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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선생이 처남 철원부사공(휘 확)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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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6-06-14 05:40 조회961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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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甥正卿書
 
見手滋。如挹芝宇。況承慰問切至。欣感交幷。官爵是外物。一斥奚病。僕之平生。爲裕甫所毀了者甚多。頃自湖南屆全州。則裕甫適丁母憂。初喪處事。縱曰頗甚才盡。外客安從而知之乎。有人毀裕甫者。引僕爲證。洛下人初見僕。爭問其由。裕甫曾陷我以在服不謹。則其初喪。用印盜出官物。濫杖下人等事。我縱目覩。豈可掛諸口吻。有若報復者然。是以。問者百人。俱皆以不能知答之。用是致疑於僕。遂謂今反相結。至忝於謀議云。則冤孰甚焉。養吾聞此言而來語。則在僕初無是事。固當自辨。裕甫之迫問奇,宋二家。豈亦僕勸而爲之乎。見忤之端。寔出於玆。厥後兄家結婚於內。賤隷數人承裕甫旨。欲間冢宰於上。造出諺書。搆諸貴人。遂起紛擾之端。其致疑固其所也。今士大夫姻家新婦之季父。不敢以諺書通于其姑。矧阙中嚴邃之地乎。久則自當釋然。聊不與辨。僕素不喜榮官。今得一事自罷。秋雨乍收。近當一馬往訪仙山。仍爲東還計。此時君若在潭墅。則過宿數宵。劇談今古。甕頭潼醴。可以餉不飮客。而石筍沙鼈。足以供案肴。須掃風軒以俟。終不負約。只此。
 
김생 정경(金生正卿)에게 보낸 서찰

수서(手書)를 받아 얼굴을 보는 것 같은데, 더구나 위문이 지극하니 기쁨과 느꺼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네. 관작은 외물(外物)이라, 한 번 배척받았다 해서 어찌 근심하겠는가.
내 평생에 유보(裕甫 이홍로(李弘老)의 자)로 인해 훼방을 당한 것이 심히 많았다. 지난번 호남으로부터 전주에 당도했을 적에 유보가 마침 모친의 상을 당해서 초상의 처사가 비록 대단히 미진했다 할지라도 외방(外方)에서 온 객이 어떻게 그 일을 알 수 있었겠는가. 유보를 욕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이가 나를 끌어들여 증인으로 삼으려 하니,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다투어 그 경위를 묻곤 하였네. 그러나 유보는 일찍이 내가 복중(服中)의 상제로서 행실에 근실치 못하다 하여 욕을 했던 적이 있으니, 그가 초상 중에 도장을 사용해서 관물을 도둑질해내고 하인을 마구 때린 따위의 일을 설사 내가 눈으로 보았다 한들 어찌 그것을 입에 담아 마치 보복하는 것처럼 할 수 있겠는가. 이 까닭에 묻는 사람이 백이 넘었으나 모두 잘 모른다고 답을 했었네. 이 때문에 의심이 나에게 미치게 되어 마침내 이르기를 이제는 오히려 서로 결탁하여 모의하는 데 이르렀다.’고들 하니, 원통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양오(養吾 이지완(李志完)의 자)가 이 말을 듣고 와서 말을 하니, 내 자신에 있어서는 애당초 이런 일이 없었던 바라 내 입으로 변론해 두려는 것이네.
유보가 기()() 두 집안에 다그쳐 물은 것도 어찌 또한 내가 친하여 그런 것이겠는가. 미움을 받게 된 발단이 진실로 이에서 나온 것이네. 그 후에 형님댁에서 대내(大內)와 혼인을 맺을 때 천례(賤隷) 수인이 유보의 명을 받아 총재를 위에다 이간질하기 위해 언서(諺書)를 조작해서 귀인들을 얽어매자 드디어 분요의 발단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그 의심을 부른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네. 오늘날 사대부의 인가(姻家)에서도 신부의 계부(季父)가 감히 언어로써 그 시어머니에게 통할 수는 없는 터인데, 하물며 궁궐 속의 엄하고 깊은 곳에서 어찌 그리한단 말인가. 오래 있으면 저절로 밝혀질 것이기에 변명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었네.
나는 본디 벼슬의 영달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한 사단을 얻어 절로 파직하게 되었으니, 가을 비가 잠깐 걷히면, 마땅히 한 필 말을 타고 자네 집을 찾아 보고 인하여 동쪽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네. 이 때쯤 자네가 만약 별장에 있으면 지나는 길에 며칠을 묵으면서 고금을 극담키로 하세. 단지에 남은 단술로는 술 못하는 손을 대접할 수 있겠고, 석순(石筍)과 자라로는 술상 안주로 족할 것이니, 모름지기 바람 난간을 치우고 기다리게. 끝내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것일세. 이만 그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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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독문과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문집총간 <성소부부고>에 실려 있습니다.

댓글목록

김재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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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침에 귀한 글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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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날이 벌써 한여름이네요.
댁내 두루 평안하시죠?
포천 계만 별제공회장님께서 흙에 묻힌  <동천석문> 글자 파내시려고 땀 흘리셨답니다.
날 선선해지면 금수정에서 뵐 기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광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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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귀한 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너무 고생이 많으신데 보답할 길이 없군요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요. <洞天石門>은 아직 洞天石까지는 발굴하였는데 門을 아직 찾지 못하였고요. 인력으로는 門을 찾을수 없어 기계(포크레인)의 힘을 빌어야 될것으로 사료되나 포크레인이 밑으로 갈수가 없어 걱정입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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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저씨, 소식 감사합니다.
계만 회장님께 감사 말씀 전해 주세요.
이 편지는 허균 선생 수택본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서찰 형식으로 쓴 글인데,
문집에 싣기 위해 앞부분과 뒷부분 글귀를 지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편지 앞부분에 쓰인 용어로 보아 철원부사공 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 확실합니다.
철원부사공 편지를 찾지 못해 애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