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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백범일지(17)기구한 젊은 때(6) - 왜놈 장교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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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2-03 12:00 조회1,44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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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젊은 때(6) - 왜놈 장교를 죽이다

이렇게 자문자답하고 나니 내 마음의 바다에 바람은 자고 물결은 고요하여 모든 계교(計巧)가 저절로 솟아오른다. 나는 40여명 객과 수백 명 동민을 눈에 안 보이는 줄로 꽁꽁 동여 수족을 못 놀리게 하여 놓고, 다음에는 저 왜놈에게 터럭 끝만한 의심도 일으키지 말아서 안심하고 있게 하여 놓고, 나 한 사람만이 자유자재로 연극을 할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다.

다른 손님들이 자던 입에 새벽 밥상을 받아 아직 3분지 1도 밥을 먹기 전에 그보다 나중 상을 받은 나는 네댓 술에 한 그릇 밥을 다 먹고 일어나서 주인을 불러 내가 오늘 해전으로 7백 리 길을 걸어야 하겠으니, 밥 일곱 상을 더 차려 오라고 하였다. 37, 38세 됨직한 골격이 준수(俊秀)한 주인은 내 말에 대답은 아니하고, 방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을 둘러보며,

"젊은 사람이 불쌍하다. 미친 놈이로군"

하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목침을 베고 한편에 드러누워서 방안의 물의와 그 왜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어떤 유식한 듯한 청년은 주인의 말을 받아 나를 미친 놈이라 하고, 또 어떤 담뱃대를 붙여 문 노인은 그 젊은 사람을 책하는 말로,

"여보게, 말을 함부로 말게. 지금인들 이인(異人)이 없으란 법이 있겠나. 이러한 말세에 이인이 나는 법일세"

하고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그 젊은 사람도 노인의 눈을 따라 나를 흘낏 보더니, 입을 삐죽하고 비웃는 어조로,

"이인이 없을 리야 없겠죠마는 아 저 사람 생긴 꼴을 보셔요. 무슨 이인이 저렇겠어요"

하고 내게 들려라 하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왜는 별로 내게 주목하는 기색도 없이 식사를 필하고는 밖으로 나가 문설주에 몸을 기대고 서서 방안을 들여다 보면서 총각이 연가 - 밥값 - 회계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때가 왔다 하고, 서서히 일어나 '이놈!' 소리를 치면서 발길로 왜놈의 복장(腹臟)을 차니, 그는 거의 한 길이나 되는 계하에 나가 떨어졌다. 나는 나는 듯이 쫓아 내려가 그 놈의 모가지를 밟았다. 삼간 방문 네 짝이 일제히 열리며, 그리로 사람들의 모가지가 쑥쑥 내밀어졌다. 나는 몰려나오는 무리를 향하여,

"누구나 이 왜놈을 위하여 감히 내게 범접하는 놈은 모조리 죽일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선언하였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발에 채이고 눌렸던 왜놈이 몸을 빼쳐서 칼을 빼어 번쩍거리며 내게로 덤비었다. 나는 내 면상에 떨어지는 그의 칼날을 피하면서 발길을 들어 그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칼을 잡은 손목을 힘껏 밟은즉 칼이 저절로 언 땅에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그 칼을 들어 왜놈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를 쳤다.

2월 추운 새벽이라 빙판이 진 땅 위에 피가 샘 솟듯 흘렀다. 나는 손으로 그 피를 움켜 마시고 또 왜의 피를 내 낯에 바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검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까 왜놈을 위하여 내게 범하려던 놈이 누구냐 하고 호령하였다. 미처 도망하지 못한 행객들은 모조리 방바닥에 넓적 엎드려 어떤 이는,

"장군님, 살려줍시오. 나는 그 놈이 왜놈인 줄 모르고 예사 사람으로 알고 말리려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고, 또 어떤 이는,

"나는 어저께 바다에서 장군님과 함께 고생하던 사람입니다. 왜놈과 같이 온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모두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까 나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던 청년을 책망하던 노인만이 가슴을 떡 내밀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장군님, 아직 지각없는 젊은 것들이니 용서하십시오"

하였다.

이때에 주인 이 선달 화보(李先達 和甫)가 감히 방안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 밖에 꿇어앉아서,

"소인이 눈깔만 있고 눈동자가 없사와 누구신 줄을 몰라뵈옵고, 장군님을 멸시하였사오니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나 그 왜놈과는 아무 관계도 없삽고, 다만 밥을 팔아먹은 죄밖에 없사옵니다. 아까 장군님을 능욕한 죄로 그저 죽여줍소서"

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린다.

나는 주인에게 그 왜가 누구냐고 물어서 얻은 바에 의하면 그 왜는 황주에서 조선 배 하나를 얻어 타고 진남포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나는 주인에게 명하여 그 배의 선원을 부르고 그 배에 있는 그 왜의 소지품을 조속히 들이라 하였다. 이윽고 선원들이 그 왜의 물건을 가지고 와서 저희들은 다만 선가(船價)를 받고 그 왜를 태운 죄밖에 없으니 살려달라고 빌었다.

소지품에 의하여 조사한즉 그 왜는 육군 중위 토전양량(土田讓亮)이란 자요, 엽전 8백 냥이 짐에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돈에서 선인들의 선가를 떼어주고 나머지는 이 동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라고 분부하였다. 주인 이 선달이 곧 동장이었다.

시체의 처치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분부하였다. 왜놈은 다만 우리 나라와 국민의 원수만 될 뿐 아니라 물 속에 있는 어별(魚鼈)에게도 원수인즉 이 왜의 시체를 강에 넣어 고기들로 하여금 나라의 원수의 살을 먹게 하라 하였다.

주인 이 선달은 매우 능간하게 일변 세수 제구를 들이고 일변 밥 일곱 그릇을 한 상에 놓고 다른 상 하나에는 국수와 찬수를 놓아서 들였다. 나는 세수를 하여 얼굴과 손에 묻은 피를 씻고, 밥상을 당기어서 먹기를 시작하였다. 밥 한 그릇을 다 먹은 지기 10분밖에 안 되었지마는 과격한 운동을 한 탓으로 한두 그릇은 더 먹을 법하여도 일곱 그릇을 다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까 한 말을 거짓말로 돌리기도 창피하여서 양푼을 하나 올리라 하여 밥과 식찬을 한데 쏟아 비비고 숟가락을 하나 더 청하여 두 숟가락을 연포겨 가지고 한 숟가락 밥이 사발통만 하도록 보기 좋게 큼직큼직하게 떠서 두어 그릇 턱이나 먹은 뒤에 숟가락을 던지고 혼잣말로,

"오늘은 먹고 싶은 왜놈의 피를 많이 먹었더니 밥이 아니 들어가는구나"

하고 시치미를 떼었다.

식후에 토전의 시체와 그의 돈 처치를 다 분별하고 나서, 주인 이화보를 불러 지필을 대령하라 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 왜를 죽였노라' 하는 뜻의 포고문을 한 장 쓰고 그 끝에 '해주 백운방 기동 김창수(海州 白雲坊 基洞 金昌洙)'라고 서명까지 하여서 큰 길가 벽상에 붙이게 하고 동장인 이화보더러 이 사실을 안악 군수에게 보고하라고 명한 후에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댓글목록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충렬공 할아버님의 기개가 재현된 듯 통쾌한 장면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것이라 감히 말씀 드리며
연재 계속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