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장(金世章) 묘표 및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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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10-27 10:07 조회1,630회 댓글3건본문
김세장(金世章) 묘표
소 재 지 : 경기도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하갈리(下葛里) 山(軍糧洞)
건립연대 : 1725(영조 1)
찬 : 김준(金)浚
서 : 윤지대(尹)志大
비규모(碑規模): 총고 245cm, 비고 157cm, 폭 58cm, 후 24cm
서자경(書字徑): 전자(篆字) 9.5cm, 음기(陰記)2.5cm,
재질(材質) : 개석(蓋石) 화강암, 비신(碑身) 화강암, 대석(臺石) 화강암
김세장 묘표는는 철원서 양지리로 가는 464번 국도에서 군부대를 통과 후 군량동으로 가면 부친 김극연(金克鍊)의 묘소 아래에 있다.
1725년에 건립된 이비는 비좌 개석(碑座蓋石)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개석은 팔각지붕으로 단조롭고 대석에는 복연(覆蓮)과 국화문(菊花紋)이 있다.
비의 마멸 상태는 양호하나 앞면에 총탄흔적이 있다. 이 묘소는 천장된 것으로 봉분은 없고 상석ㆍ향로석ㆍ문인석ㆍ망주석이 있다. 그리고 1740년(영조 16)에 건립된한 증정부인 성주이씨(星州李氏)의 묘표가 있는데 윤순(尹淳)이 글씨를 썼다.
김세장(1628~1685)은 조선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백(文伯). 조부의 휘는 응해(應海)니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지냈으며 부(父)는 증호조참판 극연(克鍊)이다. 타고난 자품이 순실하고 효도와 우애가 진실하였다. 젊어서 과거공부를 익혔으나 마음에 두지않고 철원(鐵原)으로 물러나 살면서 글과 술로서 스스로를 즐겼다. 담박하여 산업을 경영함이 없으니 향당(鄕黨)에서 인후장자(仁厚長者)라고 칭하였다.
아들 중구가 귀해짐으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 전면 탁본(58*157)
▲ 후면 탁본(58*157)
▲ 묘표 비문 일부 사진
▲ 묘소 전경(2004. 11. 14 안사연 답사 촬영)
▲ 묘표(2004. 11. 14 안사연 답사 촬영)
▲ 성주이씨 묘표
<참고자료 : 철원금석문대관>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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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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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부사공후손 선조님의 금석문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번 답사때 못 간 것이 두고두고 후회...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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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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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솔내 대부님 동감입니다
두고두고 후회''''''
발용 대부님감사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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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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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사합니다. 홈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