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숙왕 8년(1321)에 합주 지주사 김모가 지었다.여러 번 고쳐 세웠으며, 이황(1501∼1570)·조식(1501∼1572)·송시열(1607∼1689) 등의 글이 누각 안에 걸려 있다. 뒤 암벽에 새겨진 ‘함벽루’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바로 떨어지는 배치로 더욱 유명하다.
3. 윤만대부님께서 정리하여 밝히신 함벽루 창건자에 대한 결론 부분.
지금까지 함벽루(涵碧樓)를 창건하신 분이 ‘상락공(上洛公)의 아드님 김군’이라 하여 상락공(上洛公)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커다란 오류(誤謬)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리플로 달아주신 주회 아우님의 결론을 보고 문영공(文英公) 김순(金恂) 묘지명을 살펴보니 문영공(文英公)의 장남이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영돈(永暾) 할아버지께서 충숙왕 8년(1321년)에 지합주사(知陜州事)였음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문화관광부에서 제공하는 함벽루(涵碧樓)에 대한 자료에도 분명히 함벽루(涵碧樓)의 창건자는 ‘고려 충숙왕 8년(1321)에 합주 지주사 김모가 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부 간본 아정유고 제3권 기(記) 가야산기(伽倻山記)에도 ‘함벽루를 지은 사람은 여러 대 훈신(勳臣)이었던 상락군(上洛君)의 맏아들 김후(金侯)였다 한다’고 되어있어 <상락군=문영공 김순, 맏아들 김후=장남 김영돈>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함벽루(涵碧樓)를 창건하신 분은 충숙왕 8년(1321년) 그해 합주지사를 지내신 상락부원군 영돈(永暾) 할아버지로 밝혀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합천군 및 문화관광부를 통하여 함벽루(涵碧樓) 안내문에 영광스러운 할아버지 휘(諱) ‘김영돈(金永暾)’ 석자를 새겨 넣는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4. 윤만대부님이 문화재청에 수정 건의한 내용
지금까지 함벽루(涵碧樓)를 창건하신 분이 ‘상락공(上洛公)의 아드님 김군’이라 하여 상락공(上洛公)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커다란 오류(誤謬)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하)/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김용선/pp725~731의 문영공(文英公) 김순(金恂) 묘지명을 살펴보니 문영공(文英公)의 장남이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영돈(金永暾)께서 충숙왕 8년(1321년)에 지합주사(知陜州事)였음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문화관광부에서 제공하는 함벽루(涵碧樓)에 대한 자료에도 분명히 함벽루(涵碧樓)의 창건자는 ‘고려 충숙왕 8년(1321)에 합주 지주사 김모가 지었다’고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부 간본 아정유고 제3권 기(記) 가야산기(伽倻山記)에도 ‘함벽루를 지은 사람은 여러 대 훈신(勳臣)이었던 상락군(上洛君)의 맏아들 김후(金侯)였다 한다’고 되어있어 <상락군=문영공 김순, 맏아들 김후=장남 상락부원군 김영돈>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함벽루(涵碧樓)를 창건하신 분은 충숙왕 8년(1321년) 그해 합주지사를 지내신 상락부원군 김영돈(金永暾)이 분명하다고 판단됩니다.
공사다망하신줄 알고 있으나 이러한 사실을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라오며 제 주장이 바르다면 향후 함벽루(涵碧樓)에 대한 안내문에 합주지사 '김모(金某)'가 아닌 안동인(安東人) ‘김영돈(金永暾)’ 으로 바로잡아 주실 것을 건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5. 문화재청 회신 내용
안녕하십니까?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과에 근무하는 박희웅입니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청 홈페이지상의 시도지정문화재에 대한 설명 자료는 문화재의 지정관리권자인 당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게재한 것이며, 우리 청은 현재 시·도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홈페이지상의 오류 및 누락부분에 대한 수정 보완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자료가 방대하여 늦어지고 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질의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동 문화재의 지정관리권자인 경상남도에 통보하여 경상남도의 검토의견이 도착되는 즉시 수정 보완을 하겠사오니 이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