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2. 주요 사진 자료 소개
1) 충민사 경내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충민사 해설판 내용>
1) 종목 : 시도기념물 12호. 2)문화재지정일 : 1976.12. 21 3)장소 :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57 3) 소유 : 사유. 4) 해설 : 이곳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공을 세운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과 충숙공(忠肅公) 김제갑(金悌甲)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으로 조선(朝鮮) 선조(宣祖)때 건립하였다. 김시민(1554∼1592) 장군의 자(字)는 면오(勉吾),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으로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진주판관(晋州判官)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晋州牧使)로 사천(泗川), 고성(固城), 진해(鎭海)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우도(嶺南右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올라 금산(錦山)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그후 진주성 싸움에서 적을 격퇴하다가 전사하였다.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宣武功臣)의 호를 받고 뒤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김제갑(1525∼1592) 선생의 자(字)는 순초(順初), 호(號)는 의재(毅齋),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으로 명종(明宗) 8년(155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고 명종 10년(1555) 홍문관(弘文館) 정자(正字)가 되고 병조좌랑(兵曹佐郎)을 거쳐 선조(宣祖) 14년(1581) 충청도(忠淸道) 관찰사(觀察使)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原州牧使)로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아들과 부인도순절(殉節)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시민장군 유적 정화 기념비> <좌-충무공 신도비. 우-김제갑 비>
<중문-宣武門> <사당-충민사>
<묘소>
<교지-영의정 추증>
<선무공신 2등 교서. 2006. 7. 24. 일본에서 국민성금으로 환수. 현 진주박물관 소장> (2006. 7. 25. 항용(제) 제공)
<영정>
1998년 4월, 역사적 고증과 영정부문 국내 제1인자이신 장우성화백께서 수개월의 각고 끝에 완성하여 충민사 (충북 괴산)에 봉안하였다.
<사당 내 위패>
<사당 내 진주성 그림 액자>
<신도비>
<충무공 신도비>
<충민사 내의 구사당 소개>
<충민사내의 구사당>
충민사 경내에 있으며 충무공과 문숙공(휘 제갑)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현 충민사 자리에 조선 선조때부터 있어온 사우(불천지위)로 문숙공 김제갑의 위패를 모시고 있던 곳이다. 그런데 고종때 진주의 충민사가 훼철되자 이곳에 문숙공과 함께 합사하였다. 그 후 1977년, 충무공의 묘소를 충주시 살미면 무릉동에서 이곳으로 모셔 오면서 약 20여 호가 살고 있던 가옥을 현 능촌리 마을로 이주시키고 충민사를 새로 중건(1978)하였고 구사당은 원 위치에서 약간 우측으로 이축하였다.
<구 사당 내의 충무공 위패>
<충민사 내의 구사당내 향사 장면(2003. 5. 8.)> (2004. 5. 9. 성수(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