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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민사평 공) 묘소는 장단군 판문점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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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5-09-12 14:58 조회1,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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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평묘지명(閔思平墓誌銘)> 중에서

齊閔昆季主喪盡禮是庚申葬于大德山感應寺之南麓

제민 형제가 상례를 주관하며 례를 극진히 하여, 이 달 경신일에 대덕산(大德山) 감응사(感應寺) 남록(南麓)에 장사지냈다.


<최서묘지명(崔瑞墓誌銘)> 중에서

大德九年乙巳二月十日丙戌公卒二十八日葬于松林縣地大德山南麓禮也

대덕(大德) 9년 을사년(충렬 31, 1305) 2월 10일 병술일에 공이 세상을 떠났다. 28일에 송림현(松林縣) 땅의 대덕산(大德山) 남쪽 기슭에 장례지내니, 예(禮)에 따른 것이다. 

 

<최서처박씨묘지명(崔瑞妻朴氏墓誌名)>

長女適通憲大夫密直副使上護軍金倫都僉議叅理集賢殿大學士上將軍文愼公賆之胄嗣也

- 중략 -

是年八月十八日葬于大德山之西麓

장녀는 통헌대부 밀직부사 상호군(通憲大夫 密直副使 上護軍) 김륜(金倫)에게 시집갔는데, 도첨의참리 집현전대학사 상장군 문신공(都僉議叅理 集賢殿大學士 上將軍 文愼公) 변(賆)의 맏아들이다.

- 중략 -

이 해 8월 18일에 대덕산(大德山) 서쪽 기슭에 장례지냈다.


<김륜묘지명(金倫墓誌銘)> 중에서

左右扶起具衣冠趺坐而逝實至正八年戊子二月二日也訃聞輟朝三日官庀葬事贈諡貞烈公是月二十四日窆于大德山感應寺之巽岡袝文愼公兆域遵理命也

좌우로 하여금 부축하여 일으키게 하고서 의관을 갖춘 다음 단정히 앉아 서거하였다. 지정(至正) 8년 무자년(1348, 충목4) 2월 2일이었다. 부음을 왕에게 아뢰자 3일간 조회(朝會)를 철폐하고 관에서 장사를 도왔다. 정렬공(貞烈公)으로 추증되었다. 2월 24일에 대덕산(大德山) 감응사(感應寺) 동남쪽 언덕에 하관하여 문신공(文愼公)의 무덤 곁에 부장하였다. 유언에 따른 것이다.


<김륜처최씨묘지명(金倫妻崔氏墓誌銘)> 중에서

至正丁亥六月丁酉以疾殂享年六十九贈卞韓國大夫人用七月己未□于大德山感應寺之東附先舅姑禮也

지정(至正) 정해년(충목왕 3, 1347) 6월 정유일에 병으로 돌아가시니, 향년 69세이다. 변한국대부인으로 추증(追贈)하고, 7월 기미일에 대덕산(大德山) 감응사(感應寺) 동쪽의 시부모 묘소 곁에 장례지내니, 예(禮)에 따른 것이다.


<송림현(松林縣)>

개성직할시 판문군 일대에 있던 옛 고을.

본래 백제(고구려라고도 함)의 약지두치현(若只頭恥縣)인데,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여웅현(如熊縣)으로 개칭해 송악군(松岳郡 : 개성)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송림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광종 때 불일사라는 절을 창건하게 되자 현의 중심지를 동북쪽으로 이전했다.

1018년(현종 9)에 장단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후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8년(태종 18) 임강현(臨江縣)에 병합되었다가 후에 장단군의 속현으로 합속되어, 장단군의 송남면· 송서면으로 편제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2개면이 진서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45년 이후 북한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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