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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공(김공망)배위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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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9-08 14:57 조회1,98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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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공(김공망)배위 본관


목사공(김공망) 선조님의 배위이신 이씨 할머님의 본향은?


목사공(김공망)의 배위이신 이씨 할머님의 본관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한  전의이씨 이왕섭님의  글을 읽고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며, 이 기회에 오류에 대해 점검해볼 기회를 갖도 해 주신데 대해 감사에 말씀을 드리며  분명한 해답이 되어야겠기에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안동김씨족보의 기록부터 살펴보면


기미보(1739)

配 慶州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경진대동보(1880년, 고종17년 간) 기록

配 淑人全義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子=金淳, 金 水+伊(현감), 金 水+무(사평),金浚(만호),녀 趙 金+舌



임인보(1902)

配淑人全義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舊譜云慶州李氏今考慶李譜無全李譜有之改正



정묘안렴사공파보(1927년)

配 淑人全義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을해보(1935년)

配 淑人慶州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안동김씨대동보(기미보 1979년 간행)

配 淑人 慶州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안렴사공파보(1988년)

慶州李氏 父 主簿 復亨 祖 縣監 溥, 曾祖 直長 長孝 外祖 禮判 文戴公 昌寧 成俔


+****


기미보(1739)에 경주이씨라 기록된 것을

1880년경진보에는 전의이씨로 고쳐졌으며

1902년 임인보에는 전의이씨로 기록하면서 그 사유를 기록한 것이 보이며

1927년 을해보에도 전의이씨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1935년을해보에는 다시 경주이씨로 기록되어

그후 1979년기미대동보에도 경주이씨,

1988년안렴사공파보에도 경주이씨로 기록되고 있다.

아마도 을해보를 간행하면서 저본을 기미보(1739년)를 사용하고 그후

이어저 왔으리라 짐작된다.



전의이씨대동보(1979년 발행)-본인 소장-에서 살펴보면


始祖 李棹-康-秀英-文景-允寬-順-仟-子蒝-彦沖-光翊(밀직부사)-思義(全城君)配 文化柳氏 父 代言 摠-儁(판사재감사)배;安東金氏 父 舍人 齊顔. 祖 上洛君 昴, 曾祖 議政 承澤-1.長潑 2.長得3.長孝

長孝(직장)-1.溥(현감)2潔(현감)

溥-1.복기.2복진(무과).3.復亨

復亨=主簿 配 昌寧成氏 父 大提學 俔

1녀 申瀣=고령인 군수

2녀 金公望=安東人 文科 牧使 父 郡守 城 子=金淳, 金 水+伊(현감), 金 水+莁(사평),金浚(만호),녀 趙 金+舌


이왕섭씨가 제공한 문화유씨 족보에 의하면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에서의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과 그의 사위 군수(郡守) 신해(申瀣)와 목사(牧使) 김공망(金公望)]

류총(柳總)→여서(女壻) 전성군(全城君) 이사의(李思義)→자(子) 판사(判事) 이준(李儁)→자(子) 직장(直長) 이장효(李長孝)→자(子) 현감(縣監) 이부(李溥) 室司直辛裕女,檢漢城淸州楊天祿外孫女→자(子) 주부(主簿) 이복형(李復亨) 室昌寧成氏判書成俔女→여서(女壻) 신해(申瀣) 郡守,高靈人,牧使申從沃子,領議政申叔舟曾孫/여서(女壻) 김공망(金公望) 牧使,安東人,部將金城子,縣監金宗孫孫


 



위에서 살펴본대로 할머님의 본관은 전의이씨로 고쳐진 기록이 명확하고

전의이씨족보에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전의이씨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왜 경주이씨라고 잘못 기록되기도 했는가를 살펴보면

목사공의 비갈이 오래되어 할머님의 본관이 명확히 나타나지 않으니

비갈을 지은 송인선생이 지은 묘갈문을 그의 문집인 이암유고에서 찾아보고 경주인이라고

되어 있기에 혼동된 듯 하다.

그러면 이암유고에는 왜 그렇게 쓰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암유집은  초간본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초간본에도 경주이씨라고 오각되었을 수도 있음)후에 재간 삼간하는 중에 잘못 판각되어 그러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뿐이다.

전의이씨대동보를 살펴보다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목사공(김공망)의 장인 이복형의 증조부 李儁의 배위가 안동김씨 김제안의 따님임을 확인 할 수 있엇다. 

김제안은 문온공파파조 김구용의 동생이며 그 후손이 분적하여 사천김씨를 이루고 있다.

 

다시한번 이왕섭님께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이왕섭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왕섭
작성일

  제가 이전에 잠깐 언급한 전의이씨(全義李氏)에 시집오신 안동김씨(安東金氏) 할머니들 (1) 에서도 李儁의 배위가 안동김씨 김제안의 따님임을 기록하였습니다.
전교령(典校令) 김제안[金齊顔:?∼1368(공민왕 17)]의 사위이며 정순대부 판예의시사(正順大夫 判禮儀寺事)를 지내고 전성군(全城君)에 봉군된 이사의(李思義)의 아들인, 이준(李儁)은1377년(우왕 3) 宣光七年 丁巳 十韻詩에 2등 7인으로 급제하여 정순대부 판예의시사(正順大夫 判禮儀寺事)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이준(李儁)의 후손으로 현대인물로는 아래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원형(李沅衡) 제5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장관급:2001.3.27∼2004.3.26), 前 11·14대 국회의원 역임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 원불교(圓佛敎) 종법사(宗法師) - 원불교 최고지도자(천주교의 김수환추기경에 해당함)
●이혜정(李慧定) 원불교 교정원장 - 원불교 사상 첫 여성 교정원장
●이석웅 (李錫雄)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이삼윤(李三倫) 원광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