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안사연 답사 미리보기-8. 이손(李蓀,)신도비, 묘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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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7-01-26 11:05 조회739회 댓글0건본문
8. 이손(李蓀, 1439년(세종 21) ~ 1520년(중종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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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방(子芳). 형조좌참의 양중(養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생(遇生)이고, 아버지는 평안도절도사 수철(守哲)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이맹상(李孟常)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학문은 물론 활쏘기·말타기를 잘 하여 왕명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을 역임하고, 김해부사·판교(判校)를 거쳤다.
⦁1492년 장례원판결사, 이어 충청도·함경도절도사, 충청도·황해도·전라도관찰사, 부제학·우부승지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한성부좌윤·우윤, 이조·예조참판을 거쳐,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으로 한산군(漢山君)에 봉하여지고, 우참찬으로 승진하였다.
⦁1508년 좌참찬 재임시 재덕(才德)이 없고 늙음을 핑계로 치사(致仕)를 요청하였으나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그대로 유임되었다. 그 뒤 우찬성·좌찬성을 역임하고, ⦁1512년 일본의 화호(和好)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513년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에 진봉되고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만년에는 영의정 유순(柳洵), 판서 안침(安琛) 등 남학(南學)의 친우들과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서로 왕래하며 즐겼다. 시호는 호간(胡簡)이다.
9. 이손(李蓀) 신도비
⦁소 재 지 : 경기도 광주군 초월읍(草月邑) 신월리(新月里) 山22-1
⦁건립연대 : 1520年(중종 15)
⦁찬 자 : 이행(李荇)
⦁서 자 : 김희수(金希壽)
⦁비 규 모 : 총고 267cm, 비고 164cm, 폭 70cm, 후 22cm
⦁서자경(書字徑) : 전자(篆字) 13.0cm, 음기(陰記)3.0cm
⦁비재질(碑材質) : 이수(螭首)·비신(碑身) : 대리석, 대석 : 화강암
1520년에 건립된 이 비는 귀부이수(龜趺螭首)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이수 앞면에는 용 두 마리가 가운데의 여의주를 마주 올려다 보고 있는데 운문(雲紋)에 감싸여 있고, 뒷면도 동일하며, 측면에는 용 꼬리와 운문이 있다. 귀부는 거북머리가 앞을 직시하고 목의 주름이 굵게 하나가 접혀 있으며, 앞ㆍ뒤 다리는 몸통에 부조형태로 각(刻)하여 붙였고, 꼬리도 왼쪽으로 들어 올렸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비좌하엽(碑座荷葉)의 묘표가 각각 1기씩 있으며 조선 중기에 제작된 정경부인 경주이씨의 묘지석(묘지석) 4편은 남곤(남곤)이 묘지명을 지었으며, 김노(金魯)가 백자(白磁) 편에 글씨를 썼고, 묘소 입구에는 고덕재(高德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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