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본문

p11.png 김응하(金應河)

p05.png 13.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종합

9) 유적 자료 의견

(2002. 10. 1. 주회(안) 제공)

부사공파이신 충무공 김응하(金應河) 장군은 1580(선조 13)∼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경희(景羲)이며. 1580년(선조13) 3월 철원군 어운면 갈운동 (현 하갈리)에서 고려의 첨의중찬 상장군 충렬공 김방경의 10대손 地四(지사)의 장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조선시대 무신의 최고 영예인 충무공 (※조선시대 忠武公은 이순신, 김시민, 김응하 등 10명 이내이라고 함) 으로 봉군되신 분으로 무신이면서도 필적을 남겨 2점이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필적 1점은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에, 또 1점은 안동김씨 화수록에 있습니다. 참고로 충무공 김응하 장군 영정 1점이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에 1점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중구 소장> 으로 되어 있는데 조중구 라는 분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 <근역서화징>에서

(2002. 10. 1. 주회(안) 제공)

충무공 김응하의 초상화가 너무 오래되어 닳아 없어져서 신묘년(영조41,1771) 봄에 화사 한종유로 하여금 모사하게 하여 중간했다 (중간충렬록)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역서화징 (1928, 오세창)

金厚臣(김후신)

호는 이재. 벼슬은 찰방 충무공 김응하가 <적을 만나 군진을 해산하는 그림>과 <나무에 의지하여 적을 쏘는 그림>과 <죽은 뒤에 칼을 들고 선 모습>과 <두 장수가 항복하는 그림>은 전 찰방 김후신이 그린 것이다 (중간충렬록)

 

韓宗裕(한종유)

본관은 신평. 교수 한후량의 증손. 화원으로 벼슬은 감목관. 충무공 김응하의 초상화가 너무 오래되어 닳아 없어져서 신묘년(영조41,1771) 봄에 화사 한종유로 하여금 모사하게 하여 중간했다 (중간충렬록)

 

11)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2002. 10. 1. 주회(안) 제공)

金應河筆蹟 s1293

書畵 筆蹟

사자 1293

金應河

1(2), 초서, 25×15cm

필적 말미에 應河의 휘호, 근역서휘 제9책 所收, 촬영:1933. 3.

소장:경성 소격동 144 朴榮喆, 현 서울대박물관(1940 수증)

조선 중기 무신으로서 金方慶의 후손인 김응하(1580∼1619)의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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