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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1. 16. 주회(안) 기록. 발용(군) 사진 촬영 제공)
■ 산행 개요
일시 : 2004.11.14 07:00~22:00 장소 : 철원 명성산과 민통선 내 김응하, 김응해 장군 묘역 참석 : 영윤, 상석, 윤만, 발용, 주회, 태우, 항용 계만(문온공파 감사), 재은(81세, 전 부사공파종회장)
■ 산행 후기 뚝 떨어진 기온 속에 새벽 어둠을 헤치고 발용 님께서 운전수고를 하기로 하고 철원 명성산을 향해서 종합운동장을 출발 포천시 일동을 지나면서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 밀직사공(휘 칠우) 묘역에 오른다
▲ 밀직사사공(휘 칠우) 단소
▲ 항용. 주회. 태우. 윤만. 영윤종친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으나지나칠 수 없다. 산정호수 찾아 물어물어 가는길초행길은 아니었으나 헤메고 있다. 이동면 소재지 양조장 앞에 도착“生” 자 마크 들어간 (진짜 원조) 이동막걸리를 차에 싣고 명성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 계만 님과 합류김이 펄펄 나는 오뎅국물에 언 몸을 녹인다. 갈대밭과 궁예의 흔적을 떠올리며한발 한발 오른다. 명성산 8부 능선, 온통 갈대밭 천지다.갈대밭을 널리 내려다보며 다과를 겸한 휴식
▲ 주차장에서 바라본 명성산
▲ 명성산 입구
▲ 등룡폭포
▲ 주회. 계만(문. 會항)
▲ 윤만(會항) 등반대장
▲ 영윤. 계만님
내려오는 명성산은 ‘험한 길’이다.‘안양 한량’ ‘김길동’ 상석 님 합류 험한 만큼 스릴 가득하고 저아래 산정호수는 분수를 뿜어 올리며 우릴 환영한다.
▲ 하산길에 보이는 산정호수
자인사 거쳐 산정호수 돌아가는 길
다시 주차장에 도착. 재은 님과 긴급 연락 재은 님은 지금 응해장군 묘역에 있다고 우연한 방문에 반가움 가득. 철원군청으로 오란다.
철원군청 앞마당에 한복 노인장 전 부사공파 파종회장 재은 님(81세) 김화 고석정 방향으로 가면서 갈말읍사무소 지나고 윗삼성리 지나면서 좌회전 양지 내대 방향으로 가면서 소재지 지나고 한참을 가서 검문소 앞에서 좌회전
지나는 좌우로 군부대 막사가 가득하고 군 작전지역에 진입하는 스릴 약간 긴장감 약간
또 한참을 가다가 검문소 도착 이곳에서부터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이다. 김응하 김응해 장군 묘역은 민통선 안에 있다.재은 님의 출입신청으로 어렵게 통과 (헌병 1명 동승)
민통선 안으로 진입.인적 드물고 한적한,약간은 스산하게 내려앉은 시골풍경 저멀리 낮은 구릉을 타고 앉은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빛바랜 사진으로 수없이 보아왔던 곳
▲ 김응해 장군 묘역
차 한대 겨우 들어가는 농로길을 출렁출렁 들어간다. 묘역 입구에 김응해(1588~1666) 장군 신도비가 길쭉하니 우뚝하다. 웅장하고 높직한 좌대. 여기저기 총탄자국.趙絅(1586~1669) 찬, 朴○俊 전 서
▲ 김응해 장군 신도비
묘역 상단에는 김응해 장군 묘소와 묘비역시 높직한 좌대와 총탄자국. 앞면 글씨는 깊고 날카롭다. 5세손 榮遇 지, 尹得養 서, 숭정3辛巳(?1761년) 각
▲ 김응해 장군 묘소
▲ 김응해 장군 묘비
▲ 묘역의 내력을 설명하시는 부사공파 전회장 재은님.
▲ 김응해 장군 묘역의 석물
둘째줄 묘단 좌측에 조그만 봉분 둘. 김응해 장군 처 조부모, 처 부모 4위 묘소 12대째 외손봉사해 오고 있단다.
이곳에서 10리 능내라는 곳에서 문인석 4개와 함께 옮겨 왔다고 그 오른쪽 납골묘 재은 님 10대조부터 부모까지 26기 봉안
▲ 납골묘
▲ 납골묘에 봉안후 한 곳에 모신 석물
그 오른쪽 金克鍊(김응해 장군 외아들) 묘와 묘비尹得養 서, 숭정3신사(?1761년) 追 각자
그 오른쪽으로는 납골묘가 새로 조성되었는데 앞으로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란다.
세째줄 묘단 좌측 金世章 묘비 李宅仁 기, 불초손 浚 근표, 尹志大 근서, 숭정기원 再을사(?1725년) 12월
그 오른쪽 김세장 배위 묘비. 숭정 再경신(?1741년) 尹淳(1680~1741) 서, 榮遇
그 오른쪽으로는 金重九 묘비 尹光紹(1708~1786) 찬, 曹允亨(1725~1799) 서병전, 조선402년(?1794년) 손 廷遇 출財力 아래쪽 망배단과 김응해 장군 세장비. 2001년 재은 립
▲ 김응해 장군 세장비
그리고 맨 아래에는 김응해 장군 신도비 계속되는 긴장감과 설레임 속에 거대한 묘역과 웅대한 석물들 그리고 총탄자국과 상흔의 아픔
갑자기 흥분되고 발걸음들이 부산하다. 오르락 내리락 촬영해대고, 왔다갔다 기록해대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들다시 김응하 장군 묘역으로
<김응하 장군 묘역> 1km남짓 떨어진 곳에구릉을 제법 경사지게 타고 앉은 묘역
▲ 충무공 김응하 장군 묘역
입구에는 웅장한 김응하(1580~1619) 장군신도비가 안내하고 있다.
웅장한 좌대와 비신, 역시 총탄자국 가득하고趙絅(1586-1669) 찬, 李裕承(1835-?) 서, 趙熙一(1869대사성) 전,대한광무3년(1899) 기해 11월 鄭基會(1829-?) 추기
▲ 충무공 김응하 장군 신도비
▲ 충무공 김응하장군 묘역 하의 하마석
묘역 상단에는 김응하 장군 묘소 요동의 벌판에서 모셔온 초혼과 의관으로 쓴 묘 묘소가 왜소하다.무인의 대명사 충무공의 묘역에 무인석이 없다.
▲ 충무공 김응하장군 묘비
둘째줄 묘역 좌측에 大孝 金應洛 묘와 묘비아주 조그만 묘소이다. 응하,응락,응해 3형제는 임진왜란때 14살, 12살, 6살이었다고. 부모님(金地四)이 위독하시자 둘째 응락은 당시 12살임에도 단지하여 요절.
이어 하루 이틀 간격으로 부모 또한 돌아가시어 3초상이 났다고. 응락 묘비는 2001년 재은 립
그 오른쪽은 3형제의 부모이신 金地四 묘소
▲ 충무공 김응하 장군 부모님(휘 地四) 묘소
▲ (휘 地四) 묘비
재은 님의 선조 소개가 이어진다. 부사공(휘 천순)께서는 여조에 밀직부사이었으나 여선교체시 벼슬을 버리고 은둔하였고 손자 大來는 결성면(현 충남 홍성)에서 학덕이 높아 세종이 집현전을 확충할 때 박팽년에 의해 천거되었다고.
▲ 大孝 金應洛 묘와 묘비, 충무공 휘 응하의 아우
세째줄 묘역에는 金益鍊(김응하 장군 1자) 묘소
▲ 충무공 김응하장군의 외아들 金益鍊 묘
그리고 맨 아래 입구에는 金應河 장군 신도비 동행한 헌병은 교대시간이 지났다고 재촉하고 아쉬움을 잔뜩 안은채 민통선을 빠져 나온다.
막 저녁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철원들판를 왼편으로 끼고 돌다 산자락 아래 구릉 위에 넉넉하게 올라 앉은 포충사에 도착 김응하 장군 혈손 규면 님(011-9185-7001)의 안내로경내로 들어선다.
이곳 철원읍내에 거주하시며 포충사 총무를 맡고 있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서자 거대한 귀부 위에 올라 앉은 김응하 장군 묘정비(廟庭碑)가 시야를 압도한다.
원래 송시열 찬, 박태유 서, 김수항 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2km떨어진 민통선 내에 있었으나 6.25 전쟁중에 포충사와 (?충렬록) 판목은 소실되고 묘정비만이 노지에 쓸쓸하였다고 한다. 1974년 이세호 장군이 3군사령부 영내에 옮겼으며 1984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한다.
좌대 220*280 거북받침 233*370*높이 125 비신 97*33*높이 215 비갓 161*100*높이
거북받침은 너무나 웅장하고 우람하여 예사롭지 않다. 명 황제 신종이 요동백으로 봉할 때 내려준 것은 아닌지? 묘정비 우측에는 새로 세운 포충사사적비가 깨끗하다. 2003. 9. 6일 김지율 근찬으로 세운 것이다.
올라선 사당 안에는 김응하 장군 영정 일동 모두 숙연한 비장감으로 참례를 올린다.
영정은 흑백영정을 기준으로 채색하여 그린 것이다. 김응하 초상 眞影은? (조중구 소장, 민족문화대백과사전 4권 840P)
불천지위로 매년 3월 초나흗날 제례를 올리고 유림에서도 별도로 춘추계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포충사 마당에 섰다. 저 아래로 구릉따라 내려가는 철원들판, 철원읍내는 이제 어둠이 내려 앉아 귀가시간을 알려준다.
병풍처럼 둘러선 포충사 뒷산 (?)천왕산 앞쪽 우측으로는 저멀리 철원들판을 감싸며 하늘로 치솟은 금학산 이곳 읍내와 양지 마을 일원에 우리 일가 수백호가 세거하여 왔으나 현재 40여호(?20여호) 만이 세거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종일 동행하면서 안내해 주신 계만 님과 이곳 포충사 총무 규면 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초겨울 저녁 어둠 속에 잠이 드는 철원들판을 뒤로하고 귀경길에 오른다. 긴장감과 설레임과 흥분 속에 보낸 하루 피곤이 몰려온다.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피곤이 스르르 몰려오는 듯 쿠울 쿠~~~ㄹ. (발용 형님 죄송. 우리만 쿨쿨해서) 의정부역에서 인천 가시는 재은 님을 배웅하고 우리는 단골집 하남의 선지 해장국집으로 달려간다. 언 몸을 녹이고 속을 다스리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뻐근하게 뿌듯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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