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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요 자료 소개
8) 영정소개
가. 충민사 봉안 영정 출전 : <대종회보 제61호, 1998.7>
<영정>
⊙ 충무공 시민장군 영정봉안 지난(1998년) 4월 30일,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방아재에 위치한 충민사에 제학공파종회와 재경 괴산군종친회, 또 괴산군종친회가 극진한 정성을 모아 역사적 고증과 함께 영정 관련 국내 제1인자인 장우성화백께서 수개월의 각고 끝에 완성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승장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영정 봉안식을 올렸다. 이 날 행사에는 충민사원장 박기봉씨와 안동김씨 능촌종중 대표이며 제학공파 회장인 학응씨의 주관으로 진행하였으며, 지방유림, 유생들과 안동김씨 종친들, 또 괴산군수를 비롯한 각 기관장 및 유지들 약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더욱이 이 지방 국회의원인 김종호의원이 정사에 바쁜데도 참석하여 축사를 해 주었으며, 대종회에서는 김종호의원과 장우성화백에게 회장님을 대신하여 두회부회장께서 감사패를 수여하였다.
나. 전쟁기념관 소장 영정 (2008. 1. 5. 항용(제) 제공)
소장처 : 전쟁기념관(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1가 8번지) 국가문화유산 종합 정보 서비스 홈페이지(http://www.heritage.go.kr/) 기록내용
유물명칭 초상화 : 김시민(金時敏) 국적/시대 한국(韓國) / 조선(朝鮮) 용도기능 기타(其他) / 기타도서(其他圖書) / () / () 참고문헌 『한국사』 소장기관 법인/사립(法人/私立) / 전쟁기념(전쟁기념) 유물번호 1993(1993) 102031
<정의> : 조선시대 호국인물, 김시민(金時敏) 초상화 <발달과정/역사> 조선(朝鮮) 중기의 무관인 김시민(金時敏)의 초상화로, 전쟁기념관의 호국인물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전쟁기념관에서는 역대 전쟁?전란에 참전하여 국가를 구하였거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하는 등 특별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귀감이 되는 호국 선열들을 선정하여 호국인물이라 하였고, 그 인물의 모습을 흉상, 초상화 등으로 제작하였다.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은 본관이 안동, 자는 면오(勉吾),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목천(木川)에서 출생하였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 훈련원판관이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판서에 건의한 것이 채택되지 않아 관직을 버렸다. 1591년(선조 24) 진주판관(晋州判官)이 되었는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죽은 목사(牧使)를 대신하여 성지(城池)를 수축하고 무기를 갖춘 공로로 목사가 되었다. 사천(泗川)?고성(固城)?진해(鎭海)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에 올라 금산(金山)에서 다시 적을 격파하였다. 그해 10월 적의 대군이 진주성(晋州城)을 포위하자 불과 3800명의 병력으로 7일 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을 격퇴했으나, 그 싸움에서 이마에 적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추록되었으며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고, 뒤에 영의정(領議政)?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추증(追贈)되었다. 진주(晋州)의 충민사(忠愍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알루미늄 테두리를 한 합판 액자에 유화로 그린 초상화가 알루미늄판 배접으로 부착된 형태이며, 하단에 공적 설명문이 지사벽지에 실크 인쇄되어 있다. 김시민의 얼굴 모습은 영정 및 관련자료, 종중인사 등을 바탕으로 하였고, 복장은 두정갑주를 표현하였다.
<제원> 액자 규격 - 가로: 45.5cm, 세로 : 76cm, 초상화 - 가로 : 45.5cm, 세로 : 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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