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는 안동김씨 문화재 -1-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익원공 김사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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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6-12-05 11:32 조회1,066회 댓글0건본문
일본에 있는 안동김씨 문화재 -1-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익원공 김사형 등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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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59년 이전 모사본, 148×164㎝. 1402년에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가 발의하고 의정부 검상 이회가 실무를 맡아 제작한 세계지도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모사본이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다시 필사한 규장각 소장본이 있다. 현전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자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였는데 조선 부분이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되어 있다.
1402년(태종 2)에 좌정승 김사형(金士衡), 우정승 이무(李茂)와 이회(李薈)가 만든 세계지도이다.
채색 필사본. 세로 148㎝, 가로 164㎝의 대형 지도이다.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疆理圖)라고도 한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포함하는 구대륙 지도이다.
지도 하단에 권근(權近)이 쓴 발문과 ≪양촌집 陽村集≫(권22, 歷代帝王混一疆理圖誌)에 의하면 이택민(李澤民)의 <성교광피도 聲敎廣被圖>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 混一疆理圖>를 중국에서 들여와 이 지도에 우리 나라와 일본을 추가하여 새로 편집한 지도이다.
발문에 <성교광피도>는 지도로서 매우 상세하고, <혼일강리도>는 국도연혁이 상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이 세계지도의 윤곽은 <성교광피도>를 따랐고, 지도 상단의 역대제왕국도(歷代帝王國都)와 성도(省都)는 <혼일강리도>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옛 세계지도는 대부분의 지도가 우리 나라와 일본은 자세하게 그리지 않거나 빠뜨리고 있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와 일본 부분을 이회가 보완하여 새로 편집한 것이다.
우리 나라 지도는 1402년에 의정부에서 본국 지도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1482년(성종 13) 2월에 양성지(梁誠之)의 상주문에 조선 국초에 이회의 <팔도지도 八道地圖>가 있다. 그러므로 이 지도의 조선도는 이회의 <팔도지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세종실록≫ 권80 세종 20년(1438) 2월조에 보면 박돈지(朴敦之)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1401년에 일본 지도를 가지고 돌아온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일본 지도는 박돈지가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의 일본도는 일본의 북동부 지방이 돌기(突起)로 표현된 행기도(行基圖)의 일종으로 판명되며 방위는 서쪽이 북쪽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지도는 압록강의 상류와 두만강의 유로가 부정확하지만 서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이 현재의 지도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하계망과 산계(山系)가 동북부 지방을 제외하면 매우 정확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지도는 전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몇 배나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전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이회의 <팔도지도>도 이 지도의 우리 나라 부분을 통해서 그 면모를 알 수 있다. 이 지도의 원본은 전하여지는 것이 없고, 사본이 일본 경도에 있는 류코쿠대학(龍谷大學) 도서관에 전하여지고 있다.
지도에 표시된 우리 나라 지명을 보면 고무창(古茂昌)·고여연(古閭延)·고우예(古虞芮)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폐군(廢郡)이 된 1455년(세조 1) 이후의 지도임을 알 수 있고, 또 같은 폐4군(廢四郡)이면서도 1459년에 폐군된 자성(慈城)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1459년 이전에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에 류코쿠대학 지도와 거의 같은 지도가 또 일본 구주(九州)의 혼코사(本光寺)에서 발견되었다. 이 지도의 크기는 류코쿠대학본보다 약간 크며 세로 147㎝, 가로 163㎝이고 류코쿠대학본이 견지(絹地)인데 혼코사본은 한지(漢紙)에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유사본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이 지도들이 우리 나라에는 하나도 없고 일본에 모두 있는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또는 일제 강점기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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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의 교훈…구글에 지도 넘겨줘선 안된다조선의 세계지도, 明 찬탈자에 이용당해…구글에 안보 정보 줄수 없어 김인영 기자 승인 2016.08.08 16:45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영국의 해양전문 작가인 개빈 멘지스는 저서 『1421-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명나라 영락제때 정화(鄭和) 함대가 컬럼버스보다 70년 앞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멘지스의 연구 가운데 눈에 띠는 대목은 한국이 최초로 세계 지도를 만들었고, 정화가 이 지도를 들고 유럽인에 앞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으로 항해했다는 주장이다. 그 지도가 바로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다. 줄여 ‘강리도’라고 한다.
멘지스는 정화함대가 1488년 포르투갈인 바르돌로뮤 디아즈가 희망봉을 발견하기 67년전에 역방향으로 아프리카 남단을 돌때에 당시 제작된 세계지도를 소지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일본까지 가서 당시 세계지도인 강리도를 보고 감탄했다고 술회했다. 해군 제독 출신으로 고지도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한반도가 일본보다 크게 그려져 다소 주관성이 개입됐지만, 아프리카에 관한한 당시 항해술로는 정확히 측정했다고 분석했다.
강리도는 조선 태종2년인 1402년에 김사형·이무· 이회등이 작성한 지도다. 권근의 양촌집에 따르면 중국에서 만들어진 성교광피도와 역대제왕 혼일강리도를 합쳐 만든 것이다. 당시 한국인들이 아프리카 해역을 순항하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여러 지도를 가져와 종합하면서 당시 지도기법으로는 세계를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제주이트 교단 소속 신부 마테오 리치가 곤여만국전도를 중국에 전하기 200년전에 한국에서 세계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강리도에는 인도 반도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지만, 사하라 사막과 유럽이 표기돼 있다. 이 지도는 1403년 조선 사절단이 조카 건문제를 쫓아내고 황제에 오른 명의 영락제에게 선물했다. 멘지스는 이런 팩트들을 근거로 정화가 대항해를 떠날 때 이 지도를 가져갔을 것을 것으로 추측했다. 정화 함대는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가 바다로 도망갔다는 소문을 듣고 조카를 찾아 죽이기 위해 만든 선단이다. 멘지스는 강리도가 이 함대의 길잡이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멘지스의 상상력이 실제인지는 차치하고, 우리는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600년전에 세계 최대강국이었던 명나라가 전세계 해상을 탐험하고 제해권을 장악할 당시에 조선은 소프트웨어와 우수한 기능인력을 중국에 제공했다는 점이다.
조선은 세계를 탐험하지 않았지만, 각국의 지적 산물을 종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재주를 오래전부터 발휘했다. 멘지스의 분석을 잠시 빌리면 당시 정화함대에는 조선조의 우수한 해운 기술자들이 동승했는데, 기술력에서 조선은 당시 아시아에서 최고의 단계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지도 제작은 국가 경쟁력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에 세계 지도를 그렸다.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는 당시의 여러 지도를 종합해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우리 민족은 지도 제작에 관한한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지도 제작은 세계 일류급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은 1993년부터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초정밀 전국지도를 2001년에 디지털화했다. 축적은 5,000분의 1로 미국·일본보다도 상세하다.
영국 작가 멘지스의 상상력이 맞다면 우리 선조는 세계지도를 최초로 만들어 놓고, 활용을 못했다. 중국의 세계 탐험에 이용됐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 1위 검색업체 구글이 우리의 정밀 지도를 거저 내달라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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