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 문광면의 김일 효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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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9-29 13:09 조회1,626회 댓글0건본문
상기 김만협의 효자각 내에 함께 모셔져 있는 김일의 효자 정려 현판입니다.
<효자각 사진> (상기 김만협과 효자각 내에 함께 있음)
김일(金溢) 1719∼ ?
字는 益三, 본관은 安東 金萬協의 5세손이다. 효자 가문에 태어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늘 부모곁에서 부모님을 지켰고 조석으로는 잠자리를 살피어 문안드렸으며, 부모가 병환이 있으면 지성으로 약을 달여드렸다.
나이 13세에 모친이 오랜 병환으로 신음하며 백약이 효험이 없자 마지막으로 산제를 베풀어 3개월 동안 하루같이 험한 산길을 왕래하며 산신에게 기도를 드렸더니 지성이 감천하여 모친의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가세가 청빈하여 어머니 봉양이 어려워서 마을의 제사집을 다니며 음식을 얻어다가 공양하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수일간 머무르게 되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병환이 들어 자기를 부르고 있는 꿈을 꾸어 심상치 않아 과거를 포기하고 황급히 돌아와 보니 과연 노모가 병석에 누어 있었다. 지성으로 간호하여 치유케 하고, 천수를 다하여 죽으니 10리 밖에 장사하고 궤연에서 잠을 자며 풍우한서를 무릅쓰고 3년동안을 하루같이 시묘하였다. 가선대부 통덕부사이며 묘는 신기리 가정동에 있다. <괴산군지, 1990>
■ 석달동안 산제 올려 노모 병을 고친 효자 김일(金溢)
자는 益三, 본은 안동김씨 가문의 조상인 효자 金萬協의 5대손으로 세습적으로 효도에 성실한 가문에서 1719년(숙종45)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곁을 지키어 아침 저녁으로 잠자리를 살펴 문안드리며 부모가 병환이 있으면 걱정이 되어 나의 몸을 사치할 수 있겠느냐 하며 머리를 빗는 일도 없이 스스로 약을 다려 드렸다고 한다.
모친이 13년이란 오랜 병환으로 신음하는데 어떤 약이든간 써보지 아니한 약이 없었다. 백약이 무효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산제를 지내게 되는데 목욕을 깨끗이 하고 밤중에 10리 길이나 되는 험한 고개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눈바람을 맞아가며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범을 두려워하지 않고 험한 고개를 넘어가서 3개월동안 기도를 드렸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모친의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가세는 청빈하여 외로운 편모에게 봉양할 기름진 음식을 대접할 형편이 못되어 동네에 제사집이 있으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찬잔술과 한조각의 음식을 얻어다가 공양했다고 하며 허리에는 항상 음식을 얻어담을 주머니를 차고 다니었으며 옷도 깨끗이 입지 못하고 옷소매는 기름때에 절어 있었다고 한다.
김일은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 수일간 머무르게 되어 내일이면 과거를 보러 시험장에 들어가게 되는 날인데 그날 아침에 일어나 고향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차림을 하는데 같이 온 친구들이 깜짝놀라 물어보니 효자 김일은 대답하기를
"어제밤 꿈에 늙으신 어머니가 나를 부르시니 반드시 병환으로 편찮으신 모양이다. 내 어찌 과거를 보기 위하여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겠느냐" 하고 황급히 돌아와 보니 과연 늙은 모친이 병들어 누워 계셨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노모가 살만큼 살아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나니 10리밖에 묘를 쓰고 밤에는 궤연(망인의 신주를 모신 곳) 옆에서 자고 낮에는 무덤앞에 주과를 진설해 놓고 곡하기를 복상 3년동안을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괴산군 내고장전통가꾸기,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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