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충렬사에 김중기통제사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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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7-02-22 12:42 조회865회 댓글0건본문
통영 충렬사에 김중기통제사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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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일박이일로 친구들과 통영여행을 하였습니다. 통영여행중 인터넷검색을 하여보니 김중기통제사비각이 있다라는 기사가 여럿 보였습니다. 김영수통제사의 타루비는 보았지만 김중기통제사의 비각이 있다는 것은 처음 접하는 자료여서 약간 흥분되기도 하여, 서울에 있는 태영씨에게 자료를 조사해 알려달라고 하였지만, 처음 보는 얘기라고 하면서 김중기통제사비각이 있다면 이는 반가운 소식이니 잘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즉시 통제영 관리사무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라 학예사가 없고 사무실도 잠겨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점심도 미루면서 학예사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일요일이라 좀 느긋이 학예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예사에게 사정을 말하니 통제영관련자료를 모두 뒤져 보았지만 통제영내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을 다시 검색하니 충렬사에 있다고 되어 있어 충렬사에 전화를 하였지만 충렬사에도 김중기통제사비각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어 늦은 점심을 혼자 먹고 귀경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충렬사에 내가 직접 전화를 하여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자료가 많이 있다.
(충렬사는 본전(本殿)과 정문(正門) ·중문(中門) ·외삼문·동서재·경충재·숭무당·강한루·유물전시관 등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81년(숙종 7)에 제60대 민섬 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 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형 통제사 비각이 있다.)
그러니 김중기통제사 비각이 있는가 확인해 달라했더니 김중기통제사비각은 분명히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찌 된 것이냐 했더니 충렬사 학예사가 말하기를 ‘김중기통제사비는 분명히 없고요. 그런데 최숙통제사비는 있는데 빠져 있네요.’ 하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커다란 오류가 있는 것이니 자세히 밝혀보아야겠기에 자료를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통영앞바다에 있는 거북선자료실에서 찍어온 역대 통제사 명단을 보았습니다.
1대 이순신 2대 원균 3대 이순신........35대 김응해 36대류정익 37대 황헌.....
70대 최숙 71대 김중기 72대이기하...............208대 홍남주(1984.12-1986.5)
여기에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통제사가 209대라는 자료를 본 것 같은데 208대로 끝난 것으로 되어 있으니 내가 잘못 알고 있는가 하여 인터넷에서 역대통제사자료를 검색하여보니 208대라고 된 것도 있고 209대라고 된 것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영거북선자료실에 분명히 208대 홍남주가 마지막통제사라고 되어 있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거북선자료실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35대 김응해의 재직년도는 1646.3-1648-3 이며 36대 유정익은 1650.1.-52.8이었습니다.
김응하퇴임(1648.3)이후 유정익 부임(1650.1)까지의 약 20개월동안 통제사가 없었단 말인가?
오늘 메일로 통영학예사가 보내준 명단을 확인하였습니다.
35대 김응해 1646.3-1648.3 36대 변사기 재임년도 미상 37대 류정익 1650.1-1652.8
.........................71대 최숙 1694.8-1695.8 72대 김중기 1695.8-1695.11...........................
209대 홍남주1894.12-1896.5
김중기통제사가 71대라고 된 자료도 있고 72대라 된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충렬사에는 71대(최숙)의 비각이 있는데 71대라고 된 자료만 인용하다보니 71대 김중기비각이 있다라고 와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역대 통제사가 208대(거북선자료실)인가? 209대(통제영학예실자료)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209대가 맞습니다.
김응해통제사 퇴임(1648.30)후 유정익통제사가 부임(1650.1)사이에 변사기 통제사가 있었다는 것을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자료
효종 즉위년 7월 16일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중국 배가 통영 앞바다를 지나가 잡아서 북경으로 보내다
과거에 중국배가 통영(統營) 앞바다를 지나가는 것을 통제사(統制使) 변사기(邊士紀)가 병선(兵船)을 보내어 잡아왔는데 배에 타고 있는 장사치들이 대부분 산서(山西)·하남(河南)·형주(荊州)·양양(襄陽) 사람들이었다.
변사기 후임인 류정익은 1649년 12월 15일에 통제사에 임명되었음을 알수 있다.
참고자료
효종실록 2권, 효종 즉위년 12월 15일 기해 3번째기사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통제사(統制使) 유정익(柳廷益), 경주 부윤(慶州府尹) 홍득일(洪得一), 춘천 부사(春川府使) 박장원(朴長遠) 등이 사조하니, 면유하여 보냈다..
그러면 왜 변사기통제사의 기록이 빠진 자료가 거북선자료실에도 있고 인터넷에도 떠돌아다니는가하는 의문입니다.
변사기의 기록을 찾아보니, 변사기는 김자점의 옥에 연루되어 처형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연고로 통제사 선생안(확인은 안해 보았습니다)에 변사기를 빼고 적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변사기통제사가 빠진 자료를 인용하다보니 35대김응해 36대를 류정익으로 정리되고 최종통제사가 208대라고 된 듯 합니다.
그러나 역적으로 처형되었다하지만 분명히 통제사로 부임했으므로 36대통제사는 변사기로 기록되어야 맞는 것입니다. 다행히 통제영자료는 36대 변사기 부임 퇴임 년도 미상 이라고 기록하고 최종 통제사는 209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북선자료에 변사기를 빼고 만든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통제영관리사무소 및 거북선자료실에 연락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몇일 동안의 의문이 풀려 가벼운 마음으로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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