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외갓댁, 고모댁 (8) 복주 영호루에서 지은시-채홍철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5-11-07 16:54 조회1,335회 댓글0건본문
복주 영호루(福州暎湖樓)
채홍철(蔡洪哲)
평생 바다와 산에 많이 다녀 보았어도 / 海山當日往來多
물외의 정신이 예 오니 더해지네 / 物外精神到此加
처음엔 꿈에 운우협에 노는가 했더니 / 初謂夢遊雲雨峽
차차 몸이 그림 속에 드는가 싶네 / 漸疑身入畫圖家
남강 가을 밤엔 천봉 달이요 / 南江秋夜千峯月
북리 봄바람엔 만 나무에 꽃이로세 / 北里春風萬樹花
제 아무리 무정하고 한가한 도인이라도 / 雖是無情閑道者
예 와선 마음이 마른 등걸처럼 되진 못하리 / 登臨不得似枯槎
이 시는 신천의 복주영호루를 차운한 시 이다
복주 영호루 신천
이 다락의 좋은 경치를 너무 말하지 마소 / 此樓佳致說母多
명승을 찾기야 나보다 나을 이 누구인가 / 摘勝探奇莫我加
백 리 길 뽕나무 그늘에 들주막이 감추였고 / 百里桑陰藏野店
사면 산 푸른 솔이 관가를 둘러있네 / 四山松翠護官家
비 내리는 강가, 어두운 하늘에 닿은 풀빛 / 江頭雨暗連天草
마을에 연기 자욱한데 집에 갸웃이 뵈는 꽃 / 巷口煙濃出屋花
올라와 놀 줄만 알고 잠잠히 있으니 / 只解登臨如嘿嘿
시인의 생색 없음이 마른 떼와 비슷하구나 / 詩人沒彩也如槎
신천(辛蕆)
?∼1339(충숙왕 복위 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덕재(德齋).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14년(충숙왕 1) 3월에 선부직랑(選部直郎)이 되었다.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1319년 6월에 총랑(摠郎)으로 있으면서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극력 주청하여 스승을 문묘(文廟)에 종사하게 하였다.
1326년에 지공거가 되어 이달중(李達中) 등을 취하였으며, 그뒤 1339년 12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죽었다. 작품으로 안동의 영호루(暎湖樓), 청주의 공북루(拱北樓), 통천의 총석정(叢石亭)을 읊은 시가 있으며, 삼척팔경의 하나인 〈와수목교 臥水木橋〉와 평해의 경치를 읊은 〈요곽장천여고리 繞郭長川如故里〉등의 시가 전하고 있다. 시호는 응청(凝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