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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시:2003년 9월 28일 (2)장 소: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숭의전 (3)참석자(무순, 존칭 생략):명회(대종회 사무국장), 세응(제), 상석, 발용, 항용, 용주(안) 가족(부인, 상용, 용환 및 조카), 윤식
(4) <숭의전 추계대제 참례 보고 후기> (2003. 9. 29. 윤식(문) 제공)
영등포역에 도착하니 7시 20분이 넘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한 마음을 달래느라 창 밖을 연신 내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와락 껴안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상석 종친이십니다. 지난 번 사패산 김구 선생님 유적지를 탐방할 때에도 전철 안에서 뵈었는데…! 다행히 약속시간에 대어 용산역 집결장소에 도착하니 대종회 사무국장과 세응 종친, 항용 종친께서 반가이 맞아주십니다. 세응 종친께서는 제학공파로서 상철(在항) 종친의 아드님이십니다. 상철 종친께서는 손꼽히는 유학자로서 종사에 크게 기여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1992년 전세계 한학자들이 실력을 겨룬 '세계 한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여 우리 문중을 빛낸 분이신데, 애석하게도 올 초 운명을 달리하시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드디어 8시 15분 연천의 숭의전을 향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면천복씨 문중에서는 관광버스 2대를 대절, 희성인 면천복씨 종인들을 대거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면천복씨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고려 개국공신 중 한 분인 복지겸 장군의 후손입니다. 일요일 아침 잘 닦인 자유로를 달려 문산인터체인지로 접어듭니다. 경순대왕릉 가는 길 중 하나입니다. 화석정을 지나 파평윤씨 발상지인 파주시 파평면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숭의전에 도착하니 10시 15분입니다. 아미산 자락에 기대어 지은 숭의전은 고려 태조 등 고려조 임금 4분과 충렬공(휘 방경)을 비롯해 청사에 빛나는 고려 충신 16분을 모신 곳입니다. 숭의전에 관련된 내용은 게시판에 올라온 상세한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본래 고려 태조(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 터였다고 합니다. 현 건물은 한국동란으로 모두 불타 1972년부터 연차적으로 복원하였습니다. 깎아지른 임진강 상류에 자리잡은 곳인지라 비록 숭의전 경역은 좁아 보였으나 경관이 빼어났습니다.
전각과 부속건물은 정전인 숭의전(崇義殿)을 비롯해 배신청(陪臣廳), 이안청(移安廳), 전사청(典祀廳), 앙암재(仰巖齋) 및 고직사(庫直舍)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각은 모두 맞배지붕의 익공집이고, 규모도 크지 않아 소박해 보입니다. 숭의전 입구의 어수정(御水井)에서 언덕을 잠시 올라가면 고직사가 정면에 보입니다. 어수정은 궁예의 휘하 장수로 있던 왕건이 개성과 철원을 왕래하면서 그 중간 지점이었던 이곳 앙암사에 들러 잠시 쉬면서 목을 축였던 곳이라 합니다. 언덕길이 끝나는 곳 왼쪽의 첫 건물이 앙암재입니다. 그 옆이 전사청, 그리고 중문을 통해 정전과 배신청 및 이안청으로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경사가 급한 곳에 건물을 세우느라 검은색 현무암으로 높다랗게 기단을 쌓았습니다. 이곳은 추가령 지구대에 속한 곳으로 현무암이 흔합니다. 특히 숭의전의 정문 쪽은 더욱 높아 기단이 9벌이나 됩니다. 그 위에 자연석을 박은 하얀색 벽담을 쌓았습니다. 검고 흰 배색의 어울림이 단순 명쾌합니다.
추향대제가 시작되기 전 우리 일행은 배신청에 들러 충렬공 할아버지 위패를 찾았습니다. 할아버지 위패에는 <僉議令 忠烈公 金方慶(첨의령 충렬공 김방경)>이라 적혀 있습니다. 옷깃을 다시 한 번 여미고 큰절을 올립니다. 11시 정각, 숭의전 추향대제 분정기(分定記) 작성이 끝났습니다. 우리 문중에서는 항용 종친께서 분헌관(分獻官)을 맡으셨습니다. 드디어 11시 28분 추계대제가 봉행되었습니다. 행사 규모는 조촐하였지만 경건하고 순조롭게 대제가 진행되었습니다. 고려조 임금 4분에 대한 제향이 끝나고 배향된 16분의 고려 충신에 대한 헌작이 12시 15분에 시작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배신청 가까이 몰려듭니다. 전면 3칸의 협소한 곳에 일렬로 16분의 위패를 모신 탓에 분헌관들이 앉아 있기에는 아주 불편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16성씨의 종인들이 배신청을 향해 부복해 있는 모습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경건함 그 자체였습니다.
숭의전 행사는 행사는 경순대왕 대제 때보다 조금 더 길어 근 2시간이나 걸려 12시 20분에 끝났습니다. 우리 일행은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들고 잔디밭에 모여 점심을 들었습니다. 도시락을 다 먹었을 즈음 사무국장께서 지인을 만나셨는지 반갑게 부르십니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안렴사공파 화산군 할아버지 후손이신 용주 종친 부부를 비롯해 형제분(상용, 용환 종친)과 조카분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 더 화기애애해졌습니다. 화산군 할아버지 문집인 <우암집>을 비롯해 여러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용주 종친 형제분들께서는 평소 종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로 <우암집> 국역을 계획 중이라고 하십니다.
아침에 출발한 용산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되었습니다. 즉석에서 뒤풀이 장소를 백범기념관 인근의 설렁탕집으로 정하고 백범 선생님 묘소로 향했습니다. 백범 선생님 묘소에 들러 큰절로 참배를 한 다음 인근 삼의사 묘역에 들러 백범 선생님과 열사들의 고귀한 정신을 다시 되새깁니다.
참배를 마치고 설렁탕집에 들어서니 안주인이 반색을 합니다. 이 집은 사무국장께서 단골로 다니시는 곳이라 합니다. 발용 종친께서는 올해 초 백범기념관 개관 이후 안사연 활동과 관련된 행사로 벌써 4번째 백범기념관을 찾았다고 합니다. 든든하게 저녁과 반주를 들고 나니 해거름이 다 되었습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무척 상쾌합니다. 게다가 가족들이 대거 참여하신 용주 종친 형제분들을 만나니 더욱 그러합니다. 아쉬운 마음을 작별인사로 대신하고 저마다 귀갓길을 서두릅니다.
이상 숭의전 추향대제 참례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5)관련 사진 소개 (2003. 9. 28. 발용(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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