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백범일지 (11)우리 집과 내 어릴 적(9) -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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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1-08 14:07 조회1,534회 댓글0건본문
고 선생이 거처하시는 사랑은 작은 방 하나인데 사람들의 좌우명과 선생 자신의 심득 같은 것을 둘러 붙였으며, 선생은 가만히 꿇어앉아서 마음을 잡는 공부를 하시며 간간이 '손무자' '삼략' 같은 병서도 읽으셨다.
고 선생은 날더러, 내가 매일 안 진사 집 사랑에 가서 놀더라도 정신 수양에는 효과가 적을 듯하니 매일 선생의 사랑에 와서 같이 세상사도 말하고 학문도 토론함이 어떠냐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대 선생이 내게 대하여 이처럼 특별한 지우(知遇)를 주시는 것을 눈물겹게 황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는 좋은 마음 가진 사람이 되려던 소원을 말씀드리고 모든 것을 고 선생의 지도에 맡긴다는 성의를 표하였다.
과거에 낙심하고 관상에 낙심하고 동학에 실패한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리를 가지게 되었었다. 나 같은 것도 고 선생과 같으신 큰 학자의 지도로 한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있을까? 스스로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런 말씀을 아뢰었더니 고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저를 알기도 쉬운 일이 아니어든 하물며 남의 일을 어찌 알랴. 그러므로 내가 그대의 장래를 판단할 힘은 없으나 내가 한 가지 그대에게 확실히 말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성현을 목표로 하고 성현의 자취를 밟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힘써 가노라면 성현의 지경에 달하는 자도 있고 못 미치는 자도 있거니와 이왕 그대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될 뜻을 가졌으니 몇 번 길을 잘못 들더라도 본심만 변치 말고 고치고 또 고치고 나아가고 또 나아가면 목적지에 달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괴로워하지 말고 행하기만 힘 쓰라."
이로부터 나는 매일 고 선생 사랑에 갔다. 선생은 내게 고금의 위인을 비평하여 주고 당신의 연구하여 깨달은 바를 가르쳐 주고 화서아언(華西雅言)이며, '주자백선(朱子百選)'에서 긴요한 절구를 보여 주셨다.
선생이 특히 역설하시는 바는 의리에 관해서였다. 비록 뛰어난 재능이 있더라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그 재능이 도리어 화단이 된다고 하셨다.
선생은 경서를 차례로 가르치는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내 정신과 재질을 보셔서 뚫어진 곳은 깁고 빈 구석을 채워주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첩경을 택하심이었다. 선생은 내게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보셨음인지, 아무리 밝히 보고 잘 판단하였더라도 실행할 과단력이 없으면 다 쓸데 없단 말씀을 하시고,
'나무가지를 잡아도 발에는 힘주지 않고
언덕에 매달려도 손에 힘주지 않는 것이 장부이다
(得樹樊枝不足奇 懸崖撒手丈夫兒)'라는 글귀를 힘있게 설명하셨다.
가끔 안 진사가 고 선생을 찾아오셔서 두 분이 고금의 일을 강론하심을 옆에서 듣는 것은 참으로 비할 데 없이 취미 있는 일이었다.
나는 가끔 고 선생 댁에서 놀다가 저녁밥을 선생과 같이 먹고 밤이 깊고 인적이 고요할 때까지 국사를 논하는 일이 있었다.
고 선생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예로부터 천하에 흥하여 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고 망해 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갸륵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요, 그와 달라서 백성이 여러 패로 갈려서 한 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 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다.
이제 왜의 세력이 전국에 충만하여 궐내에까지 침입하여서 대신도 저의 마음대로 내고 들이게 되었으니 우리 나라가 제2 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고에 망하지 아니한 나라가 없고 천하에 죽지 아니한 사람이 있던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일건사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선생은 비감한 낯으로 나를 보시고 나는 비분을 못 이겨서 울었다.
망하는 우리 나라를 망하지 않도록 붙들 도리는 없는가 하는 내 물음에 대하여서는 선생은 청국과 서로 맺는 것이 좋다 하시고 그 이유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청국이 갑오년 싸움에 진 원수를 반드시 갚으려 할 것이니 우리 중에서 상당한 사람이 그 나라에 가서 그 국정도 조사하고 그 나라 인물과도 교의를 맺어 두었다가 후일에 기회가 오거든 서로 응할 준비를 하여 두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선생의 이 말씀에 감동하여 청국으로 갈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나와 같이 어린 것이 하나 가기로 무슨 일이 되랴 하는 뜻을 말씀드린즉 선생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책망하시고 누구나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혼자만이라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니 저마다 남이 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저마다 제 일을 하면 자연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정계에, 또 어떤 사람은 학계나 상계에, 이처럼 제가 합당한 방면으로 활동하여서 그 결과가 모이면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 나는 청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 그 뜻을 고 선생께 아뢰었다. 선생은 크게 기뻐하셔서 내가 떠난 뒤에는 내 부모까지도 염려 말라 하셨다.
나는 의리로 보아 이 뜻을 안 진사에게 통함이 옳을까 하였으나 고 선생은 이에 반대하였다.
안 진사가 천주학(天主學)을 믿을 의향이 있는 모양인데 만일 그렇다면 이는 양이(洋夷 ; 서양 오랑캐)를 의뢰하려 함이니 대의에 어그러지는 일인즉 지금 이런 큰 일을 의논할 수 없다. 그러나 안 진사는 확실히 인재니 내가 청국을 유력한 뒤에 좋은 일이 있을 때에 서로 의논하는 것도 늦지 아니하니 이번에는 말없이 떠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이나 고 선생의 지시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먼길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우리 집과 내 어릴 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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