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重訂 南漢志 번역본 소개-홍경모(洪敬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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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5-05-27 14:52 조회1,484회 댓글0건본문
【성 명】 홍경모(洪敬謨)
【생몰년】 1774(영조 50)∼1851(철종 2)
【본 관】 풍산(豊山) 홍(洪)
【자·호】 경수(敬修), 관암(冠巖)
【시 호】 문정(文貞)
【저서·작품】 《관암전서(冠巖全書)》, 《관암외사(冠巖外史)》, 《관암총사(冠巖叢史)》, 《관암유사(冠巖遊史)》,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대동장고(大東掌攷)》, 《기사지(耆社志)》
【시 대】 조선 후기
【성 격】 문신
1774(영조 50)∼1851(철종 2).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수(敬修), 호는 관암(冠巖), 조부(祖父)는 이조 판서 홍양호(洪良浩)이고 영안위(永安尉) 문의공(文懿公) 홍주원(洪柱元)의 아들로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정조 때 동몽 교관(童蒙敎官)으로 경연(經筵)에서 《효경(孝經)》을 강론했으며 오언시(五言詩)를 지어서 정조에게 서책(書冊)과 패향(佩香)을 하사받았고 순조 5년(1805)에 성균관(成均館) 유생이 되었다. 1808년에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816년에 시독관(侍讀官)으로서 홍문관(弘文館)에 장서가 없음을 왕에게 계청(啓請)하여 《예기(禮記)》 · 《주역(周易)》 · 《퇴계집(退溪集)》을 간행하게 했다. 순조 24년(1824)에 관리등용에 실책이 있었다고 하여 법성 첨절제사(法聖僉節制使)로 좌천되었다. 1830년에 사은부사(謝恩副使)로, 1834년에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헌종 4년(1838)과 1840년, 1842년, 1844년 네차례에 걸쳐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했다. 《사의당지(四宜堂志)》에서 18대 현종조(顯宗朝) 이전에 명례궁(明禮宮)은 한때 이현(泥峴)에 있었다고 적고 있다. 대사헌, 이조 · 예조 · 호조 · 병조 판서를 역임하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러 죽었으며 독서를 즐겨해서 장서(藏書)가 많았으며 문장에 능하였고 글씨도 잘 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저서로는 《관암전서(冠巖全書)》 · 《관암외사(冠巖外史)》 · 《관암총사(冠巖叢史)》 · 《관암유사(冠巖遊史)》 등이 있다. 편서(編書)로는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 《대동장고(大東掌攷)》 · 《기사지(耆社志)》 등이 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朝鮮圖書解題, 서울六百年史 第1卷
【생몰년】 1774(영조 50)∼1851(철종 2)
【본 관】 풍산(豊山) 홍(洪)
【자·호】 경수(敬修), 관암(冠巖)
【시 호】 문정(文貞)
【저서·작품】 《관암전서(冠巖全書)》, 《관암외사(冠巖外史)》, 《관암총사(冠巖叢史)》, 《관암유사(冠巖遊史)》,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대동장고(大東掌攷)》, 《기사지(耆社志)》
【시 대】 조선 후기
【성 격】 문신
1774(영조 50)∼1851(철종 2).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수(敬修), 호는 관암(冠巖), 조부(祖父)는 이조 판서 홍양호(洪良浩)이고 영안위(永安尉) 문의공(文懿公) 홍주원(洪柱元)의 아들로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정조 때 동몽 교관(童蒙敎官)으로 경연(經筵)에서 《효경(孝經)》을 강론했으며 오언시(五言詩)를 지어서 정조에게 서책(書冊)과 패향(佩香)을 하사받았고 순조 5년(1805)에 성균관(成均館) 유생이 되었다. 1808년에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816년에 시독관(侍讀官)으로서 홍문관(弘文館)에 장서가 없음을 왕에게 계청(啓請)하여 《예기(禮記)》 · 《주역(周易)》 · 《퇴계집(退溪集)》을 간행하게 했다. 순조 24년(1824)에 관리등용에 실책이 있었다고 하여 법성 첨절제사(法聖僉節制使)로 좌천되었다. 1830년에 사은부사(謝恩副使)로, 1834년에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헌종 4년(1838)과 1840년, 1842년, 1844년 네차례에 걸쳐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했다. 《사의당지(四宜堂志)》에서 18대 현종조(顯宗朝) 이전에 명례궁(明禮宮)은 한때 이현(泥峴)에 있었다고 적고 있다. 대사헌, 이조 · 예조 · 호조 · 병조 판서를 역임하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러 죽었으며 독서를 즐겨해서 장서(藏書)가 많았으며 문장에 능하였고 글씨도 잘 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저서로는 《관암전서(冠巖全書)》 · 《관암외사(冠巖外史)》 · 《관암총사(冠巖叢史)》 · 《관암유사(冠巖遊史)》 등이 있다. 편서(編書)로는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 《대동장고(大東掌攷)》 · 《기사지(耆社志)》 등이 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朝鮮圖書解題, 서울六百年史 第1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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