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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여름캠프자료---(1295-1312) 문영공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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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7-09 18:26 조회1,3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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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8세)1295년 동지공거로 과거 주관

원정(元貞) 을미년(충렬왕 21, 1295, 38세) 겨울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자, 뽑힌 사람들이 모두 당시의 이름난 선비들이었다. 크게 잔치를 열자 □□□□ 선비와 조야(朝野)에서 훌륭하다고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것은 선공을 지극히 영화롭게 한 효도이다.

 

12) (39-41세) 국학전주, 밀직사, 우승지, 성균좨주, 집현전학사 등

그 해에 조의대부(朝議大夫)로 승진하고, 병신년(충렬왕 22, 1296, 39세)에 세자사인(世子舍人)을 겸하였다. 대덕(大德) 정유년(충렬왕 23, 1297, 40세)에는 국학전주(國學典酒)로 옮기고, 다시 봉렬대부 밀직사 우부승지(奉烈大夫 密直使 右副承旨)에 임명되었다가 곧 좌부승지 보문각직학사(左副承旨 寶文閣直學士)로 옮겼다. 이듬해(41세) 우승지 지판도사사(右承旨 知版圖司事)에 올랐으며, 옮길 때마다 모두 지제고[三字]를 겸하였다. 그 해 봄에 남녘지방으로 사명(使命)을 받들고 내려갔다. 돌아오게 되자 통의대부 광정부사 승지 성균제주(通議大夫 光政副使 承旨 成均祭酒)로 고쳐 임명되었고, 또 정의대부 집현전학사 좌산기상시(正議大夫 集賢殿學士 左散騎常侍)로 바뀌었다. 그 해 7월에 다시 밀직사 우승지 국학제주 보문각학사 지민조사(密直使 右承旨 國學祭酒 寶文閣學士 知民曹事)가 되었는데 전과 같이 지제고[三字]를 겸하였다. 8월에 봉익대부 삼사좌사 숭문관학사(奉翊大夫 三司左使 崇文館學士)에 오르고, 9월에 다시 정헌대부 밀직사좌승지 판비서시사 충사관수찬관 지제고 지군부사사(正獻大夫 密直司左承旨 判秘書寺事 充史館修撰官 知制誥 知軍簿司事)로 바뀌었으며, 12월에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문한학사(奉翊大夫 密直司副使 文翰學士)에 임명되었다.

 

13) (41세)1298년, 대구 동화사 홍진국존비 書

충렬왕24 戊戌 (1298, 41세)에 세운 동화사 홍진국존비는 金暄(김훤)이 짓고 밀직승지 김순이 썼으니 대구 팔공산에 있다. <해동금석총목>

弘眞國尊碑銘(篆 題)」
高麗國大瑜伽桐華寺住持五敎都僧統普慈國尊贈諡弘眞碑銘幷序」
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國學大司成文翰學士臣金?奉敎撰」
正議大夫密直司左承旨判秘書寺事文翰學士充史館修撰官知
制誥臣金恂奉敎書」
門人桐華寺住持深智洞解五明大師孝楨立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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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德二年十月 日」


14) (42세)1300년 정치적 소용돌이 중에 아버지 충렬공 별세

기해년(충렬왕 25, 1299, 42세)에 물러날 때가 된 것을 알고 은퇴할 것을 청하였다. 이듬해(43세) 8월에 선공이 세상을 떠나니 유언에 따라 고향에 장례지내고,

 

 

<김선-김승용>

 5) 1200년대 말,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붕당(朋黨)의 꺼림 때문에 선왕의 뜻을 거슬려 완산주(完山州)의 목(牧)으로 나갔다가 익성부(益城府)의 수령으로 옮기고, 또 멀리 장흥부(長興府)와 영광군(靈光郡)으로 옮기니,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

 

 

15) (49세)1306년 <고려국대장이안기> 書

(49세)1306년 9월 書하신 <高麗國大藏移安記(고려국대장이안기)>의 기록이 元의 周南瑞(주남서)가 편찬한 <天下同文>에 수록되어 있는데, <사고전서>의 천하동문집에도 본문이 축소된 채 수록되어 있다.
이 비는 민지 찬, 김순 서로 만든 것으로, 비의 내용은 1304년 고려에 왔던 원의 승려 鐵山(紹)이 강화도 보문사에서 얻은 대장경 1부를 강서행성 애주로 의춘현의 대앙산으로 옮겼다는 내용이다. 劉喜海의 海東金石存攷(고)에는 "大德10年9月閔漬撰 金恂書 在江原道淮陽府金剛山" 하여 이 비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석각사료신편>에도 기록되어 있다.

<고려국대장이안기>
선수 조열대부 한림학사(宣授 朝列大夫 翰林學士) 겸본국 광정대부 자의도첨의사사사 연영전대학사 동제수사 판문한서사(兼本國 匡靖大夫 咨議都僉議使司 延英殿大學士 同提修史 判文翰署事) 민지(閔漬)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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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大德) 10년 병오년(충렬왕 32, 1306) 9월 일 적음.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판비서시사 문한학사(奉翊大夫 密直司副使 判秘書寺事 文翰學士) 김순(金恂)이 씀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국학대사성 숭문관학사(奉翊大夫 密直司副使 國學大司成 崇文館學士) 윤보(尹珤)가 전액(篆額)을 씀
고려국 금강산 성불난야 호송대장경 백실사문(高麗國 金剛山 成佛蘭若 護送大藏經 白室沙門) 석(釋) 일목(一牧)이 돌을 세움
선수 강서도 원주로 의춘현 대앙산 당대주지(宣授 江潟 袁州路 宜春縣 大仰山 當代住持) 전법허곡대선사(傳法虛谷大禪師) 희릉(希陵)

 

16) (53세) 중대광 상락군

경술년(충선왕 2, 1310, 53세) 겨울 선공의 묘에 제사지냈다. 임자년(충선왕 4, 1312, 55세)에 다시 중대광 상락군(重大匡 上洛君)으로 임명되면서 선공의 작위[茅土]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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