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캠프 자료---전서공파 4(김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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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7-16 14:38 조회1,521회 댓글1건본문
4) 배위와 자녀
1430년 81세로 일기를 마쳤으며 부인은 선산김씨이고, 슬하에는 2남 2녀를 두었는데, 益精(익정), 益廉(익렴) 형제는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의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익정은 1425년 대사헌에 올라 직을 맡고 있던 중 노친을 모시기 위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부모가 사망하자 동생 익렴과 함께 3년씩 6년간을 시묘하였다.
5) 사위 박안생 (박팽년의 조부)
막내(둘째) 사위가 바로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조부인 순천 박안생(朴安生)이었다. 연기지역에 순천박씨들이 터전을 마련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안동김씨의 사위로 입향함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김구---김성목---김휴(1350~1430)---김익정(?1375-1436), 김익렴, 1녀, 2녀+박안생
박안생(朴安生)+여(부 김휴)---박중림(朴仲林)1400 ~1456)+여(부 김익생)---박팽년(朴彭年)1417 ~1456)
*박안생(朴安生) 의영고사(義盈庫使), 목사(牧使)를 지냈다.
*자(子): 박중림(朴仲林) 한석당(寒碩堂)1400 ~1456) 이조, 형조판서를 지냈다.
*손(孫): 박팽년(朴彭年) 취금헌(醉琴軒)1417 ~1456) 사육신. 시호 충정이다.
박안생(朴安生)은 전의(全義)의 명족(名族)인 안동김씨 한성좌윤 학당(學堂) 김휴(金休)의 둘째 따님에게 장가들어 처가 근처로 이사하니 그가 살던 전의읍치 북쪽의 상(上), 중(中), 하대부리(下大夫里) 일대를 박동(朴洞)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현재의 전의면 관정리(觀亭里) 일대이다. 상대부리는 전의읍치에서 7리, 하대부리는 5리 떨어진 곳이다. 전의읍지에 의하면 집 부근에 한석정(寒碩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있었다. 따라서 박중림은 외가가 있는 학당리에서 탄생하여 박동에서 성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박안생 유허비
[소 재 지] 연기군 전동면 송곡리
[크 기] 비신 - 62 x 29 x 153cm (고)
비좌 - 95 x 72 x 36cm (고)
옥개 - 105 x 75 x 40cm (고)
“조선국의령고사 중 이조판서 순천박공안생지묘 증 정부인 안동김씨부후” 라고 묘비에 쓰여 있으나 건비연대는 불확실하다. 박안생은 박팽년의 조부이며 묘제는 고려시대의 모형을 닮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팽년(朴彭年)
1417(태종 17)~1456(세조 2). 조선 초기의 문신.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 자는 인수(仁#수04), 호는 취금헌(醉琴軒). 회덕(懷德) 출신. 안생(安生)의 손자이며, 중림(仲林)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김익생(金益生)의 딸이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 1438년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47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하였다.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이듬해는 형조참판이 되었다.
그뒤 1455년(세조 1)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다음해에 다시 형조참판이 되었다. 세종 때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 등 당대의 유망한 젊은 학자들과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이들 학사들은 모두 그 시대의 이름높은 선비들이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경술(經術)과 문장?필법이 뛰어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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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휴의 아들 김익정은 세종15년(1433), 하정사(賀正使)의 정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누이의 손자인 박팽년의 외조부 김익생이 부사였다. 즉 누이의 사돈이 김익생이었다.(김휴---김익정 누이+박안생---박중림+여(부 김익생)---박팽년)
박팽년은 결성면(현 충남 홍성)에서 학덕이 높았던 김대래(김구---김천순---김담---김대래)와도 교분이 많아(朴公彭年以公同年子。又作詩卷序) 세종이 집현전을 확충할 때 박팽년이 천거하였다고 한다.
김익정은 절제 김종서의 재종형이 되기도 하는데, 김종서의 조모가 김익정 모친의 고모이다.(조모 선산김씨---부모---김종서, /김휴+선산김씨---김익정) 세종17년(1435) 성절사로 명나라에 갔던 김익정이 돌아와 3월27일에 함길도관찰사로 내려가 있던 김종서를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를 삼아 북변확장(두만강변 4군6진 개척)을 전담하게 한다. 김종서는 또한 김연수(문온, 대사헌 역임)의 장인이 되기도 한다.(문온공---김명리---김맹헌---김자정---김연수+여(부 김종서))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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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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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전서공파의 혈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순천박씨와의 혈연. 기억고 현장에서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