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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김방경(조선왕조실록에서-4- 세종실록지리지 제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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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12-31 19:48 조회1,54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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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51 지리지 / 전라도 / 제주목

◉ 제주목(濟州牧)

도안무사(都安撫使)【3품(三品)이면 안무사(安撫使)라고 칭한다.】․판관(判官)【겸감목관(兼監牧官).】․교수관(敎授官)․검률(檢律)․의학 교유(醫學敎諭).

본주(本州)는 전라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그 주(州)의 고기(古記)에 이르기를,󰡒태초(太初)에는 사람과 물건이 없었는데, 신선[神人] 세 사람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왔다. 지금도 주산(主山) 북쪽 기슭에 󰡐모흥(毛興)󰡑이라 하는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곳이다. 맏을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세째를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다. 세 사람은 황량한 땅에서 사냥을 하여서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그 고기로 식량을 하였다. 하루는 자주 색깔로 칠하여 봉(封)한 목함(木函)5145) 이 두둥실 떠서 동쪽 바닷가에 이르는 것을 보고 가서 열어보니, 목함(木函) 속에 또 석함(石函)이 있었다. 붉은 띠[帶]에 자주색 옥을 입은 사자(使者) 한 사람이 있어서 석함을 열었는데, 푸른 옷을 입은 처녀[靑衣處女] 세 사람과 망아지․송아지와 오곡(五穀)의 종자가 나왔다. 이어 말하기를, 󰡐나는 바로 일본의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따님을 낳으시고, 이르시기를, 「서쪽 바다 가운데 있는 산[嶽]에 신선[神子] 세 사람이 내려와서 장차 나라를 세우려고 하나 배필이 없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따님을 모시고 오게 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짝을 이루어서 대업(大業)을 이루도록 하십시요.󰡑 하고는, 사자(使者)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세 사람이 나이 차례대로 나눠서 혼인하고, 샘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에 나아가서 화살을 쏘아 살 땅을 선택하였는데, 양을나가 사는 데를 󰡐제일도(第一都)󰡑, 고을나가 사는 데를 󰡐제이도(第二都)󰡑, 부을나가 사는 데를 󰡐제삼도(第三都)󰡑라고 하였다. 비로소 오곡(五穀)을 심고,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니 날로 부유하고 번창해갔다. 15대 손(孫)에 이르러, 고후(高厚)․고청(高淸)의 형제 세 사람이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5146) 에 이르렀는데, 대개 신라가 번성할 때였다. 그때 객성(客星)이 남방(南方)에 나타나니,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다른 나라 사람이 내조(來朝)할 징조입니다.󰡑 하였다. 세 사람이 드디어 신라에 입조(入朝)하매, 왕이 가상히 여겨서, 맏[長子]을 󰡐성주(星主)󰡑라고 하니, 그 움직인 별을 상징한 것이요, 둘째[二子]를 󰡐왕자(王子)󰡑라고 하니, 왕이 고청(高淸)으로 하여금 바지가랑이 밑으로 빠져 나가게 하고서 자기 아들같이 사랑하였으므로, 이렇게 이름지은 것이요, 막내[季子]를 󰡐도내(都內)󰡑라고 하고, 읍(邑)의 이름을 󰡐탐라(耽羅)󰡑라고 하니, 대개 신라 때에 처음으로 탐진(耽津)에 이른 까닭이었다. 각기 보개(寶蓋)와 옷과 띠를 주어서 돌려보냈다. 이로부터 자손이 번성하였고 본국[國家]을 정성껏 섬겼으며, 고(高)를 성주(星主)로, 양(良)을 왕자(王子)로, 부(夫)를 도상(都上)으로 고쳤고, 뒤에 또 양(良)을 양(梁)으로 고쳤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해동 안홍기(海東安弘記)에 구한(九韓)을 열거(列擧)하였는데 탁라(?羅)가 네 번째에 있다. 백제 문주왕(文周王) 2년 병진【유송(劉宋) 후폐제(後廢帝) 원휘(元徽) 4년.】에 탐라국 사자(耽羅國使者)에게 은솔(恩率)이란 벼슬을 주었고, 동성왕(東城王) 20년 경신【남제(南齊) 태조(太祖) 건원(健元) 2년.】에 탐라에서 공부(貢賦)를 바치지 아니한다 하여 왕이 친정(親征)하여 무진주(武珍州)5147) 에까지 이르렀는데, 탐라에서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를 빌었으므로 이에 중지하였다.󰡓하고, 주(註)에 이르기를, 󰡒탐라는 곧 탐모라(耽牟羅)이라.󰡓하였다. 백제가 망하니, 신라 문무왕(文武王) 원년 임술【당나라 고종(高宗) 용삭(龍朔) 2년.】에 탐라국주(耽羅國主) 좌평(佐平) 도동음률(徒冬音律)이 와서 항복하였다.【좌평은 백제의 벼슬 이름이다.】 고려 숙종(肅宗) 10년 을유【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4년.】에 탁라(?羅)를 고쳐서 탐라군(耽羅郡)으로 하였고, 의종(毅宗) 때 현령관(縣令官)으로 하였다. 충경왕(忠敬王) 11년 경오【송나라 도종(度宗) 함순(咸淳) 6년.】 역적 김동정(金同正)이 삼별초(三別抄)를 거느리고 탐라에 들어가서 난(亂)을 일으켰는데, 4년이 지나 14년 계유【몽고 세조(世祖) 지원(至元) 10년.】에 시중(侍中) 김방경(金方慶)에게 명하여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충렬왕(忠烈王) 3년 정축【지원(至元) 14년.】에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목마장(牧馬場)으로 삼았는데, 21년 갑오에 왕이 원나라에 들어가서 탐라를 돌려주기를 청하니, 원나라 승상(丞相) 등이 상주(上奏)하여, 󰡒그 탐라를 고려에 돌려주는 것이 옳겠다.󰡓하는 성지(聖旨)를 받았고, 익년(翌年) 을미【원정(元貞) 원년.】에 탐라를 고쳐 제주로 하였고, 비로소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 최서(崔瑞)를 목사(牧使)로 삼았으며, 26년 경자【대덕(大德) 4년.】에 원나라 황태후(皇太后)가 또한 내구마(內廐馬)를 방목(放牧)하였는데, 31년 을사【대덕 9년.】에 도로 본국(本國)에 환속하였다. 충숙왕(忠肅王) 5년 무오【원나라 인종(仁宗) 연우(延祐) 5년.】에 초적(草賊) 사용(士用)․엄복(嚴卜)이 군사를 일으켜 난(亂)을 꾸미니, 본토 사람 문공제(文公濟)가 군사를 일으켜 이를 모두 잡아 죽이고 조정에 보고하였으므로, 다시 관리를 두었다. 공민왕(恭愍王) 18년 기유【명(明)나라 홍무(洪武) 2년.】에 원나라의 목자(牧子) 합치(哈赤)가 발호(跋扈)하여 관리를 살해하였는데, 6년이 지나 23년 갑인 8월에 나라에서 도통사(都統使) 최영(崔瑩)을 보내어 합치(哈赤)를 토벌하여 멸망시키고 다시 관리를 두었다. 본조 태종(太宗) 2년 임오에 성주(星主) 고봉례(高鳳禮)와 왕자(王子) 문충세(文忠世) 등이 성주와 왕자의 호가 너무 참람한 것 같다고 하여, 고치기를 청(請)하였으므로, 성주를 좌도지관(左都知管)으로, 왕자를 우도 지관(右都知管)으로 하였다.

진산(鎭山)은 한라(漢拏)이었다. 주의 남쪽에 있는데, 일명 두무악(頭無岳) 또는 원산(圓山)라 한다. 그 고을 관원이 제사를 지내는데, 둥그스름하고 높고 크며, 그 꼭대기에는 큰 못이 있다.

호수가 5천 2백 7호요, 인구가 8천 3백 24명이요, 군정은 2천 66명이다.【마군(馬軍)이 8백 43명이요, 보군(步軍)이 1천 2백 23명이다.】

토성(土姓)이 고(高)․양(梁)․부(夫)요, 인물은 문하 시랑(門下侍郞) 고조기(高兆基)이니, 의종(毅宗) 때 사람이다.

그 땅의 기후가 따뜻하며, 풍속이 미욱하고 검소하다. 간전(墾田)이 3천 9백 77결이요,【논이 31결이다.】 토의(土宜)가 밭벼[山稻]․기장․피․콩․메밀․보리․밀이다. 토공(土貢)이 대모(玳瑁)․표고․우무[牛毛]․비자․감귤․유자․유감(乳柑)․동정귤(洞庭橘)․금귤(金橘)․청귤(靑橘)․돌귤[山橘]․전복․인포(引鮑)․퇴포(槌鮑)․조포(條鮑)․오징어․옥두어(玉頭魚)․곤포(昆布)․돌유자나무[山柚子木]․이년목(二年木)․비자나무[榧子木]․좋은 말[良馬]이요, 약재는 진피(陳皮)․마뿌리[山藥]․석골풀[石]․초골풀[草]․소태나무열매[川練子]․구리대뿌리[白芷]․팔각(八角)․영릉향(零陵香)․오배자(五倍子)․치자․향부자(香附子)․모과․묏미나리[柴胡]․푸른귤껍질[淸皮]․백변두(白扁頭)․바곳[草烏頭]․엄나무껍질[海東皮]․후박(厚朴)․오징어뼈․두충(杜沖)․순비기나무열매[蔓荊子]․석결명(石決明)․끼무릇뿌리[半夏]․누른국화[黃菊]․녹용․박상(舶上)․회향(茴香)․탱자껍데기[枳殼]다.

읍석성(邑石城)【둘레가 9백 10보이다.】 봉화가 9곳이니, 주의 동문(東門)【동쪽으로 별도(別刀)에 응한다.】 별도(別刀)【동쪽으로 원당(元堂)에 응한다.】․원당(元堂)【동쪽으로 서산(西山)에 응한다.】․서산(西山)【동쪽으로 입산(笠山)에 응하고, 또 동쪽으로 정의현(旌義縣) 지말산(只末山)에응한다.】․남문(南門)【서쪽으로 도도리산(道道里山)에 응한다.】․도도리산(道道里山)【서쪽으로 수산(水山)에 응한다.】․수산(水山)【서쪽으로 고내(高內)에 응한다.】․고내(高內)【서쪽으로 곽산(郭山)에 응한다.】․곽산(郭山)【서쪽으로 판포산(板浦山)에 응하고, 또 서쪽으로 대정현(大靜縣) 차귀산(遮歸山)에 응한다.】이다. 목장【말이 3천 3백 52필이다.】

이상한 일[靈異]은 고려 목종(穆宗) 5년 임오 6월에 탐라산(耽羅山)에 구멍 네 개가 뚫려서 싯뻘건 물이 치솟아 올랐고, 10년 정미에는 바다 가운데 산 하나가 솟아나왔다. 탐라에서 보고하니, 왕이 태학 박사(太學博士) 전공지(田拱之)를 보내어 가서 조사하게 하였다. 탐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솟아나오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고, 벼락치는 것같이 땅이 움직였습니다. 무릇 7주야(晝夜)가 지나서야 비로소 개었는데, 산에는 풀과 나무가 없고, 연기만이 그 위를 덮고 있습니다. 바라다 보니, 석류황(石流黃) 같기도 하여 사람이 갈 수가 없습니다.󰡓하였으나, 전공지가 몸소 산 아래에까지 나아가 그 모양을 그려서 나라에 바쳤다. 속설(俗說)에 전하기를, 󰡒한라산 주신(主神)의 막내 동생[季弟]이 살아서 거룩한 덕(德)이 있었으므로 죽어서 명신(明神)이 되었는데, 마침 호종단(胡宗旦)5148) 이 이 땅을 진무(鎭撫)하고 제사를 지낼 때를 당하여 신(神)이 배를 타고 강남(江南)으로 향하였다. 신(神)이 매[鷹]로 화(化)하여 날아서 돛대 꼭대기에 올라 앉았는데, 조금 있다가 북풍이 크게 불어 호종단의 배가 난파[擊碎]되어 서쪽 지경에 침몰하니, 매가 날아서 섬의 암석(巖石) 사이로 올라갔다. 나라에서 그 신령함[靈異]을 포장(褒獎)하여 식읍(食邑)을 하사하고, 광양왕(廣壤王)으로 봉하였는데, 해마다 나라에서 향(香)과 폐백(幣帛)을 내려서 제사를 지낸다.

【원전】 5 집 667 면


○ 세종 151 지리지 / 전라도 / 제주목 / 정의현

○ 세종 151 지리지 / 전라도 / 제주목 / 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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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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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많은 자료들을 올려 주심에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다 읽어보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읽고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