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함벽루 창건자명 정정 요청 자료(1)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5-06-09 17:08 조회1,502회 댓글2건

본문

지난 4월 10일 경남 합천의 함벽루를 탐방하고 난 뒤 문화재 관련 각 기관인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경남도청, 한국정신문화원, 합천군청, 합천문화원 등에 다음과 같은 자료와 함께 창건자명 정정 요청 공문을 안동김씨 대종회 명으로 내일 발송하게 됩니다. 이에 그 해당 공문과 자료를 알려 드립니다.  

 

1. 발송 공문 자료 1부 샘플

安 東 金 氏 大 宗 會

 

우)130-091.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1동 112-49호. ☎ 2444-3717. 전송:2243-1073. 담당:김관묵.

문서번호: 안대 005-4호

일 자   : 2005. 6. 10(    )

공개여부: 공 개

수 신   : 합천군수

참 조   : 문화공보과장

 

선람

  

  

  

일자

시간

.   .

  

 

번호

 

  

 

처 리 과

  

  

 

담 당 자

  

  

 

심 사 자

  

심 사 일

  


제  목 : 함벽루 창건자명 정정에 관한 건

  1. 귀 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 문중회에서는 문화재 관련 기관들의 홈페이지 및 문헌 등에 실려 있는 함벽루(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동 230번지 소재) 관련 소개 및 해설 자료에 누각 창건자인 본 문중 선조님이신 문숙공(文肅公) 김영돈(金永暾)님의 이름이 올바로 실려 있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이에 관한 정정을 요청하는 근거 자료(첨부물)를 제출하오니 검토 후 정정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첨부 : <함벽루 창건자에 대한 소고(2005. 6. 10. 김항용)> 1부.끝

     

 

2. 첨부 자료

 

 

<涵碧樓 創建者에 대한 小考>

                 작성자 : 金 恒 鏞

Youngdon(hambuykru)06.jpg

<차  례>

      1. 개요 -------------------------- 1

        2. 창건자에 대한 기존의 기록 내용------ 1

        3. 창건자가 김영돈임을 밝히는 자료----- 4

        4. 함벽루 창건자명 수정 및 확인과정-----14

        5. 앞으로의 과제 및 요청사항 ----------22

    

                     2005. 6. 10.

  

        안동김씨 사이버 학술 연구회

 

 

 

1. 개요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동 230번지의 황강가에는 700여 년의 오랜 역사와 민족혼이 담겨 있으며, 합천의 자랑이요 일대의 절경 중에 제1로 손꼽히고 있는 아름다운 함벽루가 있다. 그런데 이 함벽루(문화재자료 59호)의 창건자에 대한 현장의 해설판이나 기타 여러 문헌에는「고려 충숙왕 8년(1321)에 합주 지주사 김모가 지었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정확한 창건자명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안동김씨대종회 내의 한 연구단체인  사이버 학술 연구회(일명 안.사.연)에서 이 문제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여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이곳 합천에 지합주사(知陜州事)로 부임했던 김영돈(金永暾)이 창건했음을 밝혀냈다. 이에 다음과 같이 그 논거와 확인과정을 정리하여 밝히고자 하며,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와 몇 가지 요청사항을 문화재 관련 각종 기관 등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2. 창건자에 대한 기존의 기록 내용

 창건자에 대한 기존의 문화재 관련 각종 기관의 홈페이지 및 몇몇 문헌자료에는 <고려 충숙왕 8년(1321) 지합주사 김모(金某), 당시 합천의 태수, 상락공의 아들 김군> 등으로만 기록 되어 있다. 즉 성씨는 김씨이나 그 정확한 이름은 밝히지 못한 상태로 기록되어 왔던 것이다. 그 관련 자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문화재청홈페이지>(www.ocp.go.kr)와 문화관광부 홈페이지(www.ocp.      .go.kr)의 기록내용

   1)종목 : 문화재자료 59호 .   2)명칭 : 함벽루(涵碧樓) 

   3)분류 : 누(정). 각           4)수량 : 1동

   5)지정일 : 1983.07.20        6)소재지 :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7)소유자 : 함벽루계           8)관리자 : 합천군

 고려 충숙왕 8년(1321)에 합주 지주사 김모가 지었다. 여러 번 고쳐 세웠으며, 이황(1501∼1570)·조식(1501∼1572)·송시열(1607∼1689) 등의 글이 누각 안에 걸려 있다. 뒤 암벽에 새겨진 ‘함벽루’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바로 떨어지는 배치로 더욱 유명하다.

 나. <함벽루> 현지 해설판 기록 내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9호.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이 누각은 고려 충숙왕대에 당시 합주 지주사(陜州知州事)가 처음 창건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대야성(大耶城)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黃江) 정양호(正陽湖)를 바라 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래 전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되었다. <하략>

hambyuk0002.jpg

         <경남 합천 함벽루 앞의 해설판>(2005. 4. 10. 촬영)


다. <涵碧樓誌>(합천문화원 간. 1993) 기록 내용

 1)3P : 고려 충숙왕 신유년(1321년)에 군수 김모(某)가 창건했으나 연대가 오래되어 이름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없고 ---<하략>

  2)10P,  13P : 고려 충숙왕 8년 신유년에 이 고을 郡守 金某에 의해 창건되고 <하략>

  3)22P : <안진>의 <기문>(*최초의 창건자 기록 자료)에서

「지난 정사년 가을에 중국에 과거를 보러 갈 때 평양을 지나다가 永明寺 浮碧樓를 보았고 그 후 5년 만에 진양군수가 되어 龍頭寺 狀元樓에 올라 스스로 말하길 평생에 본 남북의 절경은 이 두 누각 밖에 없다고 말하였는데 작년 나라 일로 江陽을 지날 때 길 가운데서 바라보니 한 채의 누각이 춤추며 날아가는 듯 하며 단청그림이 눈부시게 빛나 흡사 봉황새가 하늘 가운데 날아가는 듯하는 지라..<중략>

 “저 누각을 어느 때에 창건하였으며 터를 잡은 자가 누구인고?”

 하니 손님이

  “1)지금 2)태수가 새로 창건한 것입니다”

고 하였다. <중략>

누를 함벽이라 칭한 자는 太守가 스스로 이름한 것이다. 태수는 누구인고 누세 공신 상락공의 착한 아들 金君이다」

 3)안진 씀

   <하략>

*편집자 주

 1)지금 : 1321년(충숙왕 8).         2)태수 : 당시의 합주지사는 김영돈이었음

 3)안진 : 안진(安震, ?∼1360)

  고려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順興이며 호는 常軒이다. 1313년(충숙왕 즉위년)급제하여 1317년에 藝文檢閱, 1318년에는 원나라 制科에 급제하여 고려로 돌아와 예문응교에 임명되었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밀직부사로서 書筵官이 되고, 安山君으로 봉해졌으며, 1346년에는 李齊賢 등과 더불어 충렬·충선·충숙 3朝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공민왕 즉위 후 원나라에서 왕을 잘 보좌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된 趙日新이 정권을 장악하자, 그의 일파가 되어 政堂文學이 되었다.

 1353년(공민왕 2) 조일신이 제거되자 그 일파가 모두 처형되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곤장을 면하는 대신 銅을 바치게 하여 겨우 목숨만 보전했다. 충렬공 김방경 행장, 김영돈 묘지명 등을 썼다.    

    

라. 동문선 기록내용

 출전 : <동문선> 제68권 기(記). 함벽루 기(涵碧樓記) /안진(安震)

 『내가 15세 되던 해부터 초가집에서 글을 읽으며 사방을 모른 지가 10년이다. 정사년 가을에, 조정의 과거에 응시하려고 평양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영명사(永明寺)부벽루(浮碧樓)를 보았고, 5년 뒤에 진양(晉陽)의 원으로 나가서 또 용두사(龍頭寺)상원루(狀元樓)에 올라 평생에 본 남북의 절경이 이 두 누대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어제 왕사(王事)로 인하여 강양(江陽)으로 가는데 도중에 한 누대를 바라보니, 처마와 기둥이 날아 춤추는 듯하고 단청이 눈부셔 봉황이 반공에 나는 것 같았다. 내가 객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저 누대는 어느 때에 지은 것이며 터를 잡은 이는 누구인가.”하니, 객이 대답하기를, 지금의 태수가 새로 창건한 것이.” 하였다. 내가 듣고 기뻐하여 배를 띄워 강을 건너 난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그 강산의 면모와 형세가 지난번에 본 두 누대보다 못하지 않고 단장의 기이함은 그보다 나았다. 아, 이 고을이 있는 때로부터 곧 이 산이 있었고, 옛날의 영웅 호걸들이 와서 이 고을을 다스린 자도 많았으나, 한 사람도 푸른 산을 파고 맑은 물 가까이에 누대를 세운 자가 없었는데, 오직 태수가 비로소 얻었으니, 이 어찌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었다가 그 사람에게만 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술잔을 들어 노래하니,

흰 구름이 나는데 산은 푸르고 / 白雲飛兮山蒼蒼

밝은 달이 떴는데 물은 질펀하도다 / 明月出兮水??

누대 위를 사시사철 보아도 부족하니 / 樓上四時看不足

아득한 내 회포여, 멀고 먼 하늘 저쪽이로다 / 渺渺余懷天一方

산이 무너지고 물이 마르더라도 / 山其崩兮水亦渴

태수의 덕은 잊을 수 없도다 / 使君之德不可忘

하였다. 객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 노래를 써서 이 누대의 기(記)로 삼는 것이 좋겠다.”하기에, 내가 곧 붓을 가져다 썼다. 그 경영(經營)의 보태고 뺀 것과 관람의 크고 적은 것은 시(詩)에 능한 자가 밝힘을 기다려도 늦지 않다. 누대를 함벽(涵碧)이라고 일컬은 자는 누구이냐. 태수가 스스로 이름 지은 것이다. 태수는 누구인가. 여러 대 동안 공신인 상락공(上洛公)의 아들 김군이다. 』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그동안 여러분의 노력의 결과를 집약한 함벽루 창건자명 정정 요구 요청
공문은 화룡의 정점이라 할수있는 안 사 연 연구의 결정체라 봅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다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우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우회
작성일

  대사건이 일어낫군요.
그노력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사를 바꾸는 그런 위대한 힘을 느끼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