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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윤공 영단 시제 참배 및 판서공(휘 돈) 묘소 찾기 기원제
1. 일시 : 2002. 10. 13. 11:00--18:00 2. 장소 :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 지월리 및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3. 참가자 : 7명(무순)-- 발용(군), 태영(군), 항용(제), 은회(익), 영윤(문), 윤만(문), 태영(문)
4. 활동내용 :
5. 세부 활동내용--태영(문) 작성. 발용(군) 촬영 지난 8월 개성윤공 휘 칠림(七霖) 할아버지 단소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현지를 답사한 발용 종친의 노고 덕분에 10월 12일(일요일) 개성윤공 시제에 수도권에 살고 있는 안사연 회원 7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해 발용 종친의 연락을 받은 항용 종친께서 하루 전인 11일 오후 늦게 <긴급>으로 참배 공고를 했는데도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이 공고와 전화 연락을 받고 아침 일찍 만사를 제쳐놓고 윤만, 태영(군) 종친께서 합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계신 여러 분들께서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참석자(존칭 생략, 무순) --군사공파 발용, 태영, 제학공파 항용 익원공파 은회, 문온공파 영윤, 윤만, 태영
밤새 천둥 번개가 요란해 걱정이 컸는데, 막상 날이 밝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활짝 개어 있었습니다. 마치 가을 소풍날 같은 날씨였습니다. 개성윤공파 종친들께서는 대부분 북한에 거주하셔서 이 날 시제에는 많은 분들이 모이시지는 못했습니다만, 월남 2세인 청·장년층이 다수 참석해 앞날을 밝게 했습니다. 12시경 개성윤공 할아버지 단소에서는 이미 정성껏 마련한 제물의 진설이 거의 끝난 상태였습니다. 안사연 회원 일행이 도착하자 개성윤공파 어르신들께서 함박 웃음을 지으시며 반갑게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낯익은 분이 계셨습니다. 지난 9월 1일 서운관정공파 경수마을 선조묘역 참배시 뵈었던 서운관정공파 부회장님께서도 개성윤공 할아버지 시제에 참석하시기 위해 미리 도착해 계셨습니다. 경수마을이 지척이기에 잊지 않고 참석하셨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뭉클하고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습니다.
곧바로 시제가 시작되었는데, 휘 칠림 할아버지의 바로 동생분이 군사공 휘 칠양(七陽) 할아버지이시기에 안사연 회원 중 군사공파 종친께서 아헌관을 맡아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발용 종친께서는 사진을 담당하셨기에 종사에 익숙하신 태영(군) 종친께서 의관을 갖추었습니다. 항용 종친께서는 마침 집사 한 사람이 모자라 집사를 보셨습니다.
시제에 이어 창식 전임회장과 상국 신임회장께서 결산보고를 마치고 서운관정공파 부회장님과 우리 안사연 회원을 일일이 소개해 주셨습니다. 개성윤공파 어르신들께서는 거듭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소개가 끝나고 발용 종친께서 준비한 안사연 홈페이지 복사물을 배부한 다음 항용 종친께서 안사연 모임 및 그 동안의 활동 등의 소개와 함께 개성윤공파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렸습니다. 시제에 참여한 개성윤공파 종성(鐘成:재 항렬), 이경(履暻:식 항렬) 등 월남 2세들이 앞으로 적극 참여하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안사연 회원들은 즉석에서 회비를 모아 12만원을 시제에 보태시도록 하였습니다.
개성윤공파는 파명에 <개성>이란 낱말이 들어 있어 막연히 개성에 많이 거주하시리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평안북도 박천군에 오래 세거하셨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대성이어서 박천군의 각 면(面)에 우리 일가분들이 살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평북 정주, 영변, 태천 등지와 평남 숙천에도 오래 세거했는데, 평남 숙천의 경우에는 약 150호 정도 사셨다고 합니다. 특히 <평북 박천군 양가면 유대>라는 곳이 해안가 포구인데, 이곳에 개성윤공 할아버지를 기리는 비각(碑閣)이 있다고 합니다. 이토록 많은 분들이 평안도 지역에 거주하셨는데, 월남한 분들은 약 270호 정도뿐이라고 합니다. 남한 지역의 개성윤공파 종회는 1957∼1958년경 결성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현윤 종친의 공로가 컸다고 합니다. 이분은 바로 개성윤공 할아버지 단소 입구에 있는 송덕비(人山 金賢潤선생 송덕비)의 주인공이십니다. 현윤 종친께서는 월남 후 동대문시장에서 일육상회라는 의류 점포를 운영하셨는데, 전국 판매망을 갖출 정도로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답니다. 바로 그분 소유의 12,000평 중 1,800평을 매입, 분할 등기해 개성윤공 할아버지 단소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개성윤공파보는 월남 후 2차례 수단을 받아 발간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광복 전 파보를 저본으로 삼았답니다. 혈혈단신 월남한 개성윤공파 일가분들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맛있고 뜻깊은 점심을 먹고 난 뒤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판서공(휘 돈) 묘소 찾기 기원제>
이후 안사연 회원들은 자리를 옮겨 고덕동 양촌허씨 묘역 인근으로 향했습니다. 실전된 휘 돈 할아버지 묘소를 찾기 위해 수년간 애쓰고 계신 발용 종친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상일동역 인근에서 간소한 제물을 마련한 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정갈한 곳을 찾아 임시로 제단을 마련했습니다. 항용 종친께서 휘 돈 할아버지 지방과 축문을 작성, 참석자들은 간소한 시제를 올렸습니다. 초헌관과 아헌관은 혈손이신 발용, 태영(군) 종친께서, 종헌관은 근연이신 문온공파 영윤 종친께서 각각 수행했습니다.
◆제문(항용 종친 즉석 찬) 유세차 서기 2002년 10월 12일 19대손 발용은 삼가 고하나이다. 가선대부 이조판서이신 판서공이시여. 할아버지께서는 조선조 세종대에 이 나라 부국강병과 국태민안의 최선봉에서 활약하시어 명예 높으신 분으로 사적에 길이 전해 오고 있사옵니다. 그동안 대대로 할아버님 묘소에 제례를 올리며 빛나는 공과 업적을 기리고 제례를 올려 왔사오나 부족한 후손들의 불효와 불례로 근년에는 제례를 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묘소조차 실전하여 비통한 심정에 빠져 있는 망극한 일에 당면해 있사옵니다. 이에 근래 불초 후손이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르고 이곳 근처를 맴돌며 할아버님의 묘소와 혼령을 찾으려 수차 헤매다가 오늘 안사연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간단한 제수와 예로써 제사해 올리오니 강림하시어 흠향하시옵소서. 尙饗
이윽고 은회(익) 종친께서 바쁘신 중에도 인근에 도착하셨다는 연락이 왔고, 은회 종친께서 합류해 7명의 안사연 식구들이 단풍 든 숲 속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가벼운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서너 시간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숲 속에 어둑어둑한 기운이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인근 성내동에 문온공파 회관 건물이 있기에 그곳에 세 들어 있는 맥줏집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주인은 멀리 출타 중이라 헛걸음이었습니다. 길 건너 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을 한 그릇씩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짐작하시듯이 안사연 발전에 관한 것을 비롯해 문중 발전을 위해 안사연 회원들이 뒷받침해야 할 일 등등 여러 가지였습니다. 이 일들은 힘을 모아 차차 진행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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