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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제학공(휘 塡) 묘소 발굴조사 비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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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김윤식 작성일05-10-12 22:32 조회1,609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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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제학공(휘 塡) 묘소 발굴조사 비망기

 

예손 재구, 방손 발용, 윤식은 삼가 비디오와 사진을 촬영하고 기록합니다.

 

■행사 개요

  ◇일시 :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장소 :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귀백리 백양산
  ◇주관 : 군사공파종회
  ◇참석자(무순, 존칭 생략)
      □군사공파종회 - 수인(회장), 재석(전 회장), 창회(부회장), 준회(총무),
 홍수(광탄문중 회장), 중묵(칠정문중 회장),
 재화(칠정문중 이사), 용회(칠정문중 총무), 재구, 발용, 태영
      □판교공문중 - 두식, 용주
      □안사연 - 영윤, 상석, 은회, 태우, 항용, 윤식

 

■직제학공 계대
충렬공(휘 方慶) → 1子 선(愃) → 2子 승용(承用) → 1子 후(厚) →
3子 칠양(七陽) → 1子 土舌, 2子 진(塡), 3子 돈(墩)

■직제학공에 대한 족보 기록
   □경진보(1580년 대동보)  누락
   □기미보(1739년 영조 15년, 대동보)  呂州○墓
   □을유보(1825년 순조 25년, 대동보)  麗州白羊洞
   □을해보(1935년 대동보)  麗州白羊洞有碣
   □기미보(1979년 대동보)  麗州白羊洞失傳
   □계유보(1993년 군사공파보)  麗州白羊洞失傳

■계유보(군사공파보) 세부 기록
직제학공 휘 진(塡)
1414年 永樂 甲午中成均進仕 同年文科 歷監察 禮曹正郞 禮賓少尹 嘉善大夫 內資寺事 普文閣直提學 墓麗州白羊洞 失傳 設壇行祀
配 貞夫人 光州盧氏 育一男 墓坡州郡坡州邑延豊里 山一番地 寅坐 有表石 時享十月十日

 

■직제학공 소개
1382년(고려 우왕 8년)~1447년(조선 세종 29년)
1414년(조선 태종 14년) 진사시를 거쳐 식년시 3등으로 급제하여 예조좌랑, 예조정랑, 영암부사, 사재감정, 사헌집의, 예문관 직제학을 거쳐 내자판사를 역임하였다.
묘는 여주군 백양동으로 전하나 실전하여, 경기 파주읍 연풍리 산1번지에 설단하였다.

■경과보고
1. 개요
直提學公께서 돌아가신 후 驪州 白羊洞(白羊山)에 모시고 대대손손이 묘소를 지극정성으로 수호하여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근세에 이르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및 산업화를 거치는 사이에 戰亂과 世波에 의해 直提學公의 묘소를 失傳하는 不孝를 범하게 되었다. 이에 뜻있는 종친들께서 대를 이어가며 直提學公의 묘소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와 더불어 在錫 전 회장 등 여러 종친들께서 直提學公의 묘소를 확인하고자 여러 차례 현장을 탐방하는 등 정성을 다하여 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郡事公派宗會는 우리 문중의 大同譜와 派譜, 그리고 대대로 전해진 口傳에 의거해 여주 백양동에서 최근에 直提學公의 묘소로 추정되는 묘를 발굴조사하여 直提學公 묘소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을 대거 수습함으로써 郡事公派宗會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追記
직제학공 묘소에서 출토된 琉璃貫子, 銀製 裝飾品, 관못 등을 재갑 종친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감식한 결과 直提學公의 生沒年代와 一致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특히 銀製 裝飾品은 연대가 고려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銀을 눌러찍은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고위 관직자가 아니면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감식 결과가 나왔다. 또한 貫子(흰색, 갈색, 청색 등 수습된 관자 전체)는 琉璃로 제작된 것으로 여말선초에는 그 자체가 보석에 해당하는 귀한 물건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확인하였다.

2. 세부 경과
   □여주 백양동의 안렴사공파 여주 입향조이신 판교공(휘 丸)의 묘역 상단에 직제학공 묘소로 추정되는 묘가 있어 판교공 후손들이 일가(一家)의 선대 묘소라 하여 오랜 기간 벌초를 하는 등 정성껏 관리해 왔다는 내용이 구전되어 오면서 여주 백양동에 모셨던 제학공(휘 塡)의 묘소일 것이라는 추측과 기대감에 마침내 묘소 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2003년 군사공파 총회에서 제학공 묘소로 추정되는 묘를 발굴조사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몇 분의 종친들이 현지방문을 하여 직제학공의 묘소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돌아온 바 있다.

   □2004년 7월 화산군(휘 澍) 영정 봉안식 및 2005년 국역 우암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태영, 발용이 안렴사공파종회에 협조 요청을 하였다.

   □2005년 9월 10일 안렴사공파 여주종중의 容周 종친으로부터 직제학공의 묘소로 추정되는 장소를 확인하였으니 묘소 확인 날짜를 잡자는 연락을 발용 종친에게 하다.

   □즉시 군사공파 발용 종친이 태영 종친에게 판교공문중의 협조 의사를 전하다. 태영 종친은 파주 군사공파 준회 총무에게 같은 내용을 연락하다.

   □군사공파종회 고문 및 회장단은 직제학공 묘소 발굴조사 준비에 착수하다.

   □2005년 9월 27일(금요일) 은회, 발용, 태영, 항용 종친이 문정동에서 만나 안사연에서 협조할 사항과 행사 진행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고, 행사 준비를 하다.

   □군사공파종회에서는 2005년 10월 2일(일요일)에 발굴조사에 들어가기로 택일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2005년 9월 24일 안렴사공파 용주, 두식(판교공문중 총무), 태영, 발용 등 4인이 사전 준비차 현지를 다녀오다.

   □2005년 10월 2일 백양동 현지에서 직제학공 묘소를 발굴조사하고 관련 유물을 수습함으로써 직제학공 묘소를 확인하다. 아울러 객관적인 확증을 얻기 위해 수습한 유물들의 연대측정 및 상세조사 등을 전문가인 재갑 종친에게 감식을 의뢰하다.

 

■제학공 묘소 확인과정 보고
1. 산신제 및 고유제
   □2005년 10월 2일(일요일) 09:00시 정각, 서울 잠실올림픽경기장 맞은편에서 안사연 등 9명이 여주 백양산으로 출발하다.

   □약 1시간 후 만남의 광장에서 군사공파종회 회장단 및 종인들과 합류하다.

   □11:30분경 백양산 판교공문중 선영에 도착하다.

   □11:40분 분방을 하고, 고유제 준비를 마치다.

   □11:50분 군사공파종회 수인 회장이 행사 취지 및 인사말을 하다.
     이 자리에서 수인 회장은 “오랜 세월 선조님의 묘소를 실전하여 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는데, 오늘 행사로 좋은 결과를 맞이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다. 또한 수인 회장은 판교공문중과 안사연의 협조에 대해 감사말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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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흥천면사무소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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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을 하는 수인 군사공파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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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 년간 직제학공 실전 묘소를 찾아오신 재석 전 회장, 백양산에만 5번째 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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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안내를 하는 태영, 항용 종친

 

  □11:55분 산신제
    ▲헌관 영윤, 축관 항용, 집사 은회. 태우, 집례 항용
    ▲산신제문
 유세차 을유 팔월 신묘삭 이십구일 기미에 유학 김영윤은 토지지신께 삼가 고하옵니다. 안동김공 통훈대부 보문각 직제학공의 묘소가 오래 전부터 실전되어 죄스럽고 가슴 아픈 세월을 지내오다가 금번에 여러 종친들의 고증으로 이곳의 한 묘소를 확인하고자 하오니 신령께서는 후환이 없도록 잘 보살펴 주시옵소서.
 이에 맑은 술과 포과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2005년 10월 2일 충렬공 26대손 항용 謹撰 謹書 謹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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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제를 올리는 일행[앞줄 왼쪽부터 태우, 영윤(헌관), 태영, 뒤줄 왼쪽부터 용회, 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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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판교공 고유제
    ▲초헌관 두식, 아헌관 용주, 종헌관 창회, 축관 항용, 집사 용회.재화, 집례 항용
    ▲고유제문
        유세차 을유 팔월 신묘삭 이십구일 기미에 십구대손 유학 斗植은 삼가 고하옵니다.
        통정대부 승문원 판교이신 19대조 할아버님과 숙부인이신 연안이씨 할머님, 양천허씨 할머님이시여. 오래 전에 이곳 묘소 근처에 직제학공의 묘소가 있었으나 후손들의 불효와 불민으로 온전히 보전치 못하고 실전되어 오다가 이번에 여러 종친들의 고증으로 묘소 한 기를 확인하려 합니다. 이에 엎드려 바라건대 존령께서는 다소 흔들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포과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2005년 10월 2일 충렬공 26대손 항용 謹撰 謹書 謹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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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공 고유제(헌관 두식, 왼쪽 재화, 오른쪽 용회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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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공 고유제(헌관 용주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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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회(군사공파종회 부회장) 종친과 두식 종친(판교공문중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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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석 군사공파종회 전 회장, 태우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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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재구(비디오 촬영), 상석, 은회, 수인(군사공파종회장), 영윤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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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태영, 중묵, 윤식, 항용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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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관 창회 군사공파종회 부회장

 

  □12:30분 발굴조사 묘소 고유제
    ▲초헌관 수인, 아헌관 재석, 종헌관 중묵, 축관 항용, 집사 재화. 재구, 집례 항용

    ▲고유제문
        유세차 을유 팔월 신묘삭 이십구일 기미에 유학 김수인은 존령께 삼가 고하옵니다.
        영령이시여! 저의 이십대조이신 안동김공 통훈대부 보문각 직제학공의 묘소를 오래 전에 이 근처에 모시고 받들어 왔으나 불효와 불민으로 묘소를 온전히 보존치 못하고 실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여러 종친들의 고증으로 존령의 묘소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영령께서는 다소 흔들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포과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2005년 10월 2일 충렬공 26대손 항용 謹撰 謹書 謹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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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제를 올리는 수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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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 광탄문중 회장과 준회 군사공파종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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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관 재석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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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구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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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 고유제를 마치다.

□주변을 정리하고 13:00시부터 13:30분까지 점심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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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묘소 주변 상황

 □13:30분 소형 굴삭기를 이용해 발굴을 시작하다.

 □주변상황
   ▲판교공 묘소 위쪽으로 약 30여 미터 거리에 직제학공 묘소로 추정되는 묘소가 1기가 있다.
   ▲약 20년생 리키다소나무가 봉분 주위에 자라 있다.
   ▲봉분은 거의 다 내려앉아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봉분에서 약 5미터 앞에 문인석 1쌍이 배치돼 있다. 하나는 쓰러져 있으며, 하나는 온전히 서 있다. 문인석은 조선 중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인석이 세워질 당시 묘소를 수호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기는 1길 반 정도로 제법 큰 편이다. 봉분 앞에는 문인석 외에는 상석이나 다른 석물이 없다.
   ▲묘소 위쪽으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묘소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 측면을 세모꼴로 잘 다듬은 돌(약 2m 크기) 1기가 3분의 1쯤 땅에 묻혀 있다. 용도는 추정하지 못하다. 이 석물을 문인석 인근으로 옮기다.


 □14:00시 봉분 앞 리키다소나무 대여섯 그루를 정리해서 봉분 발굴 준비를 완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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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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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5미터 거리에 쓰러져 있는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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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제학공 묘소로 추정되는 묘소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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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작업 중 잠시 담소를 나누는 용주, 태영, 두식 종친(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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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소 발굴을 위해 정리작업을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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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석 전 회장과 항용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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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작업 중인 종친들

 

3. 봉분 발굴
 □1시간 가량 봉분 앞 혼유석 부근을 한 길 깊이로 발굴했으나 지석이나 기타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참석자 모두 긴장하다.
 □14:00분 이후 광중을 발굴하기로 결정하고, 한 길 반 정도로 파내려가다.
 □15:20분경 생흙과 달리 물기를 머금은 곳이 나타나다. 군사공파 종친들이 광중 자리로 내려가 삽과 호미로 조심스럽게 발굴하기 시작하다.
 □15:25분경 광중 자리로 보이는 곳에서 아주 검은 흙이 나타나다.
 □15:30분경 광중 자리로 보이는 곳에서 특이한 형태의 커다란 못이 다수 출토되다. 발굴작업이 활기를 띠다.
 □15:35분경 일단 작업을 멈추고 손으로 유물을 수습하다. 동시에 광중 자리 다섯 군데에서 흙을 한 줌씩 떠서 미리 준비한 비닐봉투에 정성스럽게 모시다.
 □15:40분경 손으로 유물 발굴작업을 계속하다. 대못이 잇달아 출토되다. 이때 갓 장식품인 관자(흰색)가 몇 개 발굴되다. 이 부근에 나무뿌리가 엉켜 있다. 나무뿌리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서 조심스럽게 관자를 더 수습하다. 粧刀와 유사한 형태의 유물이 출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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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중 자리에서 출토된 대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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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중 자리에서 유물을 수습 중인 태영, 용회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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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회, 태영, 재구 종친이 광중 자리로 내려가 대못을 수습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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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군데로 정리한 석물들. 양쪽이 문인석, 가운데가 미확인 석물

 

 ■16:00 유물 수습을 마치다.
  출토물을 정성스럽게 미리 준비한 비닐봉투에 모시다. 대못, 관자, 기타 유물을 수습하다.
   ▲대못 - 30점
   ▲관자 - 백색 13점(콩알 크기), 청색 9점(녹두알 크기), 황갈색 4점(작은 콩알 크기),
 투명한 우윳빛 유리구슬 4점(중앙이 뚫려 있어 관자와 함께 사용된 것으로 추정됨. 大 1점, 極小 3점) , 미상 4점
      ◇追記 - 출토물 정리과정에서 유리구슬에서 극히 작은 유리구슬 3점이 추가로 발견됨. 이 소형 유리구슬은 놀랍게도 모두 중앙이 뚫려 있는 형태임.
      ◇追記 - 미상 4점은 모두 중앙이 뚫려 있으며, 관자와 함께 갓끈 장식품으로 사용된 것임.
   ▲기타 - 2점(은제품 1점, 목재片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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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0분 봉분 주변을 정리하고 고유제 준비를 하다. baikyangdong041.jpg

  □16:15분 묘소 고유제
    ▲헌관 홍수, 축관 재석, 집사 중묵.태우, 집례 항용
    ▲고유제문 -  無緣故墓慰安祝
    維歲次 乙酉八月 辛卯朔 二十九日己未 幼學 金鴻洙 敢昭故于
    古墓之靈 意失先塋 將尋幽誌 敢毁封域 爰玆誤啓 仍築旣苡 依舊新封謹告以酒 休咎是寧
    (재석 전 회장 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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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관 홍수 광탄문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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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5분 굴삭기를 이용해 봉분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하고, 발굴작업을 마치다.
   수인 회장은 군사공파종회의 숙원사업이 이번 발굴조사로 거의 확실한 물증을 얻게 된 소감을 피력하고, 후속작업은 문중 회의를 거쳐 결정할 것임을 밝히다.
   20여 년간 직제학공 실전 묘소를 찾으면서 백양리에 5번이나 방문한 재석 전 회장은 생전에 중요한 일을 마무리짓게 된 소감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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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작업 후 향후 계획 및 소감을 밝히는 재석 전 회장과 수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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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줄 왼쪽부터) 은회, 태영, 항용, 재석, 윤식, 중묵, 준회, (뒷줄) 용주, 상석, 두식, 태우, 영윤, 창회, 수인, 홍수, 용회, 재구

 

 □수습된 유물은 전문가인 재갑 종친에게 감식을 의뢰하기로 결정하다. youmul_040.jpg
      발굴 후 유물을 정리하던 중 투명한 유리구슬 관자 속에서 3개의 극소형 유리관자가 발견되었다. 극소형 유리관자는 사진 아래쪽 중앙부분의 구멍 뚫린 작은 구슬들이다.
      관자 모두가 유리로 조선 초기에는 높은 관직을 지녀야만 가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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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자 장식품들. 모두 중앙이 뚫려 있다. 맨 오른쪽은 크고 작은 관자가 두세 개 엉겨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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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제품.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은박을 눌러찍은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이러한 기법은 고도의 제작기법으로 고위 관직자가 소유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번 직제학공 묘소 확인행사는 여러 모로 중요한 선례가 된 행사였음을 기록한다. 또한 재석 전 회장을 비롯해 태영 종친 등 여러 종친이 뜻을 세우고 군사공파 문중회의에서 전 종친의 중지를 모아 적극적인 협조로 추진되었음을 아울러 기록한다.

--- 이상 직제학공(휘 진) 실전 묘소 확인행사에 대한 비망기를 마칩니다. 혹여 잘못 기록된 내용이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부디 헤아려 주시옵고, 잘못된 내용은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김발용 / 기록 김윤식>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깊은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후기를 잘 읽었습니다. 특히 발굴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또한 출토물에 대한 섬세한 촬영과 과감한 게시에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감식 결과가 기대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루어질 제학공 선조님에 대한 문중회의 결정과 뒷처니는 우리 문중의 좋은 선례로 남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백양동 묘소의 문인석을 누운 채로 방치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누군가가 주인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임의로 가져간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깁니다. 인근에 지키는 인가도 없고 도로는 입구까지 잘 닦여져 있으니 말입니다. 어떤 좋은 대책이 있었으면 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하남 대부님, 원인을 찾았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재구 대부님, 혹시 먼젓번 글을 옮기셨으면 다시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김재구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구
작성일

  이대로 퍼다가 칠정문중 카페에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踏雪野中去 하니 不須胡亂行이며 今日我行跡은 遂作後人程이라
새하얀 눈밭을 걸어가니(踏雪野中去) 그 걸음 흩으러져서는 안되리(不須胡亂行) 내 오늘 찍어놓은 발자국(今日我行跡) 뒤사람들 따라 걸을 것이니(遂作後人程) 감사합니다

김중묵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중묵
작성일

  참여해주셨던 모든 분들의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고요, 발용손의 제시물 고맙습니다.사실 많이 궁금했씁니다.
 항용손의 염려와 같이 백양동의 문인석을 누운채로 방치하는 것도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나 감식 결과가 하루빨리 이루어져 그에대한 조치강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