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문영공 급제 기록 -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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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6-04-30 21:45 조회889회 댓글0건본문
<고려사 열전 - 조간>
趙簡, 金堤縣人, 忠烈五年, 擢第一人及第, 補書籍店錄事. 明年, 王以詩賦, 親試文臣, 簡又居第一, 賜黃牌, 籍內侍, 累遷補闕. 丁父憂, 廬墓三年, 王嘉之, 特授起居注, 由僉議舍人, 出爲慶尙按廉. 忠宣卽位, 拜刑曹侍郞·右諫議大夫. 時內僚李之氐, 拜兩府官, 簡不署告身, 王召簡曰, “有一大官憾, 卿愼之.” 及忠烈復位, 密請再三, 不得已乃署. 王命簡主選法, 固辭免. 陞右副承旨·同知貢擧取士, 率新及第, 詣壽寧宮上謁, 王以簡爲殿試門生, 臨軒賜宴. 歷密直副使·檢校僉議評理, 以贊成事卒, 謚文良.
簡旣老, 癉疽肩項幾不辨. 有醫僧曰, “疽根於骨, 骨當半朽, 不刮去不理. 唯恐不能忍.” 簡曰, “死等耳, 第試之.” 乃以利刃剸之, 骨果朽, 刮之傅藥, 絶而瞑者二日. 上洛君金恂, 簡牓第二人, 往問涕泣不已. 簡忽張目, 使人語曰, “不謂公之憫我如此. 豈心於喜而色於悲耶?” 恂曰, “是何言? 四紀同年契, 烏得無情?” 簡曰, “我死, 牓中無先公者.” 恂收涕笑曰, “老子不死.”
조간(趙簡)은 김제현(金堤縣) 사람으로, 충렬왕(忠烈王) 5년(1279)에 과거에 제 1인으로 급제하여 서적점녹사(書籍店錄事)에 보임(補任)되었다. 이듬해에 왕이 시부(詩賦)로 문신(文臣)을 직접 시험하였는데, 조간이 또 제 1인이 되어 황패(黃牌)를 하사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어 여러 관직을 거쳐 보궐(補闕)로 옮겼다. 아버지의 상(喪)을 당하여 여묘(廬墓)살이를 3년간 하자 왕이 가상히 여겨 특별히 기거주(起居注)를 제수(除授)하였고, 첨의사인(僉議舍人)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가 되었다.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여 형조시랑 우간의대부(刑曹侍郞 右諫議大夫)로 임명하였다. 이때에 내료(內僚) 이지저(李之氐)가 양부(兩府)의 관직에 임명되었는데, 조간이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자 왕이 조간을 불러 말하기를, “대관(大官) 한 사람이 그대에게 유감을 품고 있으니 경(卿)은 조심하시게.”라고 하였다. 충렬왕이 복위하자 그에게 몰래 서명을 두 번 세 번 청하므로 부득이하여 서명하였다. 왕이 조간에게 명령하여 선법(選法)을 주관하게 하자 굳이 사양하고 물러났다. 〈조간이〉 우부승지 동지공거(右副承旨 同知貢擧)로 승진하여 선비를 뽑았는데, 새로 급제한 이들을 이끌고 수녕궁(壽寧宮)에 가서 왕을 뵈니, 왕이 조간이 전시문생(殿試門生)이 되었다 하여 자리에 나와 잔치를 베풀었다. 밀직부사(密直副使)와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를 역임하고, 찬성사(贊成事)로 죽으니 시호(謚號)는 문량(文良)이다.
조간이 이미 늙었는데 악성 종기가 발생하여 어디까지가 어깨이고 목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어떤 의승(醫僧)이 말하기를, “종기는 뼈에 뿌리가 있으므로 뼈가 당연히 절반은 썩었을 것이고, 긁어내어 없애지 않으면 고치지 못합니다. 다만 참지 못하실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라고 하자 조간이 말하기를, “죽는 것이야 같을 뿐이니, 시험해봅시다.”라고 하였다. 이에 날카로운 칼로 베어내니 과연 뼈가 썩어 있어서 그것을 도려내고 약을 바르니, 기절하여 눈을 감은 것이 이틀이나 되었다. 상락군(上洛君) 김순(金恂)은 조간이 과거에 급제하였을 때 제 2인이었는데, 문병 갔다가 눈물 흘리며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조간이 문득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공(公)이 나를 이같이 불쌍하게 여긴다고 말하지 말라. 어찌 마음으로는 기쁘면서 겉으로는 슬프다는 것이오?”라고 하니 김순이 대답하기를, “이게 무슨 말인가? 40년이나 동년계(同年契)였는데 어찌 〈이리〉 무정할 수 있는가?”라고 하자, 조간이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방(牓) 중에 공보다 앞선 사람이 없는 것이오.”라고 하므로 김순이 눈물을 거두고 웃으며 말하기를, “이 늙은이는 죽지 않겠구먼.”이라고 하였다.
조간이 이미 늙었는데 악성 종기가 발생하여 어디까지가 어깨이고 목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어떤 의승(醫僧)이 말하기를, “종기는 뼈에 뿌리가 있으므로 뼈가 당연히 절반은 썩었을 것이고, 긁어내어 없애지 않으면 고치지 못합니다. 다만 참지 못하실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라고 하자 조간이 말하기를, “죽는 것이야 같을 뿐이니, 시험해봅시다.”라고 하였다. 이에 날카로운 칼로 베어내니 과연 뼈가 썩어 있어서 그것을 도려내고 약을 바르니, 기절하여 눈을 감은 것이 이틀이나 되었다. 상락군(上洛君) 김순(金恂)은 조간이 과거에 급제하였을 때 제 2인이었는데, 문병 갔다가 눈물 흘리며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조간이 문득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공(公)이 나를 이같이 불쌍하게 여긴다고 말하지 말라. 어찌 마음으로는 기쁘면서 겉으로는 슬프다는 것이오?”라고 하니 김순이 대답하기를, “이게 무슨 말인가? 40년이나 동년계(同年契)였는데 어찌 〈이리〉 무정할 수 있는가?”라고 하자, 조간이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방(牓) 중에 공보다 앞선 사람이 없는 것이오.”라고 하므로 김순이 눈물을 거두고 웃으며 말하기를, “이 늙은이는 죽지 않겠구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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