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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고 뉴 에게주다 서문과 아울러 (贈 金子固 紐幷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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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작성일05-09-13 21:15 조회1,420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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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溪君  성광유고(醒狂遺稿)에서


왔는데 생각하니 취중에 실례가 제법 많았던 듯 뒤쫓아 한이 됨이 매우 깊습니다. 오직 매화 한 가지가 손에 있어 수일 동안 즐겨 보는데 향기가 코에 스며듭니다. 군자의 덕을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어제 취한 김에 가서 뵙고 도도한 언론을 한없이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몹시 취해서 돌아와 절구 세 수를 지어서 보내오니 한번 웃으심을 돕습니다.


*차공이 미친 짓이 평생 괴로웠다 / 生平若被次狂

세태와 인정을 맛보는데 / 世態人情也備0                                             

한번 용문에 들어가서 법어 들으니 / 一人龍門0法語

즐거운 마음이 희황 때에 이르런가 / 0然心醒到0皇


*청허 몇째 하늘을 꿈에 올라던가 / 夢上淸虛第幾天

소방의 수(數)도 없이 봄에 앞서 곱다 /  素芳無數0春姸

취한 김에 청광한 형태 참지 못해서 / 醉來不0淸狂能     

남쪽가지 꺽고서 기뻐 어쩔 줄 몰라라 / 折得南枝喜欲


*봄이 돌아왔다지만 돌아온 건 안보이고 / 楣春廻未見廻

성 가득한 꽃과 풀은 다만 마른 뿌리뿐 / 滿城花0祗枯0

동군도 이런 데에 공도 없었음인가 / 東君也是無公道 

홀로 남쪽가지를 향해 너무 일찍 피었네 / 獨向南枝太早開開   

 

 

이심원(李深源)
1454(단종 2)∼1504(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연(伯淵), 호는 성광(醒狂)·묵재(默齋)·태평진일(太平眞逸). 효령대군 보(補)의 증손으로, 평성군(枰城君) 위(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로 부사 신보(申保)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며, 1478년(성종 9) 주계부정(朱溪副正)에 제수되어 성종의 신임을 받았으나, 임사홍(任士洪)의 무고로 장단·이천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487년 종친과시강경사(宗親科試講經史)에서 장원급제하여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제수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그뒤 조광조(趙光祖)·정광필(鄭光弼)을 비롯한 유림들의 계(啓)에 의하여 1517년(중종 12)에 신원(伸寃)되었으며, 또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이 세워지고, 흥록대부주계군(興祿大夫朱溪君)으로 증직되었다.
충경사(忠景祠)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성광유고》가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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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안렴사공파의 김공망 선조님이 朱溪君 이심원(李深源)문하에서 수학하셨죠.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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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드디어 용주 종친님께서 귀한 자료를 올려 주셨네요.
게시판 사용법 성공 축하드립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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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새로운 귀한 기록을 보았습니다.
안렴사공파 김공량(1472-1544), 김공망(1482-1528)의 스승 이심원(1454-1504).....
이심원은 김종직(1431-1492)의 문인으로 안정공파 김뉴(1420-1490이조참판-?몰) 선조님과 교유가 있었군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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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축하! 축하드립니다.
검색, 복사, 게시판에 게시하는 방법을 성공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봇물 터지는 자료들을 기대하렵니다.
아울러, <우암문집> 출판기념회 동영상, 컴퓨터 인식 동영상으로 인코딩하는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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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귀한 서문~올려 주신글!  괄목상대의 발전 축하드립니다.
포항의 재원대부님이 생각납니다...... 충렬공의 후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