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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원공 묘소 주변의 인물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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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2-26 17:37 조회2,0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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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원공 묘소 주변에 묘소가 있는 인물을 살펴 봅니다.



정창손은 익원공 증손( 익원공-밀직사공 승-동추공 종숙-문정공 질) 김질(문정공)의 장인이십니다.



정창손(鄭昌孫)

1402(태종 2)∼1487(성종 18).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효중(孝仲).

중추원사(中樞院使) 흠지(欽之)의 아들이며, 좌참찬 갑손(甲孫)의 아우이다.

1. 세종대의 관력과 정치활동



1423년(세종 5) 사마시를 거쳐, 1426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가 되고, 이어 집현전의 저작랑과 교리를 역임하면서 《통감훈의 通鑑訓義》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41년 사섬서령(司贍署令)으로 전임하였다.

1443년 집현전응교가 되었는데 재직중인 이듬해 한글의 제정을 반대, 《삼강행실》을 반포한 뒤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자질에 있는 것이지 언문으로 번역한다고 하여 모두 본받는 것은 아니라고 하다가 파직, 투옥되었다. 같은해 풀려나와 응교로 복직된 뒤 1445년 집의가 되었는데, 이듬해 세종이 불경(佛經)을 간행하려 하자, 왕실에서 흥천사(興天寺)를 다시 고쳐 짓고 또 경찬회(慶讚會)를 설치하였음을 들면서, 불교는 괴탄(怪誕)하고 환망(幻妄)하여 나라를 미혹시키고 조정을 그릇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 왕실의 불교숭상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다시 좌천되었다.

이듬해 용서를 받아 직예문관에 등용되고, 같은해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집현전직제학을 거쳐 1448년 집현전부제학이 되었다. 그 동안 여러번 왕실의 불교숭상에 대하여 반대하는 소(疏)를 올렸으나 세종은 듣지 않았다.

1449년 부제학으로 춘추관편수관과 수사관(修史官)을 겸직하면서 《고려사》·《세종실록》·《치평요람 治平要覽》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2. 문종·세조대의 관력과 정치활동



이듬해 문종이 즉위하자 우부승지를 거쳐 1451년(문종 1) 대사헌이 되었는데, 조정의 관원들로부터 남달리 깨끗하며 절조를 잘 지키면서 자신의 산업(産業)을 일삼지 않는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어 제학·대제학·병조판서 등을 지내면서 《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1453년(단종 1) 이조판서가 되었는데 외척 홍원용(洪元用)과의 상피관계(相避關係)로 사헌부에서 피혐하기를 주장하였으나 왕의 명으로 피혐되지 않았다.

1455년(세조 1) 우찬성으로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과 판이조사를 겸하였으며,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에 녹훈되고 봉원군(蓬原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에 사위 김질(金質)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단종의 외숙인 권자신(權自愼)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모의하였는데, 일이 여의치 않자 질이 이 사실을 자신에게 폭로함에 이를 세조에게 고변하였다.

이 공으로 좌익공신 3등에서 1자급을 올려 2등 수충경절좌익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 되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가 더하여졌으며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이어 대사성·대제학을 겸직하고 우의정에 올랐다. 그의 이러한 처사로 절의를 숭상하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 등으로부터는 많은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세조로부터는 대단한 신임을 얻어 1457년 좌의정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사직을 하자 세조는 1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부의(賻儀)로 미두(米豆)50석, 종이 100권과 관곽(棺槨)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여묘(廬墓)살이를 하고 있는 그를 세조는 기복(起復:나라의 일이 있을 때 상중에 있는 대신을 3년상이 지나기 전에 벼슬에 임명하던 제도)시켜 영의정으로 삼았다. 이에 여러번 소를 올려 이를 사양하였으나 세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1462년 세자에게 양위할 것을 말하였다가 삭직되고 여산(礪山)에 부처(付處)되었으나, 곧 용서받고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에 복작(復爵)되었다.



3. 예종·성종대의 관력과 정치활동



1468년(예종 즉위년) 예종이 즉위한 뒤 남이(南怡)·강순(康純)의 옥사를 잘 다스려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올랐고, 1469년 성종이 즉위하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로 승품되고 원상(院相)이 되었다.

1470년 나이가 70이 되어 치사(致仕)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고 궤장이 하사되었다.

1456년(세조 2)에 죽은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懿敬世子)를 이해에 덕종(德宗)으로 추존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

한편, 남효온(南孝溫)이 상소하여 세조 즉위초에 폐위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소릉(昭陵) 복위를 주청하자 소릉의 폐출에 참여한 그는 복위에 반대하였는데, 후일 복위된 뒤 이로 인하여 지탄을 받았다.

1475년 영의정에 재임되었으며, 이듬해 왕비의 비행으로 왕이 왕비를 폐하려고 할 때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강력하게 간하지 못하였다.

그뒤 윤비(尹妃)는 빈(嬪)으로 강등되어 자수궁(慈壽宮)에 따로 거처하다가 1479년에 폐위되고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이듬해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를 비로 책봉할 때에 진책정사(進冊正使)가 되었다.

1483년 세자사(世子師)를 겸하면서, 세자서연(世子書筵)에 매일 빈객 1인, 낭청 2인, 대간 각 1인으로 하여금 진강하게 하였다. 이후 여러번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다가 1485년 나이 84세에 영의정으로 재임된 지 1년 만에 사직하였다.



4. 사후의 상황



그리고 2년 뒤인 1487년 86세로 죽자 왕은 청빈재상이라 하여 많은 물품 등을 부의로 하사하였다.

그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에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윤씨사건의 논의(論議)에 참여한 죄로 윤필상(尹弼尙)·한치형(韓致亨)·한명회(韓明澮)·어세겸(魚世謙)·심회(沈澮)·이파(李坡)·김승경(金升卿)·이세좌(李世佐)·권주(權柱)·이극균(李克均)·성준(成俊) 등과 함께 십이간(十二奸)으로 몰려 부관참시(剖官斬屍)되었다.

그러나 1506년(중종 1)에 신원되고 청백리에 녹선되어 부관참시 때 철거한 석물을 다시 세우고 예로써 개장(改葬)하였다.

박학강기하고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으며, 풍채가 준수하고 수염이 배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성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민암(閔#암30)

1636(인조 14)∼1694(숙종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장유(長孺), 호는 차호(叉湖). 이조참판 응협(應協)의 아들이다.

1668년(현종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지평·승지·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79년(숙종 5) 고산찰방(高山察訪) 조지겸(趙持謙)이 당시의 함경도관찰사인 이원록(李元祿)이 분수에 넘치게 역마(驛馬)를 탄다 하여 탄핵하였다.

그는 자기가 함경도관찰사 때의 그곳의 실정과 경험을 자세히 들어서 이원록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극구 변명하여 도리어 탄핵한 조지겸을 문초받게 한 사실은 유명하다.

1678년 동지사 겸 변무부사(冬至使兼辨誣副使:변무부사는 당시 명나라에서 인조반정에 대한 기록이 아주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파견된 사신임.) 복평군(福平君) 연($연04)과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에 귀국하였다.

그뒤 이조참판을 거쳐 1680년 대사헌으로 있다가 경신대출척으로 남인(南人)이 실각하자 파직되었다.

1682년 서인(西人) 김중하(金重夏)로 부터 모반한다는 무고(誣告)를 받았으나 조사 뒤 무사하였다.

1689년의 기사환국으로 다시 대사헌에 기용되어서는 이조판서 심재(沈梓)와 함께 서인 김수항(金壽恒)·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여 그들의 처형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어 대제학·병조판서를 역임하였고, 1691년 우의정에 승진하였으며,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94년 김춘택(金春澤) 등이 숙종의 폐비인 민씨(閔氏)를 복위하는 음모가 있다는 고변(告變)이 있자 남인의 영수이던 그는 훈련대장 이의징(李義徵)과 함께 일대옥사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숙종은 갑자기 남인을 쫓아내고 서인을 등용하는 갑술옥사를 일으켰다.

그는 이 옥사 때 대정(大靜)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의 탄핵으로 곧 이의징과 더불어 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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