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筆蹟-조선15 (金重元김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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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3-20 03:45 조회1,825회 댓글0건본문
선조 筆蹟-조선15 (金重元김중원)
부사공파이신 김중원(金重元) 선조는 ?∼1716(숙종 42).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선경(善卿)이며, 증조부는 김응하 장군의 동생인 어영대장 김응해(應海) 장군입니다..
김중원은 무신이면서도 글씨에도 뛰어나 초서·예서를 잘 썼다고 하는데 남아있는 필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 신고 한국서예사 (1975, 김기승)
⊙ 김중원(?-1716)의 草隸
그는 본관이 안동, 어영대장 김응해의 증손으로 자가 善卿이다.
24세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이 삼도통제사에 이르렀다. 그는 군기를 바로잡고 해현창을 설치하여 가난한 어민을 구제하였으므로 군민이 송덕비를 세워 기념하였다.
어려서부터 닦은 학문이 문관에 못지 않게 깊었고 특히 草書와 隸書를 잘 썼다.
[이계집]에 의하면 "일찌기 고아가 되었으나 자분하여 유업에 능통하였고 초예를 잘 썼다. 본다 將家의 종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삼도통제사를 역임하여 명적이 현저하매 군민이 비를 세워 이를 칭송하였다" 고 한다.
▣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 김중원(金重元)
?∼1716(숙종 42).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선경(善卿). 증조부는 어영대장 응해(應海)이다.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자립하여 학문수양에 전력하였다.
24세에 장군의 후손답게 무과에 급제하였다.
1697년(숙종 23) 무관으로 윤지선(尹趾善)의 천거를 받은 바 있으며, 1711년 삼도통제사가 되었다.
영남에 있을 때 큰 가뭄이 들자 백성들의 구휼에 전력을 다했으며, 길주에 있을 때도 가뭄의 피해로 백성들이 곤경에 처하자, 이들의 기아를 척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11년 통제사로 있을 당시 병기를 수리하고 군사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힘쓰는 한편 현의 창고를 열어 서민들을 도와주었으므로, 군민(軍民)이 모두 힘을 합쳐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한 비석을 세웠다.
한편 글씨에도 뛰어나 초서·예서를 잘 썼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月溪集. 〈李貞一〉
▣ 김항용 - 연일 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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