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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공 김소(金素) 선조님 신발견 서찰 번역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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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1-18 08:55 조회1,4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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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金素 신발견 書札 (3) 

 가. 발견일 : 2005. 8. 29.

 나. 발견자 : 김항용 

 다. 최초 매입일 : 1990년경

 라. 최초 매입자 : 충북 충주 고서점

 마. 2차 매입자 : 1991년 경 대구 고려원

 바. 원 소장자 : 미상  (필자의 사촌 형인 縠, 時晦의 子. 時亮의 子들로 추정 중)

 사. 현소장처 : 미상 (1차 대구의 <고려원>에서 2005. 6. 모인사에게 매각. 현재 조사중)

 아. 작성일시 : 1648년(戊子. 47세. 충청도관찰사 시절) 7월 29일

 자. 해독자 : 김익수 (2005. 9. 25)

 차. 번역, 편집자 : 김익수, 김항용 (200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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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晉之日 拘於官冗 不得深深 就敍表 常慨歎不似之.

命適到遠出之際 未能更得握手 仍作活別 人間事不可預料者 如此耶.

兄抱病食貧 弟爲土主 春後到仕者 無容斗隙 愛莫助之 常切愧歎.

摧絡秋捧 以雪此恥事 故如許 奈何奈何.

前糶米三石 以戶籍米 計減捧納事 戶籍色金厚云貪色

欲令道處分付後 成文書以去. 幸勿以爲憂如何.

落幅十度送之用於遮障 

爲望所得不數 而吏曺書使成此 無物可洽 以此塞責 略不稱情 可歎.

只祈勤勤善然. 伏惟

兄照 謹拜上謝狀.


初二日 將爲發槎 而此後消息杳然  

臨紙悵然 不能定情

稱念尙銘施 .

戊子七月念九  弟 素頓


 진주(진주목사)에 있을 때에는 관의 업무가 복잡하여 마음을 표현하여 알릴 수가 없었고 항상 형을 닮지 못함을 개탄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또 멀리 나가라는 명령(충청도 관찰사 임명)이 도착해서 다시 손도 잡아보지 못합니다. 살아서 작별하는 인간사란 미리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까.

 형은 병들고 가난하게 살지만 저는 땅마지기라도 갖고 있고, 봄이 지난 후에 벼슬에 부임한 사람인데, 조그만 틈도 내지 못하고 사랑으로 돕지도 못하는  것이 항상 절실하게 부끄럽고 한탄스럽습니다.

 가을걷이에 연락을 재촉하여 이런 부끄러운 일을 씻으려 했는데 이렇게 되니 어찌 하겠습니까.

 전에 환곡으로 빌린 쌀 3섬을 호적미(戶籍米)로 계산하여 감해서 바친 사건에 대해서는 호적색리(戶籍色吏)인 김후(金厚)가 탐욕스런 색리라고 합니다. 말할 만한 곳에 분부한 후에 문서를 작성하여 없애려합니다. 바라건대, 염려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떨어진 포백 10자를 보내니 창문을 막는데 쓰십시오.

 천망(薦望)을 할 때는 소득이 셀 수 없을 것이라고 이조(吏曹)에서 글로 써서 이렇게 작성해왔는데 그에 합당한 아무 물건이 없다고하며 그것으로써 책임을 간신히 때우려하지만, 대체로 사정을 헤아려 주지 않으니 탄식할 뿐입니다.

 다만, 끊임없이 몸 소중히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삼가 형께서 살펴보소서. 절하며 감사의 글월을 올립니다.


 초2일에 곧 떠나려하며, 이후의 소식은 아득할 것 같습니다. 편지를 쓰려니 슬픔에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칭송하는 생각을 항상 새겨 표시합니다.

          무자(1648) 7월 29일

                   弟  素 돈수


*주: 官冗 : 관업무의 복잡함.   深深 : 매우 깊이   斗隙 : 조그만 틈    如許 : 이와 같음

塞責 : 책임을 간신히 때움   勤勤 : 부지런히, 끊임없이


*편집자 주 :

  1)편지를 받은 사람인 兄은 필자의 사촌 형인 김곡(하담 김시양의 子)로 추측 되며, 김곡은 진주에서 가까운 곳인 합천군수(陜川郡守) 겸진주진관 병마동첨지어도위(兼 晉州鎭管 兵馬同僉知御蹄衛)를 역임한 바 있음.

  2)김소 연보 

1. 1세 (1602년. 선조35) : 4. 22.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에서 출생 (부-시열. 모-구례손씨)

2. 29세(1630년. 인조8)  : 진사급제

3. 30세(1631년. 인조9)  : 장릉참봉(章陵參奉-종9품)

4. 33세(1634년. 인조12) : 금오랑(金吾郞-의정부 관리 )

5. 34세(1635년. 인조13) : 호조좌랑(戶曹左郞-정6품). 9월. 알성문과 급제

6. 35세(1636년. 인조14) : 정랑(正郞-정5품). 여름에 해주판관(海州判官)   (병자호란)

7. 36세(1637년. 인조15) :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심양까지 모셔다 드림.

8. 37세(1638년. 인조16) : 군자감정(軍資監正-정3품)

9. 38세(1639년. 인조17) : 강릉부사(江陵府使)

10. 40세(1641년. 인조19) : 함경도병사(咸鏡道兵使) 추천. 겨울에 통정대부로 종성부사(鍾城府使)

11. 42세(1643년. 인조21) : 함경남도병사(咸鏡南道兵使-종2품. 부친 노병으로 사양)

12. 43세(1644년. 인조22) : 호조참의(戶曹參議-정3품). 성절사(聖節使)로 연경에 감

13. 44세(1645년. 인조23) : 봄에 귀국. 귀국길에 소현세자에게 들러 공금을 아낀 돈을 말 준비 비용으로 드림. 경주부윤(慶州府尹-부친 노병으로 사양), 형조참의(刑曹參議-잠깐 있다가 부친 병으로 사양), 부승지(副承旨-사양).

14. 45세(1646년. 인조24) : 진주목사(晋州牧使). 

15. 47세(1648년. 인조26) : 7월 충청도 관찰사(忠淸道 觀察使)

16. 48세(1649년. 인조27) : 벼슬 파직. 괴산 거주

17. 49세(1650년. 효종1) : 영흥부사(永興府使)

18. 53세(1654년. 효종5) : 승지(承旨)

19. 54세(1655년. 효종6) : 형조참의(刑曹參議), 승지(承旨), 충청수사(忠淸水使)

20. 55세(1656년. 효종7) : 승지(承旨)

21. 56세(1657년. 효종8) : 여름에 호조참의(戶曹參議). 겨울에 승지(承旨)

22. 57세(1658년. 효종9) : 황해감사(黃海監司-사양), 여름에 광주목사(光州牧使)

23. 60세(1661년. 현종2) : 원주목사(原州牧使)

24. 61세(1662년. 현종3) : 원주목사에서 돌아옴

25. 63세(1664년. 현종5) : 장단부사(長湍府使-사양), 장예원 판결사(判決使)

26. 64세(1665년. 현종6) : 양주목사(陽州牧使-병으로 사양)

27. 65세(1666년. 현종7) : 6. 11. 몰.  9. 13. 괴산에서 장례식

   *吏曹參判 追贈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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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잘 보았습니다.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찡하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선조님의 간찰을 사진이나마 볼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