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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4. 20. 윤식(문), 발용(문) 제공) ◇일시 : 2004년 4월 18일(일요일) ◇장소 : 청량산(남한산성 및 엄미리 계곡) ◇코스 : 마천동 버스 종점 → 청량산 능선(남한산성 서문, 북문, 벌봉) → 엄미리 계곡 → 5호선 마천역 ◇참석자(무순, 존칭 생략, ☆ 표시는 부부 동반) : 영환, 영윤, 상석(在항☆), 윤만(會항), 발용(會항), 항용(植항), 윤식
1. 이른 시각인데도 지하철에는 등산복 차림이 눈에 많이 띕니다. 09:00분 1차 집결지인 잠실역 인근 롯데월드 버스정류장에 영환 종친을 비롯해 윤만 종친과 항용 종친께서 모였습니다. 상석 종친 부부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2차 집결지인 마천동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약속장소인 느티나무 인근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09:40분, 반가운 인사를 나눕니다. 마음 닿는 곳에 정 가게 마련이라지요. 상석 종친께서는 동부인하여 자리를 한결 빛내 주셨습니다. 게다가 등산모와 장갑을 하나씩 나누어 주십니다. 매번 요긴한 선물을 받아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인근 수퍼에서 음료를 간단히 준비하고 산에 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마침 상석 종친께서는 우리 종친이 운영하는 샘터휴게소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가는 길에 찾아뵙기로 하고 상점 주인들에게 길을 묻습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50미터쯤 가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오른쪽 길을 따라가다가 맨 끝집이었습니다. 마당이 널찍해서 주차하기도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샘터휴게소 주인이신 상관(在항) 종친께서는 제학공파로 충북 병천이 고향이신데 마침 출타 중이셨습니다. 대신 부인께서 반겨주십니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에게 귀한 칡즙을 한 잔씩 건네시더니 아드님을 소개하십니다. 샘터휴게소를 운영하신 지는 30년이나 되셨답니다. 산행 코스가 이곳에서 끝나면 뒤풀이라도 하겠건만, 산 너머에서 행사를 끝낼 예정이라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10:20분경 산행을 시작합니다.
2. 샘터휴게소 오른쪽 큰길을 따라가면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라, 샘터휴게소 담장으로 트인 길을 따라 왼쪽으로 코스를 바꾸었습니다. 이 길은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라 등산객이 많았습니다. 시작 부분은 제법 가팔랐습니다. 등반대장 윤만 종친을 비롯한 다른 분들께서는 휘적휘적 오르시는데 운동 부족인 저는 초입부터 숨이 턱에 걸립니다.(집사람이 저를 ‘의자찐드기’라고 합니다.) 병자호란 당시 환관의 등에 업힌 인조 임금이 황망스럽게 산을 넘었다는데 그 길은 유난히 힘들었겠지요. 바짝 마른 산길에서 푸석푸석 먼지가 입니다. 먼지잼이라도 한 줄금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비탈이 조금 심하기는 하지만 서덜 하나 없는 길이라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앞서 가시는 분들 그림자를 쫓다 보니 가파른 고개가 끝나고 남한산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그늘로 들어가 목을 축입니다. 막걸리 한 잔에 양파 한 쪽을 고추장에 찍어먹습니다. 양파 안쪽 얇은 막을 벗겨내면 매운맛이 없어진다는 발용 종친의 말씀에 그대로 해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달콤합니다. 갈증도 한결 나아지고요. 산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길을 재촉합니다.
☞ 좌로부터 상석(在항), 항용(植항), 영윤, 윤만(會항), 영환, 윤식, 발용(會항)
3. 산성을 끼고 왼쪽은 가파른 계곡들이, 오른쪽으로 남한산성의 성곽이 이어집니다. 시내에는 때이른 더위로 벚꽃 진 지 오래건만, 이곳은 발 아래 군데군데 벚꽃구름이 뭉쳐 있습니다. 연초록 사이로 번져 나온 흰색이 더욱 눈부십니다.
한참을 걷는데 발걸음 날랜 사람과 우리 일행이 인사를 나눕니다. 앞서 가시는 영환 종친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발 끝에 스치는 풀꽃을 눈여겨보며 걷다 보니 어느덧 북문(北門)을 지나칩니다. 이제부터 아직 복원하지 못한 옛 성곽이 시작됩니다. 아이고, 병아리 떼 같은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좁은 북문 마당에 가득입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산길을 내달리는 발길이 참 재기도 합니다. 4. 12:09분 북문에 도착했습니다. 계속 성곽을 따라 걷습니다. 그렇게 봄기운 속으로 30여 분을 더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제 동장대(東將臺)입니다. 산성(山城)을 지킬 때 지휘할 수 있도록 높직하게 쌓은 대(臺)를 툭 튀어나오게 만들어서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쉽게 공격하도록 했으면서도, 그 밑으로 문을 냈으니 옛 사람들 지혜가 새삼스럽습니다.
10여 미터를 더 가니 봉암성(蜂巖城) 표석입니다. 성은 무너져 흔적만 겨우 남았건만 반듯하게 오석(烏石)으로 다듬은 표석이 오히려 민망합니다. 봉암성은 동성(東城)이라고도 하는데, 본성(本城)인 남한산성 바깥에 새로 쌓은 성이라는 뜻으로 신성(新城)이라고도 한답니다.
여기서 나지막한 비탈을 하나 오르는 듯 마는 듯하면 제법 넓은 길이 나옵니다. 그 길을 따라 밑으로 꺾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면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 커다란 바위가 바로 벌봉[蜂巖]입니다.
벌봉에 올라서니 남한산성 안이 훤히 보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웬만한 움직임은 꿰뚫어보고 충분히 짐작할 만한 요지였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이 지역을 청나라 군사에게 빼앗긴 탓에 성안의 움직임이 모두 노출되고, 화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숙종 때에 봉암성을 쌓은 이유도 그 때문이랍니다.
벌봉 안내판에는 이 바위 생김새가 벌[蜂]을 닮았는데 이곳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어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이 깨부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5. 벌봉에 올라가 산성 안을 들여다본 우리 일행은 바위 아래 그늘을 찾아 윤만 종친께서 준비해 오신 자료로 독회(讀會)를 가졌습니다. 이 자료에는 우리 문중과 남한산성,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순국하신 웃대 할아버지들에 대한 귀중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윤만 종친께서 우리 홈에 올리신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게시번호 8083번 안동김문과 남한산성<산행에 즈음하여>)
아울러 낙서공(휘 자점) 할아버지에 대한 연구를 천착하고 계신 윤만 종친께서 최근 확인하신 창의문(彰義門 : 자하문) 현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자료 역시 윤만 종친께서 올리신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6. 한낮의 산길에는 들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드물게 보는 노랑제비붓꽃도 군락을 이루어 볼 만했습니다. 개별꽃과 오랑캐꽃도 눈길을 끌 고요. 앵두꽃은 아직 안 피었던가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이제부터는 편한 내리막길입니다. 눈길 닿는 대로 만개한 벚꽃을 즐깁니다. 2시쯤 영윤 종친께서 운영하시는 엄미리 계곡의 벽수장에 도착하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1시간쯤 늦어서야 다리를 쉬고 점심을 들었습니다.(그만큼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영윤 종친 부인께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을 맛나게 들고, 다음 산행(5월~7월)과 하계캠프 일정에 대한 협의를 가졌습니다. 5월 산행은 예정대로 원주의 영원산성, 6월 산행은 인왕산을 등반키로 하고, 하계캠프는 원만한 진행을 위해 8월 초로 잠정 결정하였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에 추후 공고할 예정입니다. 또한 중국 답사에 대한 기초적인 이야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 역시 좀더 구체화한 다음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발용 종친 부인께서 합류하셨습니다. 한동안 뵙지 못해 무척 반가웠습니다.
다음 일정에 대한 논의가 끝나고 나니 18:25분입니다. 해가 기울 시간이었습니다. 서둘러 일어섭니다. 음식값을 드리려니 반도 안 받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매번 폐만 끼치는 것 같아 염치가 없습니다. 거듭 감사 말씀 드립니다. 벽수장 뜰 안에는 벚꽃이 한창인데, 내실(內室)에도 꽃이 그득합니다. 영윤 종친 부인께서 지점토 공예 솜씨가 빼어나십니다. 함초롬한 제비꽃을 가득 담은 화분이 실물과 똑같았습니다. 마침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만드시는 중인데 생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 밖에도 갖가지 꽃이 방 안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취미로 여러 해 하시는 동안 이제는 강연도 나가신답니다.
7. 뜰 안의 벚꽃나무 아래서 일가분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발용 종친 부인께서 운전하시는 차에 올라 인근의 학생공(휘 允文) 할아버지 묘역으로 향합니다.
학생공께서는 문온공(휘 九容) 할아버지의 4세손이십니다. 묘역은 벽수장에서 차로 3분여 거리인 엄미리 계곡 입구에 있습니다. 학생공의 아드님이 승지공(휘 愼)이십니다. 묘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절을 올린 다음 묘역을 둘러보았습니다.
앞에는 신/구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입니다. 주산은 남한산성이라고 합니다.(두 분 묘역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문온공파 사인공계 광주문중 시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두 분의 비석은 구양순체를 집자하여 오석에 새겼는데 글씨체가 독특합니다. 그 중에서도 숙(淑)자가 특이했는데, 영환 종친께서는 옛 비문에 종종 사용했다고 알려 주십니다.
묘역 맨 아래쪽이 영윤 종친의 선고인(先考丈) 묘소입니다. 영환 종친께서는 영윤 종친의 선고인께서 회혼식을 치르실 정도로 다복하셨다고 들려주십니다. 차 안에서 정담이 오가는 사이에 5호선 상일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 또 아쉬운 이별입니다. 홍일점으로 참석하신 상석 종친 부인을 비롯해 영윤 종친 부인, 그리고 발용 종친 부인께 감사 말씀 드리며 제7회 산행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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