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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남대문과 연복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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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6-11 13:55 조회1,40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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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남대문(南大門)

판문점에서 개성시내로 가면 앞에 평양 가는 고속도로 입구가 보인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통일거리로 직진하면 양 옆으로 15~20층의 고층 아파트가 도열해 있다. 그 앞에 로타리 가운데 개성의 관문인 남대문이 자남산 아래로 보인다. 남대문은 개성성중 내성의 정남으로 1391~1393년에 건설되었으며, 6.25 전쟁시 파괴된 것을 1945년복구하였고 국보급문화재 제 34호로 지정하였다.

남대문은 고려시대의 건축술을 이어받아 장식이 소박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한국의 문루건축 중 뛰어난 작품이다. 아치식의 무지개문(높이 3.55m)과 축대 위의 단층문루로 저면 3간(길이 1.36m) 축면 2간(길이 7.96m)의 합각지붕에 3포집이 있다.

남대문 안에는 유명한 연복사(演福寺)종이 있는데, 이 종은 1346년에 제작되어 금강산의 연복사에 매달려 있다가 1563년 절이 불타자 이곳에 옮겨 20세기 초까지 타종되어 개성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유서 깊은 종이다. 연복사종은 청동제로 높이3.3m, 아구리 직경 1.9m, 두께 23㎝에 무게 14톤의 거대한 종으로 한국 5대명종의 하나로 꼽힌다. 종의 몸체에는 불상을 비롯해 특이하게도 용, 거북,봉황,사슴,게, 물고기 ,물결무늬들이 새겨져 있다.연복사종은 그 소리가 맑고 우렁차 한번 치면 10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한다.



연복사종(演福寺鐘)

개성 연복사(演福寺) 종 표면에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 종의 주조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1346년(충목왕 2년)에 고려출신으로 원나라 고관이었던 강금강(姜金剛)과 신예(辛裔) 등이 원나라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장인들을 이끌고 금강산에 종을 주조하러 왔을 때 고려측에서도 황실의 안녕을 축원한다는 명분으로 원나라 장인들을 시켜 연복사의 종을 새로 만들었다. 명문은 이곡(李穀: 1298~1351)이 작성하였으며, 명문 뒤에는 종의 주조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단에는 고려의 국왕과 모후(母后)를 비롯하여 정동행성과 고려의 주요 관원들이 망라되어 있고, 작업을 실제 담당한 원나라 장인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 연복사종은 현재 북한의 보물급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시대  고려

연대  1346년(충목왕2년)

유형/재질  금구명·종명 / 청동 

문화재지정  기타문화재 - 국외 

크기  높이 320cm, 입지름 203cm, 글자크기 1.8cm

출토지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남본 남대문 

소재지  (북한)-황해북도 개성시 북안동(北安洞) 남대문(南大門) 누각 

서체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이곡(李穀) / 성사달(成師達)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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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사(贊成事) 김영돈(金永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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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사 안축(安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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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발원한 사람들[同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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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창부원군(福昌府院君) 김영후(金永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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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부원군(金海府院君) 이제현(李齊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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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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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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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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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먼저 올려주신 백두산 등정기 잘 보았습니다.
 연복사의 선조님 내용 잘 보았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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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이 귀한 자료를 중국에서 찾아 주시다니, 해당 선조님 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