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32) 백범 22살 되던해 일어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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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4-15 18:20 조회1,529회 댓글0건본문
서기 1897년 백범선생님은 22살이 되십니다.
이 한해는 인천 감호소에서 한해를 보내시게 됩니다. 이 때 백범께서 평생을 동지로
생각하는 김주경은 백방으로 백범의 구명운동을 벌이고, 탈옥까지 계획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불라디보스톡(해삼위)방면으로 잠적하게 됩니다.
이해에 8월에는 연호를 光武로 고치고,
드디어 10월에 대한제국 성립됩니다.
11월27일에는 삼년전(1895년)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장이 거행되게 됩니다.
명성황후의 능은 현재의 청량리밖 세종대왕기념관 근처에 모시고 홍릉이라고 명했으니
현재도 이 부근을 홍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후일 1919년 고종황제가 돌아가시자 홍릉에 모신 명성황후를 금곡에 옮겨 모시고 고종을
금곡 홍릉에 합장하시게 됩니다.
이해(1919)년 고종황제의 국장을 계기로 삼일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명성황후는 돌아가신지 삼년만에야 국상을 치루게 되었는가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돌아가신 것은 1895년인데 왜 국장은 1897년 이었을까?
을미사변 이후 일본이 내세운 친일 내각에 의하여 1895년 폐후의 조칙이 내려지고
폐서인이 되었다가 다음 날인 10월 11일 빈호는 내린다.
이 때 고종은 "짐에게 그 서명(페후 시킨다는 서명)을 강요하느니 차라리 짐의 두 팔을 자르라"고
소리쳤지만 대신들의 강권으로 서명을 안할 수 없었다. 이 때 서명을 강권하고 을미개혁을
추진했던 대신들은 아관파천이후 죽음을 당하게 되니
1896년 김홍집과 농상무대신이었던 정병하가 광화문 앞 노상에서 성난 군중에게 몰매 맞아
살해 되고 다음 날에는 탁지부 대신 어윤중이 살해된다.
1897년 아관에서 돌아 온 고종은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라 하고 왕비 민씨를 명성황후로 격상시키고 한달 뒤
국장을 치루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국장에 관한 제반 기록이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열람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규13879,규 13880,규 13881,규 13883,규 13884,규 14868).
(규13879,규 13880,규 13881,규 13883,규 13884,규 14868). 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奎13879,奎 13880,奎 13881,奎 13883,奎 13884,奎 14868). 5卷 5冊 彩色圖 筆寫本 45.8×33.6cm. 1895년(高宗32) 高宗의 妃 明成皇后 閔氏(1851∼1895)의 國葬에 관한 제반기록이다.
▣ 김항용 -
▣ 김정중 -
▣ 김주회 -
▣ 김태서 -
▣ 김태환 -
▣ 김은회 -
이 한해는 인천 감호소에서 한해를 보내시게 됩니다. 이 때 백범께서 평생을 동지로
생각하는 김주경은 백방으로 백범의 구명운동을 벌이고, 탈옥까지 계획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불라디보스톡(해삼위)방면으로 잠적하게 됩니다.
이해에 8월에는 연호를 光武로 고치고,
드디어 10월에 대한제국 성립됩니다.
11월27일에는 삼년전(1895년)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장이 거행되게 됩니다.
명성황후의 능은 현재의 청량리밖 세종대왕기념관 근처에 모시고 홍릉이라고 명했으니
현재도 이 부근을 홍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후일 1919년 고종황제가 돌아가시자 홍릉에 모신 명성황후를 금곡에 옮겨 모시고 고종을
금곡 홍릉에 합장하시게 됩니다.
이해(1919)년 고종황제의 국장을 계기로 삼일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명성황후는 돌아가신지 삼년만에야 국상을 치루게 되었는가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돌아가신 것은 1895년인데 왜 국장은 1897년 이었을까?
을미사변 이후 일본이 내세운 친일 내각에 의하여 1895년 폐후의 조칙이 내려지고
폐서인이 되었다가 다음 날인 10월 11일 빈호는 내린다.
이 때 고종은 "짐에게 그 서명(페후 시킨다는 서명)을 강요하느니 차라리 짐의 두 팔을 자르라"고
소리쳤지만 대신들의 강권으로 서명을 안할 수 없었다. 이 때 서명을 강권하고 을미개혁을
추진했던 대신들은 아관파천이후 죽음을 당하게 되니
1896년 김홍집과 농상무대신이었던 정병하가 광화문 앞 노상에서 성난 군중에게 몰매 맞아
살해 되고 다음 날에는 탁지부 대신 어윤중이 살해된다.
1897년 아관에서 돌아 온 고종은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라 하고 왕비 민씨를 명성황후로 격상시키고 한달 뒤
국장을 치루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국장에 관한 제반 기록이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열람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규13879,규 13880,규 13881,규 13883,규 13884,규 14868).
(규13879,규 13880,규 13881,규 13883,규 13884,규 14868). 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奎13879,奎 13880,奎 13881,奎 13883,奎 13884,奎 14868). 5卷 5冊 彩色圖 筆寫本 45.8×33.6cm. 1895년(高宗32) 高宗의 妃 明成皇后 閔氏(1851∼1895)의 國葬에 관한 제반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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