펴낸곳 : 대산출판사    - 권수 : 3권    - 가격 : 각 권 9,000원

[저자의 말]

--우리 나라 역사를 보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변과 민란이 있었다. 그 중에서 무력을 이용한 반란으로 성공한 군사 쿠데타는 서너 차례가 아닌가 싶다. --최초의 군사 쿠데타는 서기 642년 고구려 말기의 연개소문 쿠데타이며 두 번째로는 고려조인 서기 1170년에 일어난 정중부의 쿠데타, 그리고 세 번째는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네 번째는 1961년 박정희의 5.16 쿠데타이다. 재미있는 것은 연개소문이나 이성계, 박정희가 내건 대의명분은 비슷한데 반해 정중부는 다르다는데 있다.

--대수(對隋), 대당(對唐)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 영류왕(고구려 제28대 왕)은 승리감에 도취하여 무사 안일에 빠졌다. 전쟁 위기는 상존하는데 안정 추구라하니 군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그에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겠다", "침략의 책원지인 대륙(中原)을 도모하여 고구려에 복속시키자"라는 명분을 걸고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했다. 그는 그 명분을 위해 3차에 걸친 대륙 정벌전을 감행하다 병사했다.

 --연개소문이 대륙 도모를 외치고 고구려의 영광 재현을 위해 일어섰다면 이성계는 부패 무능한 고려조를 때려 엎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며 일어섰고 박정희는 가난과 후진에서 벗어나 조국을 근대화시켜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 걸었다. --세 사람 모두 망해 가는 조국의 운명을 볼 수 없어 일어섰다고 한 점이 닮은 점이다.

--그러나 고려 왕조 때 일어난 정중부의 난은 조국을 위해 일어섰다기 보다는 "문신 귀족들에게 천대받으며 더 이상 살 수 없다. 무인(武人)도 사람이다. 무인의 세상을 만들자"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거병했다는 점이 다르다.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들과의 제휴로 고려 왕조를 세웠다. 건국한 뒤 안정이 되자 그 동안 활약을 보여왔던 무사들이 필요없게 되었다. 과거 시험 실시로 문신을 우대하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탄탄한 귀족사회가 이루어졌다. 그 때부터 무인들은 토사구팽, 용도 폐기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나면 당연히 무장들에게 전쟁 지휘권을 주어야 마땅한데도 조정은 문신이나 학자들을 장군으로 삼아 그들에게 지휘권을 주었다. 그래서 참고 참던 무인들의 불만이 터진게 정중부의 난이다. 정중부는 이의방, 이고 등 부하 장교들과 합세하여 정변을 일으켜 성공하고 모든 문관들을 주살했다. 이른바 싹쓸이를 한 것이다. 그것은 처절한 복수극이었다. 이들에게는 국가를 경영할 만한 경륜이나 학식도 없었다. 복수의 일념뿐이었고 집권 후엔 권력을 이용한 사리사욕 챙기기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권력 투쟁을 이어 갔다.

--이고를 죽였고 이의방도 죽이고 마침내 정중부 일당 독재의 길이 열였으나 정중부 일가는 경대승에게, 경대승이 병사하자 대권은 이의민에세 돌아갔고, 이의민은 최충헌 형제에 의해 쓰러졌다. 그러면서 최충헌에 의해 피비린내 나던 무인들의 권력 쟁투가 끝이 나고, 서기 1196년(명종 26년)에 향후 4대 60년 동안의 최씨 세습에 의한 군사 독재 정권이 고려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기에 몽고(元)의 침략을 먹아내지 못하고 수 십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게 된 치욕의 역사는 그들 무인 난립(亂立) 동란(動亂)으로 국력이 피폐해져서 당했던 치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세계적인 대국이던 원과 맞서 그들의 침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들의 지배는 불가항력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인 정권 시절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고려 무인의 기개와 불타는 정신은 굴복과 굴종을 거부하여 몽고의 침략에 맞서 강화로 천도한채 30여년 동안 장렬하게 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강화가 함락되자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옮겨가며 꿋꿋한 항전을 계속한 것은 그 후 한말의 의병 그리고 일제에 맞선 독립군 투쟁으로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는 고려 무인의 전통이 되었다.

--나는 이 소설에서 바로 고려 무인, 고려 무사의 참 모습을 그리고 그들의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무사의 정신을 그려보고자 했다. 이 소설은 1983년<동아일보>의 자매지 《스포츠동아》에 연재했던 것을 이번에 대폭 손질하여 개정판을 내게 되었음을 밝혀 둔다.

--유현종 대하역사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2권부터 삼별초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충렬공(방경)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제가 <무인시대와 삼별초>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동안 KBS에서 제작한 역사 드라마로 조선조 개국을 그린 <용의 눈물>, 고려조 개국을 그린 <태조 왕건>, 고려조 중흥기를 그린 <제국의 아침> 그리고 현재의 <무인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려와 조선조의 사극을 다루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조선왕조 500년, 왕비열전, 여인천하, 장희빈, 연산군, 다산 정약용, 명성황후 등 고려와 조선시대를 넘나들며 각 방송사마다 다투어 역사 드라마를 제작하여 이제는 그 소재가 다하여 재탕 삼탕을 하고있는 실정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오직 하나 남은 유일한 소재가 바로 우리 중시조이신 충렬공(방경) 할아버지와 관련된 반란군 삼별초 토벌 그리고 두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일본 정벌(문영의 난, 홍안의 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별초의 난을 역사적으로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볼 것이냐하는 문제입니다. 즉, 고려사·고려사절요 등 정사에서와 같이 삼별초가 개경으로 환도했을 때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해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반란을 이르킨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위대한 자주적 항몽투쟁으로 볼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그러던 중 일본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가 지은 <풍도(風濤)>가 <검푸른 해협>(소화, 장홍규 옮김), <풍도>(국제교육개발협회, 장병혜 옮김), <풍도>(정음사, 최호연 옮김), <풍도>(교육출판공사, 박상균 옮김) 등 국내에서 여러분에 의해 번역 소개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풍도>라는 소설이 비록 일본인 작가에 의해 씌여졌지만 우리 고려의 입장에서 그래도 객관적으로 씌여졌구나하는 느낌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이에반해 유현종 대하역사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는 고려사 반역자 열전에 나오는 (배중손)· 김통정이 바로 주인공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중국의 정사 사마천의 삼국지가 조조의 위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기록하였다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유비의 촉의 입장에서 소설화하였다는 점과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우리의 중시조이신 충렬공 할아버지와 삼별초를 소재로 해서 제작될 향후의 역사 드라마가 어떠한 시각에서 다루어 질 것인가하는 문제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고 우리 문중의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현재 대종회 김태린 회장님을 비롯하여 문중의 많은 어르신·현종들께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시고 많은 관심과 함께 문제 해결에 적극 접근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후손들이 지금 하여야 할 일은 충렬공 할아버지에 대하여 반드시 정사에 입각하여 객관적인 사극을 제작할 수 있도록 많은 자료를 확보하여 해당 극작가와 연출가에게 제공하는 일일 것입니다.

--만약 유현종 대하역사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가 충렬공 할아버지를 다루는 역사 드라마의 기본적인 대본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같이 끔찍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종친 여러분께서도 이 소설을 일독을 하신 후 한번 생각하실 수 있는 기회를 갖으시기 바랍니다.

 

▣ 제1권 목차

  제1부 무사(武士)시대 : - 반란의 깃발.   - 무인, 일어서다.     -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제2부 노예들의 반란 : - 왕과 장상(將相)에 따로 씨가 없다.  - 부초군사(浮草軍士).    

▣ 제2권 목차

  제3부 강화천도 : - 마별초.     - 위험한 관계

  제4부 새임금을 모시다 : - 모반(謀叛).   - 환도전야

▣ 제3권 목차

  제5부 용호상박(龍虎相搏) : - 진도 아리랑.  - 잔월

  제6부 삼별초 : - 거친 바람 그리고 삼별초.   - 뜻밖의 패전

  제7부 고려 무사의 최후 : - 결전.  - 용장성의 최후.  - 이루지 못한 꿈

▣ 소설의 마지막 장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4월 14일 오전이었다. 때는 고려 원종 14년(서기 1273년)의 일이었다.

--“도두 앞바다에 연합군의 대선단이 나타나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탐라 근해에 나가 있던 삼별초군의 초계선으로부터 급보가 날아왔다.

--“대선단이라구? 전함이 몇 척이더냐?”

--대함 열 척에 중함 50척, 그 외 소함은 2백여 척쯤 돼 보이고 병력만 해도 3천이 넘어 보입니다.“

--뭐야? 우리 고려 관선이 그렇게 많더란 말이냐?“

--아닙니다. 몽고군의 배와 깃발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몽 연합군이 아니냐?”

--“그런 것 같습니다.”

--김통정은 거돌, 강쇠, 난정 등과 함께 급히 말에 올라 관부의 뒷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바라보니 도두 앞바다에는 여몽 연합군의 선단이 까마귀떼처럼 바다 위를 덮은 채 밀려오고 있는게 보였다. 그들은 탐라의 삼별초군을 속이기 위해 왕의 칙사를 내려보내며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반남현(지금의 전남 나주) 앞바다에 선단을 모아 급히 탐라로 진군했던 것이다.

--“으음, 장관이군.”

--“대군입니다. 우린 수군 4백에 보군 백 명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죠?”

--강쇠가 물었다.

--“어떻게 하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죽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너무 빨리 찾아온 것 같다. 후세에 부끄럽지 않게 싸우자.”

--세 사람은 난정과 함께 손을 잡았다. 비장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김통정이 지시를 내렸다.

--“나는 보군 백 명을 데리고 화포대를 맡겠다. 거돌과 강쇠는 좌우 수군을 맡고 포구 안에서 기다려라. 바다 밖으로 나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수적으로 워낙 열세니까. 기다렸다가 여몽 연합군이 완전히 포구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 쳐부수는 것이다. 알았나?”

--“예.”

--어서 위치로 돌아가라.“

--삼별초군은 곧 방어진을 구축한 채 연합군의 선단이 포구 안으로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연합군의 대선단은 거칠 것 없이 포구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도두항 포구는 입구가 좁고 안이 넓었다. 좁은 입구 좌우 쪽은 개꼬리 같은 야산이 바다에 나와 있었다. 화포대는 바로 야산의 끝 쪽에 숨겨져 있었다.

--이윽고 여몽 선단이 포구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것을 확인한 김통정은 화포를 쏘라고 명했다. 지축을 흔들며 화포가 불을 토하자 불덩이들은 연합군의 배 위로 날아가기 사작했다. 그것이 신호이기라도 하듯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삼별초군의 좌우 수군 선단이 일시에 부챗살처럼 진형을 펼치며 연합군 선단을 공격했다.

--이 해전은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삼별초 수군은 여몽 연합대군을 맞아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해가 커지고 전사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강쇠가 타고 있던 지휘 대함마저 불길에 휩싸인 채 침몰하게 되었다. 군사의 절반을 잃고 강쇠는 겨우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구조되었다.

--그때 독전을 계속하던 거돌은 이상한 생가이 들었던지 난정을 불렀다.

--“왜 그러세요?”

--쾌속선을 타고 나가 김통정 장군을 만나시오. 여몽 연합군에 몽고군의 깃발이 보이는데 정작 몽고 군사들이 배에 타고 있지 않소.“

--“그럼?”

--“선단은 김방경이 맡고 몽고군은 아마 딴 포구로 상륙하여 우리들의 배후를 노리고 있는 듯해서 그럽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녀오겠어요.”

--난정은 작은 쾌속선에 바꿔 타고 도선장에 상륙하여 화포대를 지휘하던 김통정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몽고 기병 천여 명이 덮쳐들고 있었던 것이다.

--“몽고병입니다.”

--“뭐야?”

--김통정이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이런! 저놈들에게 속다니. 퇴각하라! 내성으로 간다.”

--김통정은 퇴각령을 내리고 말에 올라 채찍을 날렸다. 육지에 몽고병들이 나타나 협공을 하자 거기에 힘을 얻은 김방경의 수군은 거돌의 수군 선단을 계속 밀어 붙였다.

--“선미에 불이 붙엇습니다.”

--싸우던 부하들이 외쳤다.

--“좌현에도 불입니다.”

--불을 끌 사이도 없이 무수한 불화살이 날아들어 거돌의 지휘함도 마침내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배가 침몰하자 남아있던 군졸들이 모두 바다에 뛰어 들었다. 시산혈해라 했던가. 바닷물은 온통 핏빛이었다. 거돌도 바닷물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한편 김통정은 30여명 남은 부하들을 이끈 채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니, 벌써?”

--성안도 불바다였다. 다른 해안으로 상륙한 몽고군은 탐라성부터 짓밟아 불을 지르고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죽인 후 포구 쪽으로 달려 들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온몸의 힘이 확 빠지는지 김통정은 마상에서 눈물을 삼켰다. 바로 그 때였다. 함성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김방경의 군사들도 해전에서 승리하고 상륙을 한 듯했다.

--“허!”

--좌우 사방이 타오르는 횃불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어서 피하십시오. 김 장군님!”

--부하들이 재촉했다

.--“피할 게 아니다. 아우들을 찾아야 한다. 자,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날 따르라! 김방경은 어니 있느냐! 여기 김통정이 간다! 나와라!”

--김통정은 그렇게 외치며 적진 속으로 내달았다. 당장 그가 거느린 30여 기는 수많은 대군에게 포위되었다. 김통정은 김방경을 찾으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분전했다.

--“김통정이다! 붉은 전포를 입은 놈이 김통정이다! 저놈을 사로잡아라!

--적진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김통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거돌과 강쇠는 전사해 버린 듯했고 그렇다면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한것이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제 한라산에도 새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20여 명의 군사를 이끈 장수가 기진맥진한 채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 장수의 옷은 갈기갈기 찢겨저 있었고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힘내요.”

--그 장수는 오히려 남장을 하고 갑옷을 입은 여자 군졸 두 사람을 독려했다. 말도 사람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장수는 거돌이었고 여자 군졸은 향림과 난정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동굴이 나오고 아담한 연무장이 나오지요. 탐라에 들어와 맨 먼저 숨어서 실력을 기르던 장소가 아닙니까?”

--“이 꼴을 하고 그곳에 가면 뭐해요?”

--“형님이 살아계시면 틀림없이 너른 동굴로 올거요.”

--너른 동굴이란 연무장 잔디밭에 이르른 거돌은 감격스러운 나머지 어쩔 줄 몰랐다. 뜻밖에도 강쇠가 이미 30여 명의 패잔병들을 거느리고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었구려. 한데 통정 형님이 안 오시는 걸 보니 전사하신게 아니오?”

--“형님은 불사신이야. 죽다니. 천만에! 꼭 살아오실 거다.”

--거돌은 자신에게 말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때였다. 산 아래쪽에 패잔병으로 보이는 군사 20여 명이 나타나 힘겹게 연무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통정 형님이십니다. 형님도 살아 계셨군요.”

--모두 달려내려가 김통정을 맞았다.

--“형님! 살아계셨군요.”

--거돌이 껴안자 김통정이 통곡을 했다.

--“살아있으면 뭐하나? 죽은 목숨인걸.”

--“다시 재기하면 됩니다.”

--“이젠 하늘이 우릴 버렸어. 우리들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면 몽고군과 김방경의 관군은 아마 탐라 구석구석 이 잡듯 뒤질 것이다. 섬 안에 갇혀서 뭘 어떡하겠다는 거야? 분하다!”

--강쇠 역시 주먹으로 눈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김방경은 관군과 몽고군을 모두 동원하여 토끼몰이를 하듯 산아래쪽으로부터 이 잡듯이 위쪽으로 수색해 올라오고 있었다. 산중턱에 이르자 앞섰던 군졸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왜들 그러느냐?”

--김방경이 물었다.

--“저, 저기 동굴 앞 잔디밭을 보십시요.”

--“으음?”

--그곳에 당도한 김방경은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삼별초의 낡은 군복을 입은 고려 무사 70명의 시체가 즐비하게 누눠 있었던 것이다. 70명의 무사들은 모두 자기 칼을 가슴에 꽂고 자결해 죽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개경 쪽을 노려보며 죽어 있었다.

--그들중에는 김통정과 거돌, 그리고 강쇠도 있었다. 거돌의 품 속에는 향림이 누워 있었고 난정은 김통정의 팔을 밴 채로 엎드려 죽어 있었다. 거돌 옆으로 다가온 김방경은 가슴에 피를 흘리고 잠들어 있는 누이동생 향림의 시신을 보자 석상처럼 굳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끝-

 

 5)<고려를 움직인 사람들> (2007. 9. 12. 항용(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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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간일 : 1983. 4. 30.   

  2. 편집 : 박천수

  3. 발간 : 민족문화추진회

  4. 내용 : 13명의 고려를 움직인 인물 중 한 분으로 등재. <일본을 정벌한 김방경>이란 제목으로 공의 주요 업적을 18P 분량으로 주로 아동에게 읽힐 목적으로 제작한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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