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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외갓댁, 고모댁(5)횡성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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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0-27 11:53 조회1,6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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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조씨(橫城趙氏)

[유래]

시조는 조익(趙翌)으로 조욱(趙昱)이라고도 하는데 고려사 연표에는 조익으로 적혀있다.
중국 주나라의 목왕(穆王)이 서언왕(徐堰王)을 정벌할 때 조부(造夫)가 공을 세워 조성(趙城)에 봉해졌으므로 나라이름을 따서 성을 조씨라고 하여 조씨가 시작되었다 한다. 그후 주나라가 진나라 안국군(安國君)에게 망한 후 고려 정종 때 조첨(趙瞻)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고 한다.

시조 조익(趙翌)은 조첨의 후손(일부 기록은 아들로 되어있음)으로 965년(고려 광종 9년) 처음실시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벼슬이 한림학사에 이른 그의 품행이 깨끗하고 덕이 높아 광종이 횡성군에 봉함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횡성으로 하였다.


[가문의번영]

고려시대에 문하시중을 지낸 조승인(趙承藺)을 비롯하여 중서승(中書丞)을 지낸 조주조(趙周祚), 합문저후를 지낸 조정신(趙正臣), 상서의 조시언(趙時彦) 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면서 가문이 번영하였다.
조영인(趙永仁)은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기사를 지내다가 명종이 즉위하자 태자의 보도(輔導)를 맡았는데 1174년 좌사원외랑(左司員外郞)으로 정조사가 되어 금나라에 다녀왔으며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1201년 특명으로 문하시중에 올랐다.
조영인의 아들 조충(趙沖)은 음보로 벼슬에 등용된 후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역임하고 문무를 겸비해 거란군을 대파했으며 평장사에 이르렀다.
조계순은 평장사를 지냈고, 조변은 원종 때에 낭장 겸 감찰사(郞將 兼 監察史)를 지내고 1284년 대장군을 거쳐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이르렀는데 전고(典故)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조선 인조 때의 인물인 조응영(趙應榮)은 1627년 이인거(李仁居)가 횡성서 변란을 일으켰을 때 토평에 공을 세워 소무원종공신(昭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고, 선조 때의 조목(趙穆)은 이황(李晃)의 문하생으로 공조참판을 역임, 일생을 학문에만 힘써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나 "월천집(月川集)" "곤지잡록(困知雜錄)"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조신인(趙臣仁)은 도승지, 조성입(趙誠立)은 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조정입(趙正立)은 직제학, 조식(趙湜)은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집성촌]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암리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청룡리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
-충북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경북 안동군 예안면 동천동
-함경남도 안변군 문산면 근외리


[본관지]

-강원도 횡성군


[기 타]

[ 인 구 ]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4,461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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