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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충렬공 관련인물록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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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8-24 13:41 조회1,36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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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敬順王, ?∼979) : 신라 제56대왕(재위 927∼935). 성은 김씨, 이름은 부(傅). 문성왕의 후손이다. 고려에 항복한 뒤에 왕건의 큰딸 낙랑공주와 다시 결혼하였다. 무덤은 장단에 있다. 김방경의 조상이다. 



김효인(金孝印, ?∼1253) : 김방경의 아버지. 성품이 엄격하고 굳센 사람으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고 글씨를 잘 썼으며 과거에 합격하여 그 후 벼슬이 정의대부 병부상서(兵部尙書) 한림학사 충사관 수찬관 지제고에 이르렀다. 후에 김방경으로 인하여 금자광록대부 중서령에 추증되었다.<고려사> <김방경 묘지명>. 최충헌 집권기인 희종 4년(1208년) 윤4월 참지정사 이계장(李桂長)이 지공거, 우부승선 금의(琴儀)가 동지공거로 진사를 선발하여, 황보관(皇甫瓘) 등 33인, 명경과 6인, 은사 2인이 급제하였는데,<고려사> 이때 황보관과 동방급제하였다.<방목열기>. 영열공(英烈公) 금의(琴儀)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세상에서 칭하기를 “금학사옥순문생(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족보> 

장남은 방경(1212생) 이고, 2남은 밀직부사 동경유수를 지낸 지경, 3남은 좌정승 충순공에 이른 현경이며,<족보> 딸은 박주수령 강분, 연주수령 권천에게 출가하였다.<고려사>. 최문본(1233-1246)의 처 영가군부인 김씨도 있다.<1302년 아미타불 복장유물 영가군부인 발원문>



금녕송씨 : 김방경의 어머니. 송기(宋耆)의 딸로 후에 금관국대부인으로 추봉되었다.<1300년대 광산김씨 김련-김진 호구단자>. 김방경이 54세(1265, 원종6) 1월부터 5월까지 원나라에 進奉使로 다녀와서 서북지방이 위태하므로 북방을 진무하였다. 이때 마침 모상을 당하여 고향에 가셨다가 돌아와서, 얼마 안 돼서 上將軍이 되어서 법으로써 重房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1268년(지원5년, 戊辰) 2월에 전분의 무고로 남경에 좌천되었다.<김방경 행장>. 금녕송씨는 1265년경 별세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송기(宋耆) : 김방경의 외조부. 원흥진부사 낭장 김해부를 지냈다.<1300년 김방경묘지명> /신호위 정용낭장을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1300년대 광산김씨 김련-김진 호구단자> *김방경은 어머니쪽에 문벌적 배경이 없었다. 조부 김민성이 하급 관료(장야서승 겸 직사관)로서 문벌의 며느리를 맞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금의(琴儀, 1153∼1230) : 김방경의 아버지 김효인의 좌주(스승). 고려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초명은 극의(克儀), 자는 절지(節之). 삼한공신(三韓功臣) 용식(容式)의 후예이다. 여러 번 지공거가 되어 명사(名士)가 많이 나왔으니, 세상에서는 이르기를 ‘금학사옥순문생(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 문장에도 뛰어나 《한림별곡 翰林別曲》에는 금학사(琴學士)로 되어 있다. 시호는 영렬(英烈)이다.

희종 4년(1208년) 윤4월 참지정사 이계장(李桂長)이 지공거, 우부승선 금의(琴儀)가 동지공거로 진사를 선발하였다. 황보관(皇甫瓘) 등 33인, 명경과 6인, 은사 2인이 급제하였는데,<고려사> 이때 김방경의 아버지 김효인도 황보관과 동방급제하였다.<방목열기> 김효인은 영열공(英烈公) 금의(琴儀)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세상에서 칭하기를 “금학사옥순문생(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족보> 



김지경(김지경) : 김방경의 동생. 밀직부사 동경유수 역임. 지경의 아들 성은 한림학사 문하시랑을, 성의 아들 영유는 좌정승 계림군을, 영수는 중서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김현경(김현경) : 김방경의 동생. 좌정승 忠順公 역임. 현경의 아들 준은 첨의찬성사를 (배는 찬성사 왕창의 따님), 준의 아들 영성은 정당문학 합문지후를, 영성의 아들 격은 공조전서를 역임  (배는 야은 길재의 따님) /준의 아들 영규는 문과급제, 전서 수성백을 지내고 시호 文惠. 역성최씨하여 수성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준의 아들 영기는 대인 도의사를 지내고, 영기의 아들 약은 사정을, 약의 아들 士文은 평의시중랑을 지냈다.



강분(강분) : 김방경의 매부. 박주 수령 역임. 1269년 당시에 최탄(崔坦), 한신(韓愼)이 반란을 일으켜 여러 고을의 수령들을 죽였으나 오직 박주(博州)의 장관인 강분과 연주(延州)의 장관인 권천(權闡) 두 사람만은 예의에 맞게 대우하면서 “김공(김방경)의 덕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강분, 권천 두 사람이 김방경의 매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권천(권천) : 김방경의 매부. 연주 수령 역임.  1269년 당시에 최탄(崔坦), 한신(韓愼)이 반란을 일으켜 여러 고을의 수령들을 죽였으나 오직 박주(博州)의 장관인 강분과 연주(延州)의 장관인 권천(權闡) 두 사람만은 예의에 맞게 대우하면서 “김공(김방경)의 덕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강분, 권천 두 사람이 김방경의 매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최문본(崔文本, 1233-1276) : 김방경의 매부. 최온의 아들. 최문본은 문음으로 산정도감으로 임명되었다가 견룡행수로 임명되고 벼슬이 여러번 올라 친종장군으로 되었으며 충렬왕 초년에 승선으로 임명되었다. 충렬왕 2년(1276년)에 밀직부사 판도판서 벼슬에 있다가 죽으니 나이 44세 이었고 아들은 없었다. 최문본은 몸집이 크고 성질이 점잖으며 무게가 있고 행동이 구차하지 않아서 대신의 체통이 있었다. 일찍이 중국 사신이 와서 그를 보고 어떤 사람에게 묻기를 “귀국에 이런 인물이 몇 사람이나 있는가?” 라고 하였다.

*최유청---<최증,최후,최인,최당>,최선,<최양,승려2>

---<최종원,최종준>,최종자,<최종번>---최온---최문본+女(부 김효인),<최문립>



영가군부인 김씨 : 김효인의 딸, 김방경의 여동생. 최문본의 처. 1990년대에 <1302년 아미타불 복장유물 영가군부인 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장소 미상), ---김민성 / 김효인 / 송씨부인 / 송기 / 최문본 / 상락공김씨 / 박씨부인 / 최온 / 전씨부인---이 보인다.



테무진(성길사한, 칭기즈칸) : 1206년 테무진(칭기즈칸)은 몽고족의 여러 부족을 통일한 다음, 그뒤 중국 북방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정복하였으며, 1227년 끝까지 복속을 거부하던 탕구트인들의 나라 서하를 소멸시키고 1227년 사망하였다. 2대 우구데이 칸---3대 구육 칸---4대 뭉케 칸---5대 쿠빌라이 칸---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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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일년에 한번은 우리 가문의 중시조이신 충렬공 할아버지 기록을 정리하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해 &lt;충렬공 일대기&gt;를 거쳐, 올해는 &lt;충렬공 연보&gt;와 &lt;충렬공 관련 인물록&gt;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아직 정확히 고증되지 않은 내용도 많을 것이고, 잘못된 내용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교정 보완 보충해 나갈 계획입니다. 연재가 끝나고 보완을 완료하기 전까지는 다른 자료로의 인용을 금합니다. 많은 지적과 보완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2005년 가을을 맞이하면서 한동안 충렬공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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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항용 선생님!
보내주신 책자가 방금 배달되어 왔습니다.(8월 24일 오후2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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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잘 도착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새로운 방향의 문중사 정리에의 도전, 축하드립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열심히 새로운 창조를 해나가시는 님의 열정에 감복했습니다.
충렬공 연보는 현재 본 홈(김방경란)에 2가지가 있습니다. 약간은 상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lt;충렬공 관련 인물록&gt;은 기발한 착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