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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묘소 및 주요 유적 1). <충남 천안시 병천면 일대>
<문숙공(文肅公. 諱 永暾) 영단> <상락백공(上洛伯公. 諱 縝) 영단>
<제학공(提學公. 諱 益達) 영단>
<주부공(主簿公 諱 哲鈞) 묘소>
<거북바위(구암)>
<가전리 구암바위> <사사처 표석>
<구암바위 栢田洞天 글씨> <구암바위 安東金氏世居>글씨
<사사처 표석 뒤 음기>
<구암바위 앞에서> <도정강사>
<시제 봉행 장면>(2002. 11. 10) <김태현님의 예절 강의>
<정기총회 장면>(2003. 11. 10) <김재홍님의 공덕비>(병천면 병천리 유관순 기념과 입구)
<충무공 김시민 장군유허비> (2004. 9. 23. 건립)
<유허비>
<건립기>
<유허비 옆의 구암 바위와 사사처>
2). <충북 괴산군 괴산읍, 문광면 일대>
<능촌리 마을 전경>
<영상공(領相公 諱 錫) 묘소>
<祭閣>(영상공,구암공 이하 후손 제각)
<취묵당>(백곡 김득신 선조께서 짓고 글 읽으시던 곳)
<연천공 영정각>
<충민사>
<의재공(諱 悌甲) 祭閣>
<세덕사(世德祠)>(비안공 문중 사당)
<문광면 문법리 마을 입구의 영상공(諱 錫) 께서 조성하신 숲과 이문거리표>
<개향산 묘역 전경>
*조사 자료 소개 (2006. 5. 5. 김항용 조사 및 현지인 담화 내용 채록) 가. 위치 :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돌주골 고개 나. 제작연대 : 미상. 약 300여 년 전으로 추정 다. 종류 : 미륵불상 라. 크기(단위:cm) : 총 높이-440, 좌우 폭 : 175, 둘레 : 470, 얼굴부분 상하 길이 : 135 마. 전래 과정 : 이 미륵불상은 옛날부터 본 능촌리 마을 앞의 괴강 뚝을 따라 제월리쪽으로 가다가 있는 독족골(현 쓰레기 종합 처리장)에 있었던 것이다. 약 300여 년 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보이는 이 미륵불상은 1949년 경에는 나무로 된 갓을 쓰고 있었으며 비스듬히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이때 동네 현지인들은 무당을 불러 일어나게 해 달라고 굿을 하기도 했음. 구체적인 제작자와 제작 동기, 제작연대는 모름.
그런데 1990년 경 이 불상을 도난당한 적이 있음. 이에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전국에 수배함. 결국 경찰의 도움으로 곧 경북 포항의 비치호텔에서 발견되어 다시 이곳 능촌리로 옮겨와 세운 것임.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음. 현재 이와 관련한 특별한 행사는 없으며 능촌리 마을의 신준식씨(75세)가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괴산군천 홈페이지 기록 내용> 능톤리 석불은 능촌리 돌주골 고개에 서 있는 석불입상이다. 높이 약5m,둘레 4.7m의 자연석을 다듬어 1.5m크기의 불두(佛頭)만을 조각하고 목 이하는 생략되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이마 위에서 약간 높은 한단의 선으로 구부하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양각되어 있고 두눈은 은행알 모양에 눈동자를 선각했다. 코는 넓으며 입은 일자(一字)의 선으로 표시하였다. 두 귀는 짧고 목이 생략되어 유중한 인상을 준다. 법의의 문양은 없으나 짙은 색조의 몸돌에 광입된 석영. 장석질의 띠가 좌우 어깨에서 x자로 앞면을 가로지르고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법의를 걸친 것처럼 보인다. 이석불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9년 도난당했던 것을 1990년 4월 포항에서 되찾아왔다.
<미륵 불상 전면>
<미륵 불상 상단>
3). <충남 공주시 공주산성 내> (2001. 10. 항용(제) 제공)
<충청도 관찰사 4위 不忘碑>-1649년(인조 27년) 경에 충남 공주군 공주 공산성에 세웠던 것인데 훼손 분실됨. 이에 1992년 안동김씨 공주문중회에서 주관하여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문중 역대 선조 4위 관찰사 불망비를 세움. 우로부터-金悌甲, 金億齡, 金時獻, 金素
4). <충북 괴산군 사리면 일대> (通德郞公系 桃花洞 門中) * 도화동 문중 世系圖 (2003. 10. 3. 容斗(제) 소장자료. 항용(제) 제공) 益達(제학공)-顧-孟廉-哲鉉(2자.통덕랑공)-壽龜(2자)-夏龍-南濟-台受-順貞(3자)-泳-得義(2자)-性伯-瑢-信宗-起韓-必元-光礪-興年-永浩(3자)-相赫-時應-奎魯-成鏞(원식)-雲澤(용두)
가)주요 문중 유적 자료 소개
<안동김씨문헌고>(1998. 金容斗 발행)
<효열각 전경> <효열각 현판>
<효열각 정문 안의 비석> <효열각 안의 효자 時應 정려기>
안동김문 효열각은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진암에 있으며, 효자 김상혁( 金相赫)과 열녀(烈女) 김상혁의 처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정려와 효자 김시응(金時應)의 정려를 합설한 것이다. 김상혁은 나이 16세에 부친이 발병하자 단지수혈(斷指輸血)하고 부친사후 3년을 시묘하였다. 그의 처 전주이씨는 남편이 병이 들었을 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우육(牛肉)이라 하고 먹였더니 병이 나았다.
김시응은 부친과 조모의 병을 정성으로 치료하였으며, 부친이 위독하자 단지수혈(斷指輸血)하고 상을 당하여서는 시묘에 정성을 다하였다. 효열각 안에는 "朝鮮孝子金公相赫烈女全州李氏之閭" 라 쓴 편액이 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孝烈閣]이란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이상 <괴산군청 홈페이지> 소개 내용)
<효자 상혁, 열부 전주이씨 묘소 및 묘비> (충북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도화동)
<金南濟(종손 용두의 17대조) 교지> <金順貞(종손 용두의 15대조) 교지>
金南濟 朝散大夫 知槐山郡守兼勸農兵馬團練副官者 幼學金順貞進士二等第十二人入格者 正統六年 五月初一日 (1436년. 세종18) 弘治十四年三月(1501년.연산7)
<김기한(종손 용두의 9대조) 교지> <김기한(종손 용두의 9대조) 교지>
金起韓爲通政大夫者 雍正六年三月初七日 金起韓折衝將軍行龍馬襄衛副護軍者 雍正六年七月 (1728년 영조4) 年八十三賀資事 (1728년.영조4)
<김원식(용두씨의 부친) 효자 표창장> <김용두 종친의 증산왕 표창장>
2) 김철응 정려각
이 정문(旌門)은 괴산군 사리면 중흥리 진암(鎭巖)마을에 있으며, 효자 김철응의 정려로 세운것이다. 김철응의 자는 중길(仲吉),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대제학(大提學) 김익달(金益達)의 후손이다. 유년시절부터 부모에 효성이 지극하고 집안 일에 정성을 다하여 동리사람들로부터 ´효동(孝童)´이라 불이었다. 7세때 부모님이 다같이 괴질에 걸려 두분 다 위독함을 보고 어린나이에도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시탕(侍湯).탕을 달여 간호함)하고 간호하는 행동이 어른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효자문 안에는 "孝子安東金哲應之閭" 라 쓴 편액과 그의 가계(家系)와 행실을 담은 "金孝子哲應表門公函" 판각이 있다.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며, ´孝子門´ 이란 현판을 달고 주위에 철책을 둘렀다.
(이상 괴산군청 홈페이지 소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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