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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렬공 시제 참례 보고 (2003. 11.4. 윤식(문) 제공)
◆일시:2003년 음력 10월 9일(양력 11월 2일) ◆장소:충렬공 묘소 -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능동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단묘 -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 ◆참석자:총 29명(성인 27명, 어린이 2명) ◆명단:(무순, 존칭 생략) - 안사연에서는 웃대 어른들께서 말씀하신 '백대지친', '숭조목족'을 받들고, 우리 문중의 대동단결을 위해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파별 구분을 하지 않기로 하고 이에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는 동명이인이 계시고, 안사연 이외 분들도 많이 참가하셨기에 부득이 파별 구분을 하였습니다.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환(문·문온공파종회 부회장), 영욱(문) 부부, 영윤(문), 용진(안·在항·문중역사 원로 연구가), 상석(제·在항), 상하(제·在항·상석 종친 아우) 및 자제분, 윤만(문·會항), 우회(도) 부부, 발용(군·會항), 규면(서·泰항), 태영(군), 태우(군), 태서(제·21세기 군사연구소 소장), 규석(제·泰항), 태영(제·규석 종친 사촌동생), 철호(서·植항·서운관정공파 사무국장), 항용(제·植항), 주희(서·容항), 용환(안) 및 자제분, 윤식(문) 부부, 기타 1명
◆<참례 준비 개요> 충렬공과 배위 죽주박씨 할머니 시제가 11월 2일 능동과 회곡리에서 각각 봉행되었습니다. 대종회와 대종회장님, 종친 여러분의 후원과 협조 덕분에 안사연에서는 광명관광의 대형버스 1대를 빌려 시제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제 참례 계획은 2003년 10월 19일 도봉산 산행 행사 당시 중지를 모아 구체화됨으로써 차근차근 준비해 왔습니다. 그 이후 안사연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3차례에 걸쳐 충렬공 시향 안내 및 전세버스 운행계획을 공고하였으며, 다수 종인들께서 동참하시게 되었습니다.
◆<출발(05:30∼능골 도착(08:55)> 사전 공고에 따라 용진, 상석, 상하, 윤만, 규면, 철호, 주희 종친 등께서 04:00 이전에 광명시 차고지에 도착, 가장 먼저 승차하여 출발지인 잠실 롯데호텔 미키마우스상 앞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곧이어 영환 종친을 비롯한 참가 종인들께서 속속 도착하여 단 한 사람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아 계획대로 05:30분에 안동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선 터라 피곤하실 텐데도 다들 함박 웃음입니다. 늦가을로 접어든 터라 차창 밖은 칠흑같은 어둠이었습니다. 잠시 후 2차 합류지인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영욱 종친 부부를 비롯해 영윤, 발용 종친께서 동승하여 최종 동승 인원이 29명으로 늘었습니다.
참석 종친들은 항용 종친의 사회 아래 각자 간략한 자기소개를 한 다음 버스 안에서 특별한 아침을 들었습니다. 종친들의 화기애애한 이야기꽃 속에 나누어 먹는 김밥 맛이 각별했습니다. 이 김밥은 발용 종친께서 부인과 함께 밤새도록 정성껏 준비한 것입니다. 게다가 따끈따끈하게 데운 캔커피와 귤, 물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발용 종친 부인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영환 종친께서 <충렬공 묘소의 실전 및 발견>에 관한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용은 충렬공 묘소의 발견에 따른 시대 상황과 그 경위, 충렬공을 중심으로 한 우리 문중과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조 김효로 공과의 혼인 관계, 이후 동산수호(同山守護)를 해 오고 있는 우리 문중과 광김 예안파의 각별한 관계 등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어 용진 종친께서 <충렬공 신도비문의 상락군에 대한 고찰>(별도 게시물 참조) 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충렬공 군호에 대한 문제는 문중사 연구에 진력해 오신 용진, 재승 종친께서 여러 해 전부터 강조한 중요 내용입니다. 용진 종친께서는 지난 2002년 11월 안사연의 강화도 탐방 행사 당시 이 문제를 집중 설명하였으며, 재승 종친께서는 대종회보 제75호를 통해 그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08:10분 서안동IC에 도착, 안동시내로 접어들었습니다. 휴대전화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정중(도) 종친께서 회사일로 시제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전하면서 행사를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하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이외에도 태서(익) 종친께서 집안일과 행사로 인해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무사 귀가를 전해 왔습니다.
죽송리 능동으로 향하면서 윤만 종친께서 <충렬공의 치수사업>을 주제로 한 특강이 이어졌습니다. 내용은 우리 나라 최초의 간척사업으로 평가받는 충렬공의 위도 간척사업을 비롯해 강화도 간척사업, 의림지 축조사업 및 전국에 산재한 주요 간척 및 제방 축조에 관한 것입니다. 윤만 종친의 특강은 지난 여름 실시된 <제2회 안사연 여름캠프> 당시 발표된 것으로 그 요지는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능골 음수재에 도착한 시각은 예상보다 15분 정도 늦은 08:55분이었습니다. 음수재 좁은 도로에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버스와 승용차 등으로 차를 댈 공간이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음수재 마당과 충렬공 묘소 제전에도 종인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음수재 마당으로 들어서자 음수재를 관리하고 있는 봉회 종친께서 반갑게 손을 잡아 주십니다. 종인들께서는 서둘러 옷깃을 고쳐 여미며 충렬공 묘소로 올라갑니다.
◆충렬공 시향 봉행(09:00∼09:35) 09:00 정시에 분방기 게시를 시작으로 2003년도 충렬공 시향이 엄숙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참석 종인들은 대략 300여 명에 달해 참석 종인들이 서 있기에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모처럼 일요일에 거행되어 종인들께서 여느 해보다 많이 참석하신 듯했습니다. 충렬공 묘소 앞에 올라서니 낯익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십니다. 문온공파, 제학공파 등 관광버스를 대절한 파가 많아 여느 때보다 인사가 길어집니다. 맑고 밝은 웃음소리가 능골 가득히 퍼져 나갑니다. 향사가 진행되는 동안 발용 종친께서는 묘소 위아래는 물론 종인들 표정까지 담아내느라 바삐 옮겨다닙니다.
낭랑한 홀기 소리에 따라 알자의 인도로 태인 대종회장께서 초헌관으로서 헌작하신 데 이어 학수 종친과 영회 종친께서 아헌관과 종헌관을 맡으셨습니다.
올해 충렬공 시향 분방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헌관(初獻官) 태인(泰麟) ◇아헌관(亞獻官) 학수(鶴秀) ◇종헌관(終獻官) 영회(永會) ◇진 설(陳 設) 석교(奭敎) ◇대 축(大 祝) 장수(章秀) ◇찬 자(贊 者) 동수(東洙) ◇찬 인(贊 人) 용두(容斗) ◇봉 향(奉 香) 호석(浩奭) ◇봉 로(奉 爐) 태복(泰福) ◇봉 작(封 爵) 태옥(泰玉) ◇전 작(奠 爵) 용규(容奎) ◇사 준(司 준) 성식(成植) ◇시 도(時 到) 만길(滿吉)
충렬공 시제 봉행 직후 태인 대종회장께서는 "늦가을 화창한 날씨는 조상님의 음덕"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우리가 지금 조상님들의 위대한 업적을 경건히 받들 듯이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우러러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우리 문중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종인들의 단결과 종문의 결속을 다짐하였습니다.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시향 봉행(11:30∼12:00) 음수재 마당과 재직사에서 간단히 음복을 한 후 종인들은 회곡동으로 차를 돌립니다. 어느새 시각이 10시 15분입니다. 회곡동까지 소요시간이 꽤 되는 터라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회곡동으로 향하는 우리 일행에 도유사를 맡고 계신 봉수 종친께서 동승하였습니다. 충렬공과 냉평국대부인 묘사에 관한 이야기를 청하자 봉수 종친께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 내용은 안동으로 오는 도중에 영환 종친께서 설명해 주신 것과 같은 것인데 봉수 종친의 증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옛날, 광산김씨 예안파에서 제사를 봉행하려고 하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까막까치가 날아와 제물을 흐트려 놓았답니다. 도저히 제사를 모시기 어려워 충렬공 묘소에 먼저 제물을 올려 고한 다음 제사를 모시자 언제 그랬냐 싶게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답니다. 그 이후 광산김씨 예안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고 합니다.(이 내용은 우리 홈페이지에 자세한 내용이 게재되어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광산김씨 예안파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2일 시향을 봉행하고 있는데, 지금도 충렬공 묘소에 제물을 차려 예를 표한다고 합니다(광산김씨 예안파는 충렬공의 외외손이기도 합니다.). 올해 광산김씨 예안파 시향에는 약 40∼50명이 참석하였답니다. 광산김씨 예안파에서는 우리 문중과 달리 육류나 어류 등까지도 생물을 그대로 사용하며, 제물 종류는 우리 문중과 거의 동일하나 규모는 간소화하여 봉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락대를 마주보고 있는 회곡동으로 들어가는 언덕을 지나 11:09분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재실인 상락재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존호가 국대부인(國大夫人)이신 죽주박씨 할머니께서는 명문 죽주박씨 박익정 공의 따님이십니다. 국대부인 죽주박씨 묘소는 오랜 세월 실전되어 현재 설단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봉수 종친께서는 가설임을 전제로 임란 시기에 할머니 묘소를 왜병들이 범접할까 우려되어 평토한 후 구전으로 이어져 오다가 어느 순간 그만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봉수 종친께서는 회곡리가 고향이기에 이에 관한 이야기를 웃대 할아버지들로부터 들으셨을 것으로 짐작되며 가설로서 검토해 볼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11:30분에 분정기가 게시되고 시향이 이어졌습니다. 죽주박씨 할머니 시향 분방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향 집전 과정은 충렬공 시향과 유사하므로 생략합니다. ◇초헌관(初獻官) 태인(泰麟) ◇아헌관(亞獻官) 재석(在錫) ◇종헌관(終獻官) 현묵(玄默) ◇진 설(陳 設) 석교(奭敎) ◇대 축(大 祝) 장수(章秀) ◇찬 자(贊 者) 명회(明會) ◇찬 인(贊 人) 용두(容斗) ◇봉 향(奉 香) 호석(浩奭) ◇봉 로(奉 爐) 태옥(泰玉) ◇봉 작(封 爵) 용규(容奎) ◇전 작(奠 爵) 성식(成植) ◇사 준(司 준) 재극(在極) ◇시 도(時 到) 만길(滿吉)
충렬공과 죽주박씨 시향에 사용되고 있는 홀기는 무려 400여 년 간 이어져 온 것으로 우리 문중의 오랜 전통이 배어 있는 귀중한 보물입니다. 종인들께서는 향후 보존 대책을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고 이구동성입니다.
◆유허비각 및 옛 좌대 재조사 죽주박씨 시향 직전과 직후에 안사연에서는 현 유허비각 내의 비신과 건너편 안산 밭둑에 있는 옛 좌대를 재조사하였습니다. 이 좌대는 현지 종친들의 안내로 지난 여름 제2회 여름캠프 당시 1차 조사가 이루어져 현재 관련 자료들을 수집 중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 현 거북좌대에 파여 있는 비신 하단부 홈은 638mm(전면)×281mm(측면)으로서 옛 좌대와 거의 비슷합니다. 안산 밭둑에 있는 자연석 좌대는 638mm(전면)×301mm(측면)으로서 전면은 동일하며 측면만 2cm 차이가 납니다. 이로 보아 현 비신은 유허비각을 다시 세우면서 옮겨간 것으로 조심스레 추정합니다. 이 문제는 더욱 상고할 계획입니다.
◆귀가(회곡동 12:46∼서울 잠실 21:46) 시제 봉행 후 상락재로 내려와 음복과 함께 점심을 들고 다들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아쉬운 작별의 순간이었습니다. 안사연 회원들은 회곡리 입구에서, 하나둘 떠나가는 종인들을 바라보며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우리 일행에는 상천(제·在항) 종친을 비롯해 성회(안)·주회(안) 종친 및 태위(익) 종친께서 동승하셨습니다. 상천 종친께서는 제학공파종회와 대종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계십니다. 성회 종친께서는 전 대종회 부회장으로서 문중사에 밝아 '살아 있는 대동야승'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태위 종친께서는 대구지역의 익원공파와 도평의공파 종친들을 주축으로 안동김씨 대구종친회를 결성, 활발한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주회 종친은 안사연 활동에 막중한 역할을 수행, '안사연 보물'이라는 별칭을 얻은 바 있습니다.
귀로의 특강은 윤만 종친께서 <낙서공(휘 자점)의 정치활동 및 우리 문중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오랫동안 천착해 온 연구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내용은 현재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게시되고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용진 종친께서는 우리 대보에 9가지 시정사항을 말씀하시며 '태보공'으로 기록된 내용에 관한 상세한 고증과 함께 '대보공'으로 시급히 시정해야 하는 까닭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외에도 탑승한 여러 종친들께서 귀한 말씀들을 해 주셨으며, 용환 종친의 맏아들 수교 군은 충렬공 시향에 참례하니 가슴이 벅차다는 소감과 함께 앞으로 우리 문중에 관한 여러 사실들을 꾸준히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수교 군의 다짐에서 우리 미래가 밝은 것을 재삼 확인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일행은 청풍관광단지(14:10∼14:50)에 들러 말 그대로 만산홍엽의 불타는 단풍을 잠시 즐겼습니다. 뒤이어 충렬공께서 증축한 바 있는 충북 제천의 의림지(15:30∼16:50)를 둘러보고 충렬공의 행적을 되새긴 다음 잠시 목을 축이며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의림지를 벗어나자 이내 제천 시가지로 이어졌습니다. 아쉽게도 상천 종친과 주회 종친께서 헤어지실 시간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손을 흔드시는 두 분이 점점 멀어지며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지켜봅니다.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빌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합니다.
또한 18:37분 일죽휴게소에서 저녁을 든 다음 21:46분에 무사히 서울 잠실역 인근에 도착하였습니다. 한창 단풍철이라 귀로는 정월과 추석 때 못지않은 정도로 차가 막혔습니다. 다행히 광명관광에서 베테랑 기사분을 배정하여 국도와 지름길을 이용해 단시간 내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애쓰신 신(평산신씨) 기사님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한편, 이번 행사는 물론 안사연의 각종 행사와 모임은 그때 그때 즉석에서 경비를 갹출하여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사전에 대종회와 여러 어르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관계로 대종회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대종회장께서 버스 대절 관계를 전해 들으시고는 금일봉을 보내셨습니다. 경비의 자체적 해결을 원칙으로 하는 까닭에 여러 차례 말씀드렸으나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대종회장 말씀에 저희가 물러섰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상천 종친 역시 성의를 표하시며 금일봉을 전달하셨습니다. 역시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행사가 무사히 진행되도록 이끌어 주신 영환 종친을 비롯해 살림살이 꾸려가시느라 애쓰신 영윤 종친 및 행사 준비에 진력하신 항용 종친과 발용 종친, 그리고 열성적으로 참여해 주신 안사연 및 동행 종친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영욱 종친 부인, 우회 종친 부인과 발용 종친 부인께도 재삼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 충렬공 시향 참례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 관련 사진 소개 (2003. 11. 4. 발용(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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