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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행사 자료 소개
4) 제2회 충무공 김시민 장군 선양 학술심포지엄 행사 (2003. 11. 16. 항용(제) 제공) (1) 일시 : 2003. 11. 14. 14:00--17:00 (2) 장소 : 충남 천안시 성정동 천안문화원 소강당 (3) 주제 : 충무공 김시민장군과 천안의 정신문화 (4) 참석자 : 지역 유관기관장, 지역인사, 안동김씨 종친 60여 명 등 약 300여 명 (5) 주최 : 충무공 김시민 장군 기념 사업회
아침 출근부터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충무공 김시민장군 학술심포지엄이 있는 날이다. 서둘러 직장 일을 마치고 천안에 가야했다. 오후 수업을 오전으로 돌려 조정된 3시간의 수업을 연이어 하고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12시 40분이다. 때마침 무궁화호를 탈 수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는 열차의 차창 밖, 늦가을 풍경은 형형색색의 파노라마가 앞에서 뒤로 끝없이 가고 또 온다.
불과 50분만에 천안에 도착했다. 택시로 천안 문화원에 도착하니 많은 차량이 주차장에 가득하다. 조금 늦었다. 이미 식이 시작되었다. 식장에 들어서자 南應대부님(제, 기념사업회 부회장)께서 친절히 맞아주시며 자리도 잡아 주신다. 존경하는 대종회 泰麟회장님께서도 벌써 앞자리에 와 계신다.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약 300여 명이 모였다. 감사패 증정이 있고 기념사업회 허용기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곧 연구발표로 들어갔다.
제1 발표자는 청운대 김경수 교수이다.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전투와 충절정신>을 주제로 했다. 장군의 가계와 생애, 진주대첩의 과정, 진주성 전투의 승리 요건과 김시민의 충절정신 등을 구명(究明)하고자 했다. 아울러 현재의 문제점으로 천안 병천에 있었으며 장군의 위패를 모셨던 충렬사(忠烈祠)가 훼철된 이후 김시민장군의 천안 추모행사가 사라진 점, 병천에 있는 김시민 장군 생가터 안내 표지판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제2 발표자는 공주대학의 이해준 교수이다. <천안 김시민 장군 유적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김시민 장군과 천안과의 관련성을 각종 문헌의 기록과 일화면에서 발표하였다. 그리고 김시민 장군과 관련한 병천 지역의 유적들을 종합하여 제시했다. 그런데 김시민 장군 생가지의 문화재 지정을 위해서는 좀더 확실한 자료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이곳에 살던 김시민 장군의 외조부인 李成椿(창평이씨)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성춘에겐 따님만 두 분 계셨는데 큰 따님이 구암공(휘 충갑)과 혼인하였다. 구암공은 당시 부호였던 그 집의 전 재산을 물려받았을 것이고 그 곳에서 충무공이 탄생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료를 몹시 필요로 했다.
제3 발표자는 천안 향토사 연구소장인 김성열 소장이다. 김 소장은 <김시민 장군의 정신 선양 계승 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하였다. 김시민 장군의 정신에 대한 교육적 전승 유전 홍보전략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한 김소장은 현 초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김시민 장군 기록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하였는데 놀랍게도 초등학교에는 어떤 기록도 없고 중학교에 교과서에는 "김시민은 진주에서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임진왜란 중 관군과 의병활동이라는 지도에 진주혈전이란 글자 밑에 김시민장군 이란 이름이 한 번 나오고 있는 실정임을 발표하였다. 또한 천안의 초등학생에게 김시민 장군을 아느냐는 물음에는 43.7%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제4 발표자는 충남 발전연구원이며 문화재 전무위원인 박상훈 선생이다. <김시민 장군 유적 정비 활용방안>이란 주제하에 박선생은 천안, 괴산, 진주에 있는 김시민 장군 관련 유적들을 소개하고 국내 유명 인사의 생가지와 천안 인근에 있는 주요 인사들의 유적에 대한 보존 관리 사례를 열거하면서 김시민 장군 유적의 정비·활용 방안을 문화적 측면, 교육적 측면, 공공적 측면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여기서도 김시민 장군 생가지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학술적 고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잠시 휴식을 하고 난 뒤 토론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공주대 윤용혁 교수는 김시민 장군 기념사업 활동과 사당 건립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발표했고, 천안대 김춘식 교수는 생가지와 기념관 건립 예정지가 너무 떨어져 있는 점과 사사처(射蛇處) 정비의 방법과 필요성,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보완, 국가적 사업으로의 개발 추진 등을 강조했다. 또 향토사학자인 김영한님은 천안에 있는 대학에 <김시민 장군 전문 연구소> 설치와 문화원 주관하에 김시민 자료에 대한 전문종합 책자 발간을 제안했다. 민병달 문화원장은 장군의 위대성에 대한 현창 소홀을 지적하고 장군의 유물과 유품 등이 하나도 전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한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제안했다. 이로써 모든 행사는 종료되었다.
회의 시작 시 참석했던 천안시 유관기관의 주요 인사, 의회의원 등은 주제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거의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퇴장해 버렸다. 텅 비어 버린 맨 앞줄 자리에는 泰麟 대종회장님만이 혼자 앉아 전 발표 내용을 끝까지 경청하셨다. 그리고 60 여 종친 여러분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경청하셨다. 특히 김시민장군의 아우인 충숙공 김시약 장군 현양 사업회 이춘우 회장님도 참석하여자리를 빛내 주셨다. 안사연에서는 저와 상석대부님이 참석했는데 상석대부님은 멀리 사업차 전남 땅끝 마을까지 갔다가 상경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피곤함도 뒤로하고 찾아오신 대부님의 열정에 감복했다.
행사를 마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인근에 있는 식당(토인비)으로 옮겼다. 종친 몇몇 어른들께 약주와 인사를 올리고 발표자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연구와 발표에 깊은 감사 말씀을 전하고 장군에 대한 어떤 유물이나 유품 등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차에 발견된 김시민 장군관련 서찰과 신도비문에 대해 준비된 자료를 전달하고 자세히 설명했다. 또 안사연의 활동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모두들 놀랬다. 청운대 김경수 교수는 이번 발표 자료로 우리 홈페이지를 많이 참고했음을 주제 발표시에 밝히기도 했는데 나와 인사를 나누며 알차고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는 우리 홈페이지에 대해 부러움과 놀라움을 전했다.
이날 대종회장님은 기념사업회 허용기회장에게 기념화환과 금일봉을 전달하시기도 했다. 빈손으로 갔던 우리 종친 모두의 부끄러움을 면하게 해 주셨다. 참으로 감사했다.
식사 후 남응대부님이 어렵게 마련해 주신 발표 자료집 약 80여 권을 상석대부님 차에 싣고 서울로 향했다. 많이 밀렸다. 7시에 떠난 차는 2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나는 안양에서 내려 지하철로 서울에 오려 했는데 상석대부님은 끝까지 우기시며 나를 서울 개포동 우리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이 노고와 감사를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생가지와 유적들이 조속히 문화재로 지정되고 기념관 및 생가복원 사업이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되돌아본다.
<감사패 증정>
<허용기 회장 인사말>
<발표자 소개>
<태인 대종회 회장님과 허용기 기념사업회 회장(우측)>
<발표자의 발표장면>
<청중 및 종친 여러분> 영묵(제학공파종회장), 한식(제, 전 괴산 진천군수), 규형(제) 등이 보임
<청중 및 종친 여러분> 창규(제.전 문영공파종회장), 상옥(제. 전 문영공파종회장), 태옥(제학공파 총무) 등이 보임
<태인 대종회장님과 허용기 기념사업회장>
<주제 발표 장면>
<토론자의 발표장면>
<토론자 발표 장면>
<행사후 기념촬영> 태인회장님(안,1열 우에서 4번째), 남응(제. 2열, 좌 1번째) 창규(제, 2열 좌에서 2번째), 학응(전 제학공파 종회장, 2열 좌에서 4번째), 이춘우(충숙공 김시약 장군 현양사업회장. 2열 우에서 3번째). 항용(제, 홈페이지 관리자)
<심포지엄 자료집(좌), 안내 팜플렛(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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