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3) 시조 태사공 윤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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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4-02 00:40 조회3,309회 댓글0건본문
나의 외가 파평윤씨(3)
시조 태사공 윤신달
파평윤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태사공 윤신달이시다.
윤신달장군의 묘는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에 있는데
그 앞벌판를 관평뜰이라고 하는데 연유는 다음과 같다.
관평(管坪)=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관평
남북으로 길게 뻗친 봉계숲의 서편에 위치하며,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 태사의 묘와
재실(齋室) 및 봉강재·파평윤씨시조윤신달비가 있다. 고려말 경주부윤(府尹)으로 있던 태사의
후손이 이곳에 관청을 설치하고 분실된 태사의 묘 를 찾았다 하여 관평(官坪)이라 불렀으며,
한편 물대기 좋은 들이라하여 관평(灌坪)이라고도 한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 장군은 고려 문종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진성여왕 7년(893년)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도는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 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체속에 누워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의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전쟁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
그래서 파평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주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시조의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하고 있다.
▣ 김항용 -
▣ 김은회 -
▣ 김윤만 -
시조 태사공 윤신달
파평윤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태사공 윤신달이시다.
윤신달장군의 묘는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에 있는데
그 앞벌판를 관평뜰이라고 하는데 연유는 다음과 같다.
관평(管坪)=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관평
남북으로 길게 뻗친 봉계숲의 서편에 위치하며,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 태사의 묘와
재실(齋室) 및 봉강재·파평윤씨시조윤신달비가 있다. 고려말 경주부윤(府尹)으로 있던 태사의
후손이 이곳에 관청을 설치하고 분실된 태사의 묘 를 찾았다 하여 관평(官坪)이라 불렀으며,
한편 물대기 좋은 들이라하여 관평(灌坪)이라고도 한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 장군은 고려 문종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진성여왕 7년(893년)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날 이 용연에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도는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 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체속에 누워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의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온다.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전쟁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이번에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
그래서 파평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주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시조의 묘는 경북 영일군 기계면 봉계동에 있다.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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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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