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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2)《전언왕행록》에서 (2003. 7. 29. 태서(익) 제공) 선천 군수(宣川郡守)김응하(金應河)는 좌영장(左營將)으로서, 대장의 항복을 보고 그 분함을 이기지 못했는데 심하(深河)에 이르러 버드나무를 의지하고 화살을 뽑아 적 8~9명을 연달아 쏘아 죽였다. 화살이 떨어지자, 그는 칼을 휘둘러 적을 베다가 칼이 부러지니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이러한 이유로 노적(奴賊)은 그 나무를 불러 ‘장군류(將軍柳)’라고 하였다
3)《공사견문》에서 (2003. 6. 28. 태서(익) 제공) ○ 김응하(金應河)가 아직 현달하지 않을 때에, 철원(鐵原)의 양전감관이 되었는데, 균전사(均田使)가 그 전답의 품등을 높여 세(稅)를 올리려고 하는 것을 응하가 고집하고 즐기지 않아서, 볼기를 맞았으나 오히려 전의 소견을 고집하였다. 철원의 백성이 지금까지 그 덕을 감사히 여긴다. 《공사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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