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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 수진리 수진산의 안렴사공파 문광문중 묘역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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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9-12 13:47 조회1,74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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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렴사공파 괴산읍 수진리 문광문중 묘역 조사>

1. 조사 일시  :  1차-2004. 8. 5.    2차-2005. 8. 27.    3차-2005. 9. 6.

2. 조사자  김항용

3. 대담자 : 金善會(충북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 거주. 문광파문중회 회장, 괴산종친회 부회장. 1927년생, 79세). (043)833-3679). 일찍이 30대부터 문중 종사에 임함. 장자(태형)는 현재(2005. 6) 괴산고등학교 교장이고, 차자는 괴산군 문광면사무소의 복지계장이며, 삼자는 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생질은 현 서울대 사범대학장이다.

4. 대담일  : 2005. 9. 6(전화상으로)

5. 대담내용 종합  

 가. 괴산읍 수진리 수진산 묘역에 대하여

   1)최초 묘역이 조성된 시기 : 부사공(휘 계안)의 묘소를 처음 조성한 때인 1589년(몰년)으로 추정

   2)조성 경위

     가)최초 부사공(휘 繼安, 1502-1589. 수88세)의 묘소가 이곳에 모셔지면서부터 문광파 문중 묘역으로 발전하였는데 본래 이곳에는 부사공의 장인인 의성김씨(통훈대부 행영해도호부 김공지묘, 숙인 의령남씨지묘)의 묘소가 먼저 모셔져 있었다. 그런 연유로 부사공이 이곳에 묘소(장인 묘소 위에)를 쓰게 되었던 것이며, 의성김씨는 후사가 없어 지금까지 부사공 후손들이 외손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제학공파 능촌종중에서 벌초하고 있는 의성김씨 金養中의 묘는 상기의 의성김씨 영해도호부사, 안동김씨 제학공파 참판공(휘 彦默)의 배위이신 의성김씨 할머니와 서로 같은 의성김씨이다.

     나)그 후 부사공(휘 계안)의 묘소 맨 위에 장사랑공(將仕郞公, 종9품-휘 元吉. 1529-1594, 수76세)의 묘소와 그 아래에 아무 표시 없는 묘소1, 묘비 없는 쌍분 등 후손들의 묘소가 있는데 결국 모두 역장을 한 셈이 되었다.

     다)원래 사직공(휘 공걸)은 29세(1482-1510)의 나이로 일찍 별세하여 충북 오창에 묘소를 썼다. 이때 아우인 공예(公藝-승지공)가 괴산의 원이 되어 임지로 올 때 아버지를 잃어 갈 곳이 없는 나이 어린 조카인 부사공(계안, 당시 9세)을 함께 괴산으로 데리고 와서 키우고 가르쳤다. 이로 인하여 부사공(계안)의 손들이 괴산 문광면 신기리, 사리면 이곡리, 청원군 북일면 덕암리 등지에 세거하게 된 것이다.

      라)사직공(휘 공걸)의 묘소는 본래 오창에 있었는데 1985년 경 후손들이 이곳 괴산읍 수진리로 이장을 하였다. 그런데 원래 있던 사직공의 아들 부사공(휘 계안)의 묘소 위로 이장하려하니 너무 자리가 좁아 도저히 묘를 쓸 수가 없자 아들인 부사공(휘 계안)과 사돈인 의성김씨 사이로 이장하게 되었다.

    3)가계 : 안렴사공 → 5子 소윤공(휘 약) → 子 지주사공(휘 우주) → 1子 판교공(휘 환) → 子 참의공(휘 종손) → 2子 현감공(휘 지) → 1子 사직공(휘 공걸) → 1子 부사공(휘 계안) → 1子 부사공(휘 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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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전경(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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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전경(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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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공(휘 공걸)의 묘소. 위에 있는 것이 사직공의 子이신 부사공(휘 계연)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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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맨 위에 있는 종사랑(휘 원길)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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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최초의 묘소인 부사공(휘 계연)의 장인인 의성김씨(영해도호부사) 묘소. 외손봉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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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맨 아래에 있는 의성김씨 金養中 묘소>

    

 나. 괴산종친회에 대하여

  1)괴산 종친회는 1980년 경 괴산읍에 있는 일부 종친들만의 소모임으로 시작하였다가 점점 확대 되어 괴산과 증평 전지역의 종친회로 발전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1999년 증평에 살고 있던 제학공파 참봉공(휘 우갑)의 후손인 형식씨가 회장이 되었는데 그는 당시 인삼 전문재배인이었는데 전국에서 제1의 경작자였고 전국 인삼조합회의 중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여러 면에서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이에 여러 종친들이 회장으로 추대하여 위촉하였다. 

  2)형식회장은 전심으로 종친회를 이끌어 갔으며 아무 재정이 없는 종친회를 위하여 2년간에 걸쳐 년 1천만원씩 합 2천만원을 성금으로 내놓는 등 종친회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년 만에 중풍이 들어 그만 회장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3)그 뒤를 이어 회장에 추대된 태진씨(제학공파, 참봉공 휘 우갑의 손, 홍성산업 회장)는 2001-2년에 걸쳐 약 3천만원을 종친회에 기부하여 종친회는 더욱 활성화 되었다.

  4)2003년, 회장에 학응(제학공파 구암공 휘 충갑 손)씨가 추대되었고, 그 이후 2005년에도 역시 학응씨가 재추대되어 현재 연임하고 있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아주 보기 좋은 소식입니다. 옛 이야기를 듣는 듯 합니다.
---이때 아우인 공언(公彦-參奉公)이 괴산의 원이 되어 임지로 올 때---중에
' 공언(公彦-參奉公)'은 '공예(公藝-승지공)'으로 정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를 아래에 붙여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