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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제4회 안동김씨 여름캠프 보고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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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김윤식 작성일05-08-17 02:24 조회1,71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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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제4회 안동김씨 여름캠프 보고_03


◆12:20 학당골 출발, 고복저수지 향

학당공 유허비를 둘러본 참예자 일행은 차량을 주차한 곳으로 돌아옵니다. 오락가락하던 비도 잠시 그쳤습니다. 이제 고복저수지 옆 연기대첩비로 향할 시간입니다. 서운한 마음에 전서공 할아버지 묘역을 돌아보니 안개구름이 운주산 정상을 휘감고 있습니다.

대열을 정비하고 12:20분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이 한적한 농로를 돌아나갑니다. 아뿔싸, 그 사이에 비꽃이 피더니 이내 소나기로 변합니다. 그 때문에 점심식사를 예약해 둔 고복저수지 인근 음식점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지나 오후 1시가 가까웠습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대종회장님을 시작으로 참예자들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종회장님께서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여름캠프에 참여하신 종친들과 참예자 일행을 정성껏 맞이하신 전서공파 종친들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말과 함께 문중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안사연 회원들의 연구와 그 동안의 성과를 치하하셨습니다.

대종회장님의 인사말씀 후 전서공파 도유사 수회 종친, 춘교 인천종친회장, 실경 대구종친회장, 재만 대구청장년회장, 성회 전 대종회 부회장, 재택 안렴사공파 전 회장, 관묵 사무총장, 재은 부사공파 전 회장, 영환 전 대종회 감사, 항용 홈페이지관리자, 상석 여름캠프 총괄기획자, 태흥 전의청년회장, 광도 문온공파 종손, 선회 문영공종회 총무, 태문 안렴사공파종회 총무 등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항용 종친은 최근 경매 사이트에서 입수한 안렴사공파 최초의 파보인 갑자보를 화산군(휘 주) 문집 발간에 큰 공적을 남긴 용주 종친에게 기증하였습니다.(그 다음 날 대천해수욕장 모래밭에서 용주 종친은 서두 부분을 보니 안렴사공파 화산군문중에서 사용하는 파별 항렬자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소장해야 할 적임자에게 기증한 셈입니다.)

뒤따라 대종회장님의 건배 제의에 따라 가볍게 한 잔씩 한 후 점심을 들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나니 비에 젖은 몸이 훨씬 가뜬해졌습니다. 그런데 전서공파종회에서 여름캠프 행사로 전국의 종친들이 전서공 묘역을 방문한 답례로 52명이나 되는 참가자들의 점심식사비를 지불해 주셨습니다. 늘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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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15:20 연기대첩비

점심식사 후 바로 옆 연기대첩비로 향했습니다. 이 연기대첩비는 우리 문중의 명장 중의 명장이신 김흔 상장군께서 합단적을 물리친 연기대첩을 기리기 위해 연기군청이 건립한 것입니다.(연기대첩에 대한 상세 내용은 여름캠프 자료집(종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연기군의 유일한 군립공원으로 정식 명칭은 연기대첩비공원이라고 합니다. 야외수영장과 소공연장을 갖추고 있어 지역민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흔 장군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흔 장군의 연기대첩비 건립은 해연 전 연기군총친회장을 비롯해 재붕 충남 문화재 전문위원, 재산 종친, 은회 종친 등 여러 종친들께서 김흔 선조님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책자를 펴내는 등 적극적인 노력에 의한 값진 결실이기도 합니다.

이 연기대첩비 외에 연기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종친들께서 1997년 5월에 연기대첩 현장인 정좌산이 빤히 건너다보이는 곳에 별도의 김흔 장군 연기대첩비를 세운바 있습니다.

안동김씨 연기군 종친회에서 세운 ‘김흔 장군 연기대첩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 대박산 앞 정좌산은 고려 충렬왕 때 연기대첩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연기대첩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의 반란군이었던 합단적이 고려로 쳐들어와 온 강토를 유린하다가 1291년(충렬왕 17) 5월 1일 이곳 연기 정좌산에 침입한 것을 격퇴시킨 연기지역에서는 역사상 그 유례가 없었던 대승첩이었다.

적의 침입에 고려와 원나라는 연합군을 결성하여 5월 2일 동이 틀 무렵 정좌산을 공격하였으나 적이 너무 강력하게 저항함에 우리 군사들이 두려워하고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에 김흔 장군은 “후퇴하는 자는 엄히 참하리라” 하고 앞장 서 적의 예봉을 꺾고 진격하여 적을 크게 격퇴시켰다. 정좌산 전투에서 패주한 합단적은 남북으로 도주하였다가 5월 8일 전열을 재정비하여 원수산으로 다시 침략해 왔다. 원수산 전투에서는 한희유 장군이 앞장 서 적을 공격하여 격퇴함으로써 전후 2년여에 걸친 합단의 침입은 종식을 고하였다.

이처럼 연기대첩은 합단적의 유린을 종식시킨 결정적 승전이었음에도, 후대에 이 대첩을 기념할 어떤 유적도 남겨놓지 못하였음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연기대첩에 참여했던 김흔 장군은 안동김문의 중시조인 충렬공 김방경의 둘째 아들로 비록 장군의 직계 후손들이 연기지역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연기대첩지의 역사성을 기리고 아울러 방계의 조상을 기리는 깊은 뜻으로 이 비를 새겨 멀리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1997년 5월

공주대학교 교수 이해준 지음

충렬공 23대손 재산 씀

안동김씨 연기 종친회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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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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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편이 앉아 보고 있으니 송구 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