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벽루 초혼가 -- 시 한 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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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4-29 16:13 조회1,489회 댓글9건본문
지난 4월 10일 경남 합천의 함벽루를 방문한 후 이를 기념하고자 한 수 시를 써 보았습니다.
그날 詩想을 담아 두었다가 오늘에야 정리합니다.
현대시조 2수로 썼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함벽루 초혼가(涵碧樓 招魂歌)
(二00五. 四. 十. 安思硏 訪涵碧樓時 作時調二首)
金恒鏞
Ⅰ.
함벽루(涵碧樓)(*주1) 초석(礎石)
남은 영혼(靈魂),
벚꽃으로
피어난
봄
황강(黃江) 물
칠백(七百) 굽이
흘러온
누각(樓閣)
낙(落)…
수(水)…
이제사
창주김영돈(創主金永暾) (*주2)
불밝히는
안.사.연아 (*주3)--
Ⅱ.
해인사(海印寺)
대장경(大藏經)을
호국합장(護國合掌)
독경(讀經)하는가
대야성(大耶城) (*주4)
푸른 강물
풍류(風流) 적셔
누각(樓閣) 짓는가
댕-그-렁---
연호사(烟湖寺) (*주5) 풍경(風磬)에
되살아 오는
님[文肅公]이시여--
2005. 4. 10. 처음 짓고. 2005. 4. 29. 완성하다.
<벚꽃 핀 함벽루>
<4. 10. 함벽루에서 안사연과 합천 향토사학자와의 만남>
<연호사 모습>
주1)함벽루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누각. 경남문화재자료 제59호(1983년 7월 20일 지정).
이 누각은 고려시대인 1321년(충숙왕 8) 합주 지주사 김영돈(金永暾)이 창건하였으며 그 뒤 수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
건물은 이층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5량(樑) 구조의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다. 처마의 물이 황강에 바로 떨어지는 배치로 더욱 유명하며 내부에 이황(李滉), 조식(曺植), 송시열(宋時烈)의 글이 씌어진 현판이 있다. 누각 뒤 암벽에는 ‘함벽루(涵碧樓)’라고 각자(刻字)한 글씨가 있는데, 이것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주2)창주(創主) 김영돈(金永暾) : 1285년(충열왕11)---1348년(충목왕4)
충숙왕 8년(1321년)에 지합주사(知陜州事)로서 함벽루를 창건한 분이다. 자(字)는 휘곡(輝谷). 호(號)는 균헌(筠軒) 또는 구봉(龜峰)이다. 장경공(章敬公) 정해(鄭土皆)로 부터 사사(師事)하였다. 1305년(충열21) 문과에 제 3등으로 급제하여 강릉부 녹사(江陵府 錄事)가 되었다. 1340년(충혜왕 복위1)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공수(李公遂) 등을 시취하였다.
1342년(충혜왕 3) 공은 조적(曺由頁)의 난을 평정할 때 아우인 상락후(上洛侯) 영후(永煦)와 함께 이에 대비하는 상소를 올렸고, 성병의상찬일등공신(誠秉義翊贊一等功臣)에 추천되기도 하였다. 그 교서의 글에 이르기를 "적신 조적이 난을 꾸미고 난 후에 과인이 수도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간신 여당이 거짓말로 날조하여 사람을 모아서 국가의 난을 모의하였지만 시종하는 신하들은 시종 절의를 지켜 과인을 보좌하고 협조하였는 바 그 공은 너무도 막대하고 커서 잊을 수가 없도다. 그것으로써 그대 등을 일등공신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충혜왕이 원나라의 재상인 국노(國老)에게 붙잡히매 공은 왕의 죄를 사면해 달라는 상서를 올리려 하자 많은 사람들의 논의는 같지 않았다. 공은 말하기를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함을 청함은 마땅하고 급한 일이다."고 하였다. 이는 고려사와 여지승람에 보인다.
충혜왕때 삼중대광첨의사사(三重大匡僉議司事)에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지고 1346년(충목왕2)에 찬성사(贊成事)로 원나라에 가서 의복과 옷, 음식 등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였다.
이듬해 왕후(王煦)와 함께 귀국하여 원나라에서 왕의 실덕을 묻자 소인들의 장난이라 변명하니 이를 정리하라는 원나라의 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충목왕 때(1347년)에 좌정승 판정치도감사(左政丞 判整治都監事-정치도감의 長 . 整治都監-1347년 충목왕 3년에 지방 토호족들이 과도하게 소유한 田土를 개량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했던 관청으로 이듬해 없어짐)를 지냈다. 이때 지방 토호들의 과도한 토지 소유를 없애고 국가 재정의 확충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여러 반발 세력들과 기황후(奇皇后-원나라 순제의 제2황후)의 4촌 아우(奇三萬-기황후의 배경을 믿고 횡포가 심하자 고려에서 옥에 가두어 죽임)을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어 죽게 한 사건으로 인해 원나라로부터는 치하를 받았으나, 정동행성이문소(征東行省理問所)의 심한 반발에 부닥쳐 구금되기도 하였다.그러나 원나라의 지지로 곧 석방되었다. 결국 공은 의도한 목표가 좌절되자 홧병을 앓다가 충목왕 4년 7월 13일 64세로 몰하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고 묘는 풍덕(豊德) 앙동산(仰洞山)이나 실전하여 충남 천안시 병천면 백전(栢田)에 설단(設壇)했다.
주3)안.사.연 : ‘안동김씨 사이버 학술연구회’의 약칭이다.
주4)대야성(大耶城)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고대신라 때의 고을(성) 이름이다. 이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변한(弁韓)에 속하여 다라국(多羅國). 초팔혜국(草八兮國). 산반계국(散半溪國) 등의 부족국가들이 있었으나 1세기 말~2세기 초 대가야국에 병합되었다. 신라 초기 대가야국에 속하였을 때 국내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으므로 대야성이라 한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와 백제, 신라와 후백제, 왕건과 후백제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남쪽 절벽 아래에 함벽루, 연호사가 있다.
주5)연호사(烟湖寺)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203에 있는 절로서 함벽루 바로 옆에 있다.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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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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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이신 문숙공 선조님께서 기특해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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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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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벽루를 그린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신동문선을 보고있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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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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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 빠져드는 초혼가 입니다. 다음 합천군지 편집할때 꼭 기록해 두어야 할 작품입니다.
벚꽃 핀 함벽루는 너무나 황홀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처가집 외동딸 되는 사람이 내년에 꼭 가보자고 하는데 가능한지요? 상석 대장님 답변 주세요.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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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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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음 처가집 외동딸이라....ㅋㅋㅋ
김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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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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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해마다 벗꽃을 보면 함벽루를 생각할 것입니다.
또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이정표 따라 갈 수 있겠죠(^_^)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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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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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으음 다음 이라..
처가집 외동딸 오시면 가고 말고요......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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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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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벽루와 함께 길이 전해질 명시입니다.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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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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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도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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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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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액자에담아 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