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 주치의 손녀 류청씨, 모국 대학서 한국어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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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08-17 19:25 조회1,257회 댓글0건본문
김구선생 주치의 손녀 류청씨, 모국 대학서 한국어 연수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주치의로 일했던 고 류진동(劉振東) 박사의 손녀가 ‘조국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 대학에 연수하기로 했다.
주인공은 중국 충칭(重慶)에 살고 있는 류청(劉菁·중국명 류징·22·사진) 양. 오는 9월학기부터 서강대 한국어학원에 입학, 1년간 한국어와 문화 등을 배우는 류양은 광복절 전야인 14일 한국땅을 밟는다.
류양은 10일 “할아버지가 과거 한국독립을 위해 김구 선생을 도와 큰 역할을 한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배우고 돌아와 훌륭한 일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충칭(重慶) 공상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류양은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류양의 한국행은 지난 4월 사단법인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의 ‘임정대장정’ 순례단이 충칭에 도착했을 때 류양의 아버지 류수동(劉秀東·50)씨가 딸을 데리고 와 ‘간절한 부탁’을 해 성사됐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김인수 대표는 "어린 딸을 데리고 와서 한국의 문화를 배우겠다고 애원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면서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류 양의 학교 등록금은 물론 한국 거처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류 양의 할아버지 류진동 박사는 김구 선생의 충칭 임정 시절 광복군 공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의사로서 김구 선생 주치의로 신변을 지켰다. 일본군 항복 이후에는 김구 선생과 함께 서울로 환국했으나 1946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가 생활고로 북한에 가 생활하기도 했다고 류수동 씨는 전했다.
류 씨는 부친의 북한행에 대해 "중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의사로 일하다 병에 걸려 당국의 구제금으로 생활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할 수 없이 조선(북한) 국적을 취득하게 됐다"면서 "이후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아버지가 중국인 어머니와 나를 포함한 여섯 아이를 데리고 1957년 북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류진동 박사는 1959년 병으로 북한에서 사망했다. 이후 가족은 아버지가 김일성계열이 아닌 김두봉 계열이어서 1960년대 이후 더욱 정치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다가 결국 1963년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 왔다고 설명했다.
류씨는 이미 두차례에 걸쳐 보훈처에 류진동 박사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신청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과거 활동이 제대로 인정되면 독립유공자로 선정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인수 대표는 "최근 사회주의계열 인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이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에 매진한 류진동 박사가 제외된 점은 매우 아쉽다"면서 "그의 활동상을 제대로 알려 하루 빨리 유공자로 서훈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류 씨 부녀 외에도 일제하 중국에서 대한독립운동을 후원한 중국인들이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의 초청으로 광복절을 맞아 대거 한국을 방문한다.
그 가운데는 김구 선생이 피난시절 치료를 받았던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 상아의원의 양롄아오(楊連奧) 부원장,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피신에 나선 김구 선생을 저장(浙江)성에 숨겨주었던 추푸청(저<옷의변에者>補成) 선생의 손녀 추리전(저離貞)여사가 포함돼있다.
또 상하이와 자싱(嘉興)시 등에 소재해 있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관련 유적 보호에 도움을 준 화진하오(華俊豪) 상하이 국제우인연구회 비서장 등 10여명도 자리를 함께 한다.
오는 14일 저녁 한국땅을 밟는 이들은 특히 광복절인 15일 효창원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한반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유적지'인 경교장을 방문한 뒤 오후에는 한중 우호의 밤 행사와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되는 `광복 60주년 국민축제'에 참석한다.
이어 16일에는 김원기 국회의장을 예방하고 국회에서 개최되는 `되돌아본 광복 60주년' 기념전도 관람한다.
상하이=연합뉴스
2005.08.10 (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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