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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찾은 선조님 시문(9) 김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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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9-09 16:35 조회1,76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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築隱集에는 永旽(이익제), 金永肫 과 관련된 시가 4편이나 있습니다.

贈李益齊 永旽 (증이익제-영돈) 은 호가 익제인 이영돈에게 드리는 시인지

아니면 이익제에게 드리는 영돈의 시 라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金永肫의 肫은 자전에서 광대뼈순 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旽자를 잘 못 해서 肫으로 쓴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아래에 시 전문과 관련자료를 일부 옮기니 여러분의 고견을 기다립니다.



*1)贈李益齊 永旽 (증이익제-영돈)  築隱 金方礪


秋去秋來頃刻秋 (추거추래경각추)

人生此世死生頭 (인생차세사생두)

詩能覓句無餘蓄 (시능멱구무여축)  覓=구할멱, 찾을멱  蓄=쌓을축

酒亦行盃解半愁 (주역행배해반수)

道路眼多南嶺峻 (도로안다남령준)

衣冠船上北江流 (의관선상북강류)

殘年闢戶西邊市 (잔년벽호서변시)

耕鑿玆鄕力役休 (경착자향력역휴)  鑿=뚫을착, 끌착 생각착






(2)贈築隱(증축은)- 金永肫(김영순)



浦上成村近水邊 (포상성촌근수변)

東南來障各人天 (동남래장각인천)

止隅禽鳥綿無語 (기우금주면무어)

識字魚龍[ ]욕안 (식자어룡[ ]욕안) [ ]=虫변+山+死

錦賈四時長醉客 (금고사시장취객)

農夫八月變神仙 (농부팔월변신선)

北隣緩頻能欺我 (북린완빈능기아)

旅夢院掌一覺先 (여몽완장일각선)


축은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   -1348

김영순  ?






(3)代金永肫贈築隱 (대김영순증축은) -朴尙衷(박상충)




杜村日事不兒呼 (두촌일사불아호)

可笑平生老蠢愚 (가소평생로준우)  蠢=꿈틀거릴준, 어리석을준

世上少年皆罪面 (세상소년개죄면)

人間白髮摠鰥夫 (인간백발총환부)  摠=모두총  鰥=환어환, 홀아비환

酒情疏豁喉門咽 (주정소활후문인)   疏=토일소, 豁=열릴활

飯味辛酸腹府麤 (반미신산복부추)    麤=거칠추, 현미추

午枕聽鷄閑送日 (오침청계한송일)

豊年樂事保微躬 (풍년락사보미궁)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  -1348

김영순  ?

박상충 1332-1375


(4)代金永肫贈築隱-尹陟


好詩好酒老塵埃 (호시호주노진애)

目霧看花耳鳴雷 (목무간화이명뢰)

雖然一念深山去 (수연일념심산거)

樂只平生寢戶開 (낙지평생침호개)

高風商雒歌芝草 (고풍상락가지초)  雒=수리부엉이락, 강이름락

淸水嚴陵捲釣臺 (청수엄릉권조대)

巖月江烟空挽我 (암월강연공만아)

何時筇屐白頭回 (하시공극백두회)  屐=나막신극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  -1348

김영순   ?

윤  척   ?  -1384



(1)贈 李益齊  永旽 - 축은 김방려

익제 이제현 1287-1367

김영돈       ? -1384

축은 김방려 1324-1423

(2)贈築隱- 金永肫

축은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   -1348

(3)代金永肫贈築隱 (대김영순증축은) -朴尙衷(박상충)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  -1348

박상충 1332-1375

(4)代金永肫贈築隱-尹陟

김방려 1324-1423

김영돈   ?  -1348

윤  척   ?  -1384





김방려  1324-1423


김영돈(金永旽)

?∼1348(충목왕 4).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방경(方慶)이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강릉부녹사(江陵府錄事)가 되었으며, 1340년(충혜왕 복위 1)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공수(李公遂) 등을 시취하였다. 조적(曺頔)의 난 때 시종한 공로로 1342년에

일등공신이 되어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346년(충목왕 2)에 찬성사(贊成事)로

원나라에 가서 의복·음식 등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였다.

이듬해 왕후(王煦)와 함께 귀국하여 원나라에서 왕의 실덕을 묻자 소인들의 장난이라 변명하니

이를 정리하라는 원나라의 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정치도감을 설치하고 판사가 되어 폐정을 시정하던 도중, 불법행위를 하던 기삼만(奇三萬)을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어 죽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일로 원나라로부터는 치하를 받았으나,

정동행성이문소(征東行省理問所)의 심한 반발에 부닥쳐 구금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의 지지로 곧 석방되었다.


 

 

 

 

김영순(金永肫)  ?


李益齊-永旽   ?


이익제(이제현)

이제현(李齊賢)

1287(충렬왕 13)∼1367(공민왕 16). 고려 후기의 학자·정치가.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역10翁).



박상충

박상충(朴尙衷)

1332(충숙왕 복위 1)∼1375(우왕 1).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부(誠夫).

밀직부사 수(秀)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이때 고례(古禮)를 참작하여 순서대로 조목을 지어 사전(祀典)을 썼다.

1367년(공민왕 16)성균관생원의 수를 늘려 100인으로 하고 오경사서재(五經四書齋)를 마련하여 생원을

교수하게 하였는데, 이때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박의중(朴宜中)·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경술(經術)의 사(士)로 교관을 겸하게 되었다.

뒤에 전교령(典校令)이 되었는데, 이때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3년복을 입으려 하였으나 사대부들이

부모상에 100일만 복을 입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대신 3년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

1375년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책에 대하여 임박(林樸)·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고

친명책을 주장하였다. 뒤이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어 정몽주 등과 함께 친명책을 쓸 것과

북원(北元)의 사신과 그 수행원을 포박하여 명나라로 보낼 것을 상서하였다.

그해 간관 이첨(李詹)·전백영(全伯英) 등이 상소하여 북원과 통하는 것을 반대하고 친원파 이인임과

지윤(池奫)의 주살을 주장한 것에 연좌되어 친명파인 전녹생(田祿生)·정몽주·김구용·이숭인·염흥방(廉興邦)

등과 함께 귀양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성품이 침착하여 말이 적고 강개하여 큰 뜻이 있었으며, 경사에 해박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성명학(星命學)에도 통달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부지런하고 삼가하며 사람이 불의로 부귀함을 보면

멸시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윤척(尹陟)

?∼1384(우왕 10). 고려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안숙(安淑)의 아들이다.

1350년(충정왕 2)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었고, 1363년(공민왕 12) 군부판서(軍簿判書)로서 앞서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경성(京城:開城)을 수복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다. 우왕 때 영평군(鈴平君)에

봉해졌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아무래도 일괄하여 제주도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가 끝나면 말씀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