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여름캠프 자료---전서공파 3(김휴1)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5-07-16 14:35 조회1,383회 댓글1건

본문

 

학당공 (휘 休휴)

전서공 성목(成牧)과 정부인 한양조씨와의 사이에 1350년(고려충정2) 출생하여 1430년 81세로 몰하였다. 자는 鍊父(연부), 호는 학당(學堂).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門下生)이다.



1) 어려서

어려서 포은 정몽주에게 수학하였고, 고려 공민왕때 檢校近侍(검교근시)라는 벼슬자리에 올라 왕을 시종하였다.



2) 35세) 1384년 종숙 척약재 유배시, 부운산(浮雲山) 아래에서

呈從叔척若齋島配時韻 / 종숙 척약재 유배때 보낸시

大理島中叔是非 / 대리도에 계신 숙주(叔主)의 시비(是非) 때문에

浮雲山下姪冠衣 / 부운산 밑에 있는 종질(從姪)은 의관(衣冠)이 잦습니다.

島山千里相思夜 / 도산천리(島山千里) 떨어져서 서로 사모(思慕)하는 밤에

自獨無言不掩扉 / 스스로 홀로 말없이 사립문을 못닫나이다.



3) 여말선초 고려충신

공은 고려말에 사간을 역임하고<金承露 實錄> 고려가 망함에 향리에 퇴둔하여 조선조에서 여러차례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학을 교육하면서 그 貞節을 지켰다.<대동운부군옥> 유고(遺稿)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를 때 호군(護軍)의 명을 받았으나 연로한 아버지(김성목)를 모시기 위하여 직을 사양하고 송도(松都)에서 여러 신하들과 통곡으로 작별하고 현재의 연기군 전의면 운주산 아래 거처할 장소를 구하여 은거하였다.

태조는 다시 가선검교 한성좌윤(漢城左尹)이라는 벼슬을 내려 그를 불렀으나 그는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 초야(草野)에 묻혀 학문을 닦아 그의 문하생 중에서 충효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니 그의 덕망과 지조가 훌륭하다 하여 유림 명인(儒林名人)들이 유허비를 세웠는데 연기군 전의면 미곡리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그가 은거하고 있던 전동면 미곡리를 그의 호(號)를 따라 학당리(學堂里)라 일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기 운주산성 (燕岐 雲住山城)>

종   목   시도기념물   79호

명   칭   연기운주산성 (燕岐雲住山城)

분   류   성지(성곽)

수   량   길이3,210m

지정일   1989.12.29

소재지   충남 연기군 전동면 청송리 산90외

소유자   국유

관리자   연기군


연기 운주산성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3개 마을과 전의면 2개 마을에 걸쳐 있는 산성으로, ‘고산산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발 460m의 운주산 정상을 기점으로 하여 3개의 봉우리와 계곡을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성의 둘레는 바깥의 외성이 3210m, 안쪽의 내성이 1230m이며, 성벽의 높이는 2∼8m, 폭은 2m이다. 내성의 벽은 흙을 층층이 다져 쌓았고, 외성의 벽은 바깥면을 돌로 쌓은 후 안쪽에서 흙을 밀어넣고 다져 쌓은 형태이다.

성안의 평지 및 구릉에는 크고 작은 건물터가 보이고, 백제 토기조각과 고려·조선시대의 기와조각들이 보인다. 서·남·북쪽에서 성문터가 확인되는데 붕괴상태가 심해서 자세한 형태는 알 수 없다.

이 산성은 백제 때 쌓은 성으로 백제가 멸망하고 일어났던 백제 부흥운동군의 최후의 항전지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연기군에서 복원작업을 하여 성곽 188m를 보수하였다.

문화재명   연기운주산성(燕岐雲住山城)

백제산성(百濟山城)으로 아직도 세상(世上)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백제사(百濟史)의 귀중한 유적지로 서기 660년 백제사 멸망(滅亡)하고 풍왕과 복신, 도침장군을 선두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군(百濟復興運動軍)의 최후(最後)의 구국(救國) 항쟁지(抗爭地)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전의현(全義縣) 고적조(古跡條)에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조선초기에는 이미 폐성(廢城)이 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이전에 축성(築城)한 고대(古代) 산성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운주산성은 내성(연기운주산성 (燕岐雲住山城)內城)과 외곽성(外廓城)이 함께 갖추어져 있으며 성에서 수습(收拾)된 기와편(瓦片)의 제작기법이 백제시대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 이 성이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운주산성(雲住山城) 정상(頂上)에는 “백제(百濟)의 얼 ”상징탑이 있으며 정북으로 독립기념관을 바라볼 수 있고 천안, 청주는 물론 맑은 날에는 아산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가족단위 등산객 및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으며 최근들어 연기군(燕岐郡)에서는 운주산성 복원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성곽(城郭) 188m를 보수하였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학당공께서는 척약재 당숙(5촌간)이 유배가시는 대리가 아마도 섬이리라 생각하셨나 봅니다.
당시의 지리감각으로는 대리라는 지명은 먼 섬나라쯤으로 여기신 듯
하여 대리도라고 쓰시지 않았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