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의 손부(孫婦) 안동김씨(安東金氏)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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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05-26 21:46 조회1,735회 댓글2건본문
이집 [李集, 1314~1387]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본명은 원령(元齡), 자(字)는 성로(成老), 호는 묵암자(墨巖子)·호연(浩然)·둔촌(遁村)이다. 1314년(충숙왕 1)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에서 태어났다.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당(李唐)이다. 1347년(충목왕 3) 문과에 급제한 뒤,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 당대의 거유(巨儒)들과 교유하였다.
이후 합포종사(合浦從事)를 지내고, 1368년(공민왕 17)에는 신돈(辛旽)을 논박하다 미움을 받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밤낮으로 달려 영천(永川)으로 피신했다가, 1371년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 개경으로 돌아왔다. 이어 판전교사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사직하고 이름을 집으로, 호를 둔촌으로 바꾸고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에서 자연을 벗삼아 시(詩)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시에 특히 뛰어나 꾸밈과 가식이 없고, 직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시풍으로 당대에 이름을 얻었다. 성격 역시 솔직 담백하고 뜻이 곧아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고, 1667년(현종 8) 한양에 구암서원(龜岩書院)이 설립되면서 이 곳에 제향(祭享)되었다. 저서에는 《둔촌유고(遁村遺稿)》가 있다.
▲ 둔촌 이집 선생 묘소 안내판
▲ 둔촌 선생 재실 입구
▲ 둔촌 선생 재실 및 영정각
▲ 둔촌 선생 묘소
▲ 둔촌 선생 묘비
▲ 둔촌 선생 묘비
▲ 둔촌 선생 묘소 앞에서.. 좌로부터 진회. 태영. 은회종친.
이장손(1390년~1420)
조선 태종 때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맹윤(孟胤)이다. 고려 때 학자인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손자이며, 탄천(炭川) 이지직(李之直)의 아들이다.
1411년(태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에 이르렀다. 30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묘자리를 살피고 있었는데 풍수를 보는 지사(地師)가 자리를 정하고는 좋은 자리임에는 틀림없으나 장자에게 나쁘다는 말을 하였다. 동생 이인손(李仁孫)이 이곳에 장사할 것을 만류하였는데 이를 뿌리치고 안장하였다. 지사의 말을 듣지 않았던 그는 이듬해 죽었다. 뒤에 운곡서원(雲谷書院)에 배향되었다.
묘는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광주이씨 선영에 있다.
▲ 통정대부의정부사인광주이공지묘 배숙부인안동김씨부
조선 전기의 문신 이장손(李長孫)의 묘.
이장손(1390년~142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맹윤(孟胤)이다. 증영의정 탄천(炭川) 이지직(李之直)의 아들이다. 1411년(태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에 이르렀다. 30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묘자리를 살핌에 지사(地師)가 자리를 정하고는 ‘좋은 자리는 틀림없으나 장자에게 나쁘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동생 이인손(李仁孫)이 이곳에 장사할 것을 만류하자 이를 뿌리치고 안장함에 이듬해 돌아갔다. 후에 창녕의 운곡서원(雲谷書院)에 배향되었다.
이장손의 묘소는 이집 묘소 바로 아래에 서향(西向)하여 있다. 배위 숙부인 안동김씨와의 원형 합장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묘소에는 봉분 중앙에 상석, 사각향로석과 상석 좌우에 문인석, 망주석 한 쌍이 세워져 있다. 이 중 문인석은 복두(幞頭)로 왼쪽이 높이130㎝, 얼굴부분 42㎝이며, 오른쪽은 높이134㎝에 얼굴부분 42㎝로 심한 마모로 인해 이목구비는 형체만 있다.
이장손의 묘표는 봉분 좌우측에 두 기가 서향(西向)한 채 세워져 있는데 모두 근래 세운 것이다. 이 중 봉분 오른쪽의 묘표는 백색화강암제의 비좌와 비신 월두형으로, 앞면에 세로 두 줄로 “通政大夫議政府舍人廣州李公諱長孫之墓 配淑夫人安東金氏祔(통정대부의정부사인광주이공휘장손지묘 배숙부인안동김씨부)”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건립연대는 1966년이다.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둔촌선생의 손자인 이장손공의 배위가 안동김씨입니다.
이장손공의 생몰년은 1390~1420년으로 우리 문중의 김돈(1385~1440), 김명리(1361~1438) 선조님과 비슷한 시기에 사셨던 분입니다. 이때는 후안동김씨가 조선시대의 역사서에 등장하기 전이므로 우리문중의 할머니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둔촌선생은 척약재 할아버님과도 교류가 있었고 하여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광주이씨 인천지역 종친회 청장년회장이신 이영균님과 전화로 통화한 결과 광주이씨 문중에서도 안동김씨로만 알고 있을 뿐 어느 분의 따님인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서로 문헌을 좀더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새로 세운 이장손공의 묘비명에도 안동김씨 뒤에 빈자리를 남겨 두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의 손부(孫婦) 안동김씨(安東金氏)는 누구인가?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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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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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집선생 손부 안동김씨의 아버지는 이름이 족보에 기재 되어있지 않고 .중서사인. 이란 관직만 기재 되어 있다고함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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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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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광주이씨 족보를 찾아보았으나 안동김씨라고만 되어 있구요
이장손의 문과방목을 검색해도 처부는 기록이 없구요.
이장손의 아들(이극규)의 문과방목에서 외조부의 기록도 없습니다.
다른 기록을 좀 더 찾아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