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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충렬공(김방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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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2-23 11:41 조회1,81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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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식씨가 알려준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한 충렬공의 기사입니다.

 

태종 026 13/09/20 (병신) 002 / 대신들이 임금의 임실에서 사냥하는 것을 말리다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박자청(朴子靑)이 행재(行在)에 나와서 문안(問安)하고, 아뢰기를,

“좌정승 하윤(河崙)이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으므로 임실(任實) 등지를 자세히 일찍부터 알고 있는데, 산이 높고 물이 험하고 초목(草木)이 깊고 빽빽하니, 청컨대, 성상께서 말을 달리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을 달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냥하는 것을 구경할 뿐이다.”

하였다. 조영무(趙英茂)와 호종(扈從)한 제경(諸卿)이 임실(任實)의 행차를 정침(停寢)하도록 다시 청하여,

“지금의 사냥은 그 시기와 장소가 맞지 않습니다. 또 백성들로 하여금 가시나무를 베게 하여 사냥하는데, 사서(史書)에 반드시 쓸 것이니, 후세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불을 태워서 밭을 일구는 일은 옛날에도 있었다. 지금 백성들을 시켜서 가시나무를 베게 하는 것은 나도 실로 부끄러워한다.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운하[渠]를 파고 겨울철에 오색 비단을 가위질하여 꽃을 만들었는데, 내가 가시나무를 베게 하는 일이 수나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고, 또 말하였다.

“경 등이 이번 행차를 파하자고 청하니, 명일(明日) 마땅히 돌아가겠다. 그 공억(供億)이 미칠 수 있겠느냐?”

정부에서 감사에게 물어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니, 감사 허지(許遲)가,

“신이 일찍이 거가(車駕)가 장차 전라도로 향하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공억(供億)을 모두 남쪽 고을에 준비하여 두었습니다. 만약 다시 북도(北道)에 판비(辦備)하게 한다면 제때에 미치기가 어렵겠습니다.”

하고, 김여지(金汝知)가 임금의 뜻을 맞추어서 또한 말하였다.

“그밖의 공억(供億)의 준비는 쉽게 혹은 간단히 마련됩니다. 장막(帳幕)은 이미 진주(珍州)에 보냈으니, 옮겨 설치할 수가 없겠습니다.”

임금이 정부에 이르기를,

“옛날의 현주(賢主)는 간(諫)하는 것을 듣고 그만 둔 자가 많았다. 이제 내가 비록 본심(本心)이 아니나 감히 면종(勉從)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가 공억(供億)을 제때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드디어 임실(任實)로 향하였다. 처음에 조영무(趙英茂)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신 등이 듣건대, 장차 임실에 행차한다고 하니 불가(不可)한 줄로 생각합니다. 처음에 상체(上體)가 미령(未寧)하다고 하여 이번 온정(溫井)의 행차가 있게 된 것인데, 만약에 드디어 임실에 행차하여 사냥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온정에 탕치(湯治)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놀이하고 사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니, 무엇으로 백성들에게 신(信)을 보이겠습니까? 또 임실의 산천이 험조(險阻)하니, 말을 달려 사냥하다가 넘어져 쓰러질 염려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이 또 들으니, 사람을 임실에 먼저 보내어 말을 달릴 강무장(講武場)에 초목(草木)을 베어내어 불태우게 하였다니 숲을 불태우고 사냥하는 것은 옛 성현(聖賢)도 경계한 바이요, 후세에 비난을 끼칠까 두렵습니다.”

임금이,

“임실의 행차는 지금도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리가 이틀 정도(程道)이고 고라니와 사슴이 무리를 이룬다고 말하니, 말을 머물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기에는 이와 같은 곳이 없다. 가서 구경하고자 할 따름이다. 만약 초목을 베어서 불태운 일이라면 나는 알지 못한다.”

하니, 조영무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순성(蓴城)에 행차하여 친히 예감(睿鑑)을 내리어 운하[漕渠]를 뚫어 파낼지의 편부를 정하시고, 드디어 이웃 고을에서 사냥하고 돌아온다면 사람들의 간언(間言)이 없을 것이요, 사책(史冊)에도 빛남이 있을 것입니다. 전조(前朝) 충렬왕(忠烈王)이 김해부(金海府)에 거둥하여 시중(侍中) 김방경(金方慶)의 동정(東征)하는 행차2736) 를 전별(餞別)하였는데 이를 명분이 없다고 이를 수는 없습니다. 이제 임실의 행차는 무슨 명분이 있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이제 무사한 때를 당하여 나라의 임금이 한 번 나가서 놀이하고 사냥하는 것이 무엇이 해롭겠는가?”

【원전】 1 집 689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교통-수운(水運) / *군사-군정(軍政) / *역사-고사(故事)



 

[註 2736]시중(侍中) 김방경(金方慶)의 동정(東征)하는 행차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고려와 원(元)나라의 연합군이 일본(日本)을 정벌하려 간 일. 고려 김방경(金方慶)과 원의 흔도(忻都:忽敦) 등이 1274년과 1281년 2차에 걸쳐 원정하였으나 모두 태풍으로 실패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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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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