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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에서 만난 미스김과 김과장의 삼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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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당 작성일05-03-16 15:39 조회1,6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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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에서 만난 미스김과 김과장의 삼십 년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오남매를 부르시더니
"너희들, 엄마 아빠 결혼한 지 삼십년 된 거 아니?" 하셨습니다.
"네?" 결혼 삼십주년이라고요?"

여직껏 한 번도 부모님은 결혼기념일 같은 건 챙기지 않고 사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냥 그러려니..하고 지냈지요.
남들이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챙긴다는 말을 듣고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거 아니래도 이 복작복작한 집안은 챙겨야 하는 생일만 해도 일년에 얼마나 많은지요.
대충 여름 언제쯤 결혼하셨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엄마도, 아빠도 결혼기념일 같은 건 딴 세상 이야기처럼 지내셨지요.

"**(인우둥)이가 서른 살이니 삼십년이지 않니.
에, 이 할미 말을 잘 들어라.
이제 너네 부모들도 늙었다.
올해가 결혼 삼십주년이니 올해부터 해서
이제는 너희들이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챙겨드려라.
자, 여기에 할머니가 조금 종잣돈을 넣었으니
성의껏,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모아서
저녁을 한끼 사드리던지, 뭐 선물을 하던지 그건 너희 맘대로 하고
하여간 이제부터 챙겨라.
할미가 이걸 꼭 가르쳐야겠다..하고 옛날부터 생각해왔어."

할머니는 따로 엄마, 아빠에게 봉투를 드리시고도
또 빈봉투에 3만원을 넣어 종잣돈이라고 우리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삼십여 년 전,
미스김하고 김과장하고 조그만 무역회사에서 눈이 맞아가지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오남매를 키워오면 보낸 세월이
벌써 삼십 년이 흐른 겁니다.

두 분 뮤지컬 공연 예매해서 보여드리고
식당에 자리 하나 예약해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다른 집들은 흔하게 하는 외식이지만
애들 졸업식 때 집에서 짜장면 시켜 먹는 일 외엔
외식, 거의 없는 우리집입니다.

싼 와인 한 병 사서 집에 있는 빵집 포장끈으로 예쁘게 리본 묶어 식당에 가져갔습니다.
할인매장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와인잔도 같은 리본으로 묶었고요.
작은 카드에 한마디씩 적어 함께 두었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 삼십 주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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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준비하셨는지
오남매에게도 선물이 있었습니다.
"만원은 마음대로 써도 좋음. 단, 만원은 꼭 책 사는 데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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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식당 앞 '예술의 전당'에 갔더니
마치 미리 주문이라도 해놓은듯 음악분수가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공짜 구경이었지만 멋진 공연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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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어록!

"이건 순전히 막내 때문에 일이 커진 거야."
  
왜냐하면 막내가 큰돈을 내면 넷째는 그거보다 많거나 최소한 같으 액수를 내게 되고...
셋째는 또 넷째보다는... 그렇게하다보니 ^$&(&%#%&*^%$#!!

"오늘 모두 내 덕분인 줄 알아. 이 결혼 내 덕분에 성사된 거야."
이건 첫째인 인우둥이 한 말. ㅋㅋㅋ


할머니는 서울에 올라오지 않으셨어요.
일부러 그러신 것 같아요.
어쨌든 행복한 밤이었어요.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 밤이었구요.


어느 가족에겐들
숨기고 싶은 상처, 떠올리기도 싫은 아픔이 없겠어요.
인우둥네도 마찬가지에요.
그럼요, 사람이 몇인데...
고통, 어려움.... 다른 집보다 식구수만큼 몇 배 더 많지요.

그래도 어느 날은... 살면서 어느 날은
행복한 날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었네요.
상처와 아픔이 있기 때문에
이런 날이 더 행복한지도 모르고요.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실명으로 올려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